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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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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기에 필살기까지 다 익히면 나도 될까?

20대 남녀 취업준비생의 보험설계사 교육·면접 컨설팅 참가기
“면접 자세 교정, 목소리 훈련 4시간에 60만원이라니…”
등록 2013-12-18 14:53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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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27·가명)씨는 지난 8월 2주간 보험설계사 교육을 받았다. 후배가 추천한 생명보험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생명보험협회 주관 시험을 치렀다. 이나연(23·가명)씨는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지난 11월 면접 컨설팅 업체를 방문했다. 면접 자세와 목소리 훈련을 4시간 받는 데 60만원을 내야 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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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호

8월20일: 면담 생명보험회사 회의실에 앉아 있는데 팀장이 들어왔다. 건장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 ‘엄격한 상사’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영학이 학교 선배라고?”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보험설계사를 우스갯소리로 ‘동남아’라 하지. ‘동네에 남아도는 아줌마’란 뜻인데. 우리 회사는 취업준비생을 보험설계사로 양성하는 과정을 만들었어. 스펙 이런 거 중요하지 않아요, 본인이 의욕 있고 4년제 대학만 나왔다면.” 그는 서류봉투를 건넸다. “다음주 월요일에 지원자 면접이 있으니까 자기소개서 작성해와요. 정장 입고 가방 들고.”

문재인 성대모사까지 하게 될 줄이야

8월26일: 면접 주말에 산 정장을 입고 면접실에 앉았다. 예쁘장한 여자가 들어온다. 함께 면접을 볼 지원자다. “자기소개를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목소리를 일부러 높였다. 발음도 또박또박 하려 했다. 눈도 꽤나 부릅떴다. “젊음과 열정을 이곳에서 쏟고 싶습니다.” 면접관의 표정이 알쏭달쏭했다. “안녕하십니까.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여자, 이은영입니다.” “은영씨, 국제 콘퍼런스에서 영어 발표도 했다면서요?” 말이 끝나자마자 영어가 들렸다.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민족주의 아니면 국가주의에 관한 얘기 같았다.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단어가 귀에 꽂혔다. “잘 들었습니다. 활동을 많이 했네요? 요트 동호회 회장, 공모전 수상.” 처음에 ‘다소곳하다’고 생각했는데 얘길 들어보니 활달한 성격 같았다. 체대생이라고 했다. 영어가 유창하니까 외국 경험도 있겠지. ‘후덜덜’한 스펙을 가진 게 확실했다.

“노민호씨, 특기에다 ‘성대모사’를 적었네요?” 남들이 안 적을 만한 걸 고민하다 그렇게 적었다. 역시나 시킨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 성대모사를 하자 면접관이 ‘풉’ 소리를 낸다. 웃기긴 한데 확 와닿진 않았나보다. “그 자신감 보기 좋습니다.” 딱히 내세울 게 없는 내가 성대모사로라도 각인시켜 다행이다. 면접이 끝나고 팀장이 대기실로 왔다. “목요일 아침 8시에 출근해요.”

8월29일: 교육 1일차 ‘사고’를 쳤다. 회사에 도착하니 아침 8시10분. 집이 경기도 남양주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났는데도 그랬다. 1층 엘리베이터에서 팀장이 내렸다. “첫 출근부터 지각하면 쓰나.”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 미용실에서 머리도 정리해요. 옆가방도 하나 사고.” 그는 내 짝퉁 루이뷔통 가방을 쳐다봤다. “영업하는 사람은 외모가 제일 중요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바꾼다고 생각해요.”

15층 강의실에는 정장을 입고 내 또래로 보이는 10여 명이 앉아 있다. 같이 면접을 본 은영도 보였다. 반갑게 인사했다. 한 달간 우리를 교육할 여성 코치가 말했다. “아직 정식 교육생이 아닙니다. 다음주 목요일에 시험을 봐야 해요. 생명보험협회에서 치르는데 통과하지 못하면 ‘끝’입니다.” ‘끝’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그는 보험 판매를 하다가 실적을 쌓아 코치로 ‘영전’했다고 했다. 시험 교재를 받아보니 172쪽이나 됐다. 생명보험의 기능과 세제, 보험모집 준수사항 등 낯선 용어가 수두룩했다.

10년 만에 다시 한 ‘야간자율학습’

8월30일: 교육 2일차 우리 지점엔 남자 4명, 여자 2명이 배치됐다. 지점장이 교육생을 점심 회식에 초대했다. “영식아, 무에타이 할 줄 안다고 했지. 보여줄래?” 지점장이 말했다. 영식은 고등학생 때 무에타이 선수였다. “죄송합니다. 양복 입은 채로 하기엔.” 지점장은 농담이라며 웃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옛말에 상사가 사주는 값진 음식보다 혼자 끓여먹는 라면이 더 맛있다고 했지, 허허.” 지점장의 말에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9월4일: 교육 5일차 카카오톡이 왔다. “지점장님, 오늘도 우리 지점 교육생 6명 출석 완료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파이팅’을 외치는 귀여운 고양이 이모티콘이 붙어 있다. 앞에 앉은 은영이 보낸 것이다. 반장으로 뽑힌 은영은 매일 출결 보고를 올린다. 처음 며칠간은 지점장도 “그래, 좋은 하루”라는 답장을 보내더니 이제는 확인만 한다.

