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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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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전형 통과율 0.066…취재지만 간절함 생기더라”

독자편집위원과 함께 나눈 취업 도전 6개월 뒷이야기
“의사 역할 맡은 배우인데, 의사로 착각하고 살았다”
등록 2013-12-26 11:17 수정 2020-05-03 04:27
지난 6월부터 취업 현장에 뛰어들었던 인턴기자들(왼쪽 전다은·강선일·나해리)이 지난 12월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에 모여 독자(오른쪽 김민희·김찬혁)들의 질문에 답하며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탁기형

지난 6월부터 취업 현장에 뛰어들었던 인턴기자들(왼쪽 전다은·강선일·나해리)이 지난 12월1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에 모여 독자(오른쪽 김민희·김찬혁)들의 질문에 답하며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탁기형

지난 6월부터 취업 현장에 뛰어들었던 기자 4명이 12월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 모였다. 정은주(38) 기자와 전다은(가명 이은미·27)·강선일(노민호·27)·나해리(이나연·23) 인턴기자는 “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인데 실제 의사로 착각해 살아온” 지난 6개월을 되돌아봤다. 기획 연재 ‘취업 OTL’을 비판적으로 읽은 독자 김민희(29)·김찬혁(21)씨가 부산과 대전에서 올라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때론 공감하고 때론 반박하며 취업 OTL 뒷이야기를 2시간 동안 나눴다. 기자들은 감췄던 얼굴을 이날 공개하며 복잡한 속내도 내비쳤다.

불안감 더 조장할 필요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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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이하 민희)- 암울한 취업 현실을 이 보여주며 불안감을 더 조장할 필요가 있었나. 그 긴 터널을 막 빠져나왔기에 우울했던 감정이 섬뜩하리만큼 다가와 불편했다.

전다은(이하 전)- 그렇다. 20대는 취업 OTL을 보며 우울했을 것이다. 희망을 주거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댓글을 보며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얘네들도 이렇게 사는데’ 하며 자포자기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실제 나는 취업을 위한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 공백기인 5년 동안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20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업 OTL이 20대의 다양한 모습을 놓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해리(이하 나)- 주변을 보면 취업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다들 하니까 하는 거다. 지금 하지 않으면 늦으니까.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스펙만 쌓아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

김찬혁(이하 찬혁)-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회에는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전- 기사 댓글을 보면 ‘징징댄다’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얘기가 많은데 동감한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면 공통의 목표가 또 생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웹툰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에선 한 사람이 동그라미를 가져오면 다른 사람도 동그라미를 가져온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세모·네모를 가져온다고 하더라.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순간 또 다른 획일화를 조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20대는 각자 자기 길을 찾는 것이고, 그걸 연습하는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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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취업 OTL 기획은 어떻게 시작했나.

정은주(이하 정)- 2012년 10월 이라는 책이 나왔다. 미국 언론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화이트칼라로 재취업하며 겪은 취업 이야기다. 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언론이 취업 성공담만 좇아왔을 뿐 취업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나라는 반성이 출발점이었다. ‘노동 OTL’ ‘병원 OTL’ 등 기자 체험 형식의 글쓰기를 해본 경험도 자산이 됐다. 다만 한발 더 나아가 취업·재취업 준비생이 자기 경험을 직접 풀어내면 더 사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장취업’이라서 인턴기자를 공개 모집하지 않았다. 독자편집위원이나 민주언론시민연합 글쓰기 강좌를 듣던 수강생을 개별 접촉해 취업 OTL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몇 개월간 취재하는 일이라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3명이 응답했다. 50대 재취업 남성은 끝내 섭외하지 못했다.

강선일(이하 강)- 우리 사회의 취업 현실, 고통받는 취업준비생의 모습을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다. 이유가 너무 숭고해지는데. (웃음)

전- 인턴기자를 수십 번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다. 서류전형을 통과해본 적이 없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복잡한 심정이다. 스펙을 높이자, 이런 걸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이 글도 내겐 하나의 스펙이 된다는 사실이.

스터디 팀원들에게 술 마시며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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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기자 지망생이라면 대기업 취업 스터디는 잘 맞지 않았을 텐데.

전-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기 전에 나는 대기업에 가려던 사람이었다. 대기업 취준생의 절박한 심정을 기사에 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스터디에 참여했다. 일주일에 3번씩 3개월 가까이 만났는데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했다. 자소서를 계속 써야 하고 남의 자소서를 계속 첨삭해야 하고. 하지만 내 생애 첫 기사니까 그 정도는 취재해야겠다 싶었다.

민희- 취재라고 밝혔는데 스터디 친구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스펙을 쌓으려고 우리를 이용한 것 아니냐고.

전- ‘지금 말해야 되나, 이번에 말해야 되나’ 한 달 동안 망설였다. 술 마시면서 고백했다. 다들 생각도 못해 깜짝 놀랐다. 지금도 미안하다.

찬혁- 기사화하는 걸 꺼리지 않았나.

전- 그렇진 않았다. 우리의 시간이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민희- 씁쓸한 감정이 생겼을 것 같다, 나라면.

전- 카카오톡으로는 계속 기사가 좋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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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혁- 취재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나.

강- 생명보험회사에서 교육받을 때 가장 힘들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2주간 교육받았다.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느라 아버지 생신 모임, 취업 OTL 기획회의에도 못 갔다. 취업이 뭐길래 이렇게 자존심까지 내팽개쳐야 하는 걸까 싶었다.

전- 첫 회에 내 이야기를 쓰는데 자기소개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나는 과거를 써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또 지나치게 돈에 맞춰 낭비되는 것을 다루지 못했다. 20대라는 시간. 고통스러우니까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취준생들이 찾는데 그런 모습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우울하게만 써졌다.

찬혁- 취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나- 언론사 취업만 준비해봤지만 일반 기업은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금융권 20곳에 지원했는데 서류도 통과하지 못했다. 취업이 쉽지 않구나 한 번 더 절감했다.

전- 취업시장이 문제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글을 쓰다보니 다른 관점도 생겼다. 토익을 참 나쁜 시험이라고 단언했는데 기업 입장에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너무 없지 않나 싶었다. 스터디룸이 꽉 차서 예약할 수 없을 정도로 취준생이 많은데 무슨 기준으로 뽑을까, 대기업도 갑갑하겠다 싶었다.

민희- 주변 취준생의 반응은 어떤가.

나- ‘최고 스펙은 남자’라는 기사를 봤는데 여자친구들이 공감된다고 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까 남자들은 엄청 욕을 했더라.

찬혁- 남자라고 다 취업이 잘되는 게 아닌데, 지나친 대립 구도 아닌가.

강- 취업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고 객관적 통계자료도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남자도 많이 떨어지니까 욱하는 게 아닌가.

취업 성공하면 그냥 다녀볼까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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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즘은 최고의 스펙은 부모라는 말도 있는데.

정- 학과 차이도 있지 않을까. 대기업은 공대생을 많이 뽑는데 공대는 대부분 남자잖나. 취업 OTL에 참여한 기자들의 전공이 다 인문계라서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전- 친구 중에 건축학과 여자가 있다. 중소기업까지 다 떨어졌다. 건축 쪽에선 여자들이 적은데다 아예 안 뽑더라.

정- 취업 실패를 예상했나.

나- 지원서 100개를 쓰면 서류전형에서 10개 통과한다고 들었다. 15개를 쓰면서 한두 개는 면접 보겠지 싶었다. 서류에서 하나 붙었는데 필기에서 떨어졌다. 주변에서 100개는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전- 예상은 했는데 생각하기 싫었다.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 역할을 하는데 진짜 의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배우 같았다.

정- 간절함이 왜 생겼나.

나- 입사 지원을 하면서 연봉이나 복지를 보게 되고 주변에서도 다들 가고 싶어 하니까. 이렇게 좋은 곳인데 나도 되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정- 되면 가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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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화를 좋아해서 CJ E&M은 가고 싶었다. 서류에서 떨어졌다.

강- 지원 분야가 영업직인데 경험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활발한 성격도 아니고 말주변도 없어서.

나-금융권의 최고 초봉이 6천만원이더라.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 정도 연봉이라면 자격증 따고 경력을 쌓으면 되지 않을까 마구 상상했다. 다 떨어지고 역시 언론사를 준비하겠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정- CJ 리턴십에 합격하면 해볼 생각이었다. 편집장이 꿈 깨라고 놀렸는데, 그 말이 맞았다. (웃음)

민희- 왜 떨어뜨렸다고 CJ는 말하던가.

정-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 몇천 명 중 하나니까. 기자라는 걸 숨기면서 2002년부터 경력이 없어졌고.

찬혁- 취업 OTL 5회에 이직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들어갔는데 뜬금없었다.

정- 결과적으로 취업에 다 실패해 ‘취업 성공 이후’를 담지 못했다. 취업에 성공하면 그것으로 ‘해피엔딩’일까,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었다.

찬혁- 취업·면접 컨설팅은 많이 받나. 도움이 되나.

나- 누가 받나 싶은데 생각보다 많다. 비싸서 그렇지. 학교에서 컨설턴트를 초청하면 1시간 안에 마감된다.

전- 취업 스터디를 컨설팅업체 주관으로 시작했다. 2주의 기간이 끝나고 엄청 욕했다. 자소서도 제대로 첨삭해주지 않는데 저 사람을 어떻게 믿고 100여만원씩 내냐고. 하지만 한 스터디 친구가 면접 가면 등록할 거라고 말하더라. 면접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려우니까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다. 취준생의 절박함을 노리고 장사하는 현실이 슬프다.

찬혁- 한 꼭지 더 쓴다면 뭘 쓰고 싶나. 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을 취재해보면 어떨까. 왜 떨어졌는지도 알려주고.

나-자기만의 삶을 개척하는 20대를 인터뷰하고 싶다. 어떤 마음가짐이면 그렇게 씩씩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취업 준비하며 우울감이 커져서 생활 상담을 받는 친구도 많으니까.

강- 남동생이 이공계 출신이라서 취직한 상태다. 나는 기자 되겠다고 이러고 있으니까 부모님이 불편해한다. 아버지가 “야,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소리도 지르고. 나는 기가 죽고 그렇다. 취업하며 겪는 가족 간 스트레스를 써보고 싶다.

지방은 박람회·컨설팅도 없다

민희- 취업 OTL이 서울 중심이라 지방에선 상대적 박탈감이 있을 수 있다.

찬혁- 실제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그런 느낌이었다. 박람회나 컨설턴트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지방에선 아예 없다. 지방 대학생이 기자였다면 다르게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만약 취업 OTL 시즌2를 한다면 마이스터고 졸업생 등 좀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정- 첫 회 편집자주에서 ‘아름다운 도전기’를 담겠다고 썼다. 아름다운 도전기란 합격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땐 이미 취업 실패담이라는 게 확실해져서. (웃음) 지난 6개월간 불안 속에서도 자기 꿈을 향해 도전해온 전다은·강선일·나해리씨가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연봉도 높지 않고 노동강도도 세지만 기자라는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그랬다. 두렵지만 용기를 낸 덕분에 올해 취업 OTL을 썼고 내년엔 길벗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취준생을 더 만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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