내일이 시험날이라 분위기가 살벌하다. 생명보험협회 주관 시험은 총 40문제다. 공통(보험에 대한 기본 상식) 20문제, 생명보험 10문제, 제3보험 10문제. 공통과 생명보험, 공통과 제3보험 각각 두 가지 점수를 합해 60점을 넘어야 합격이다. 나는 위태위태하다. 어제는 10년 만에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했다. 하루 종일 모의고사를 보고 평균 70점이 안 되면 자습하라고 코치가 명령했다. 내 점수는 68점.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강의실에 남았다. 오늘은 기필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버지 생신날이기도 하다. 동료 한 명이 문서를 돌린다. 교재 요약본이다. “다 같이 합격해야죠.”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온기가 느껴졌다.

오후 5시30분 교육 마감 시간. 평균 점수가 70점을 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코치가 말했다. “오늘은 평균 점수 80점 미만인 사람들까지 남아요.”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점장이 단체 카톡방에 문자를 남겼다. “모의고사 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은영은 역시 반장답구나.” 은영은 항상 90점대였다. 두 번인가 100점도 받았다. “민호는 나 망신시키지 말고.” 지점장은 우리 점수를 어떻게 알았을까.

9월5일: 교육 6일차 서울 신도림역 근처 생명보험협회 시험장. 시험은 순식간에 끝났다. 문제는 아주 쉬웠다. 몇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었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러 갔다. 코치는 ‘금주령’을 내린 상태지만.

9월6일: 교육 7일차 지각생이 속출했다. 숙취 탓이다. 코치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진짜 시작”이라며 잔소리했다. 한 동료가 말했다. “이번에 시험 본 사람 다 합격했대.” 내가 아니라고 답했다. 나와 함께 야자를 했던, 맨 앞 오른쪽에 앉아 있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왜 코치가 떨어진 사람 없다고 한 거지?” 회사는 그를 ‘아예 없던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비관적 마인드 가진 사람, 여기서 나가”

자기소개 시간에 들어보니 다들 인재였다. 단편영화 감독, 멘사 회원, 축구팀 단장, 칵테일 제조 자격증 소유자, 중국어 능통자 등 경력이 다양했다. 온라인 게임 (WOW) 랭킹 세계 44위인 사람이 말했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한 기혼자인 31살 형은 ‘성공해야 할 이유’라는 영상을 틀었다. 한 살짜리 아기가 아빠와 노는 모습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며 배수진을 치고 지원했습니다.” 절박함에 숙연해졌다.

9월9일: 교육 8일차 임원이 강연할 때 ‘졸지 말라’고 코치가 다그쳤다. “행동 하나하나를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육 끝나고 최종 면접이 있어요. 제 의견이 95% 반영됩니다.” 실제로 강의실 뒤쪽에는 코치 책상이 있었다.

한 임원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주제로 강연했다. 멘토란 이들이 신물 날 정도로 하는 얘기다. 근데 충격이었다. “요새 젊은이들 80%가 꿈이 없대. 이성 친구가 꿈이 없잖아? 그럼 그냥 헤어져.” 그는 반말로 강연했다. “세상엔 매사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부정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여기서 나가.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돼.” 내심 찔끔했다. “보험설계사는 자영업자야. 의사·변호사·회계사·컨설턴트처럼 각자 사업을 이끌어가지.” 보험설계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아닌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강연이 끝나자 동료가 말했다. “오늘 강연 좋지 않았어?” 별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등 뒤에 코치가 있었다. 대충 얼버무리려다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부정적인 것과 비판적인 건 다르지 않나.”

9월10일: 교육 9일차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보험을 판매할 것인가.’ 핵심은 인맥 관리였다. 자주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차츰차츰 연락하며 지낸다. 기회가 됐다 싶을 때 보험 얘기를 꺼낸다. “보험을 안 들면 결혼·교육·노후 자금 등을 마련하기 불가능하다”는 걸 강조한다. 세련된 말발을 실습하는 시간도 있었다. 나는 도저히 안 됐다. 그러나 몇 사람은 보험설계사가 천직인 듯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교육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잡지 않았다.

12월6일: 그 후 석 달 만에 영학을 만났다. 같이 교육받던 동료의 안부를 물었다. “은영은 진짜 잘하더라. 엘리트야.” 내 예상이 맞았다. “영식은 얼마 전에 그만뒀어요. 자기 적성에 안 맞았나봐.” 무에타이 선수였던 영식은 교육을 받을 때도 고민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빨리 돈을 벌긴 해야 되는데”라고 읊조리면서.

인사 각도와 말투도 똑같았던 그들

이나연 “제가 먼저 답변해도 되겠습니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른 지원자들은 똑같이 말했다. 미소를 띠고 오른손을 살짝 드는 모습까지 빼닮았다. 빈틈없는 면접 자세였다. 어디선가 배워온 듯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그랬다. 엉거주춤한 나와 달리 그들은 같은 각도와 자세로 면접 인사를 ‘구사’했다.

면접에서 몇 차례 떨어진 뒤 나는 컨설팅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너무 아기 같아요.” 전화 너머에서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몇 살이에요? 23살? 너무 아동틱한데.” 컨설팅 비용은 2시간씩 두 번에 60만원. 덤으로 1회 더 해주는데 그건 면접 당일에 진행한다. “벼락치기가 효과 있어요.” 면접날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고 추가 비용(15만원)을 받는단다.

11월21일 1차 컨설팅. 여성 컨설턴트가 강의실로 들어온다. ‘이미지 컨설팅’을 주제로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유명 인사다. 50대지만 열심히 가꾼 티가 났다. 그도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키가 많이 작다는 게 흠이네요.” 컨설턴트의 키는 170cm가 넘었다. “‘어릴 때부터 야무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라는 식으로 자기소개를 합시다. 면접 포인트는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거예요.”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컨설턴트가 말한다. “하나은행은 고급스러운 이미지고 외모를 많이 봐요. 국민은행은 외모 진짜 안 보더라.” 근거는 말하지 않았다. “기업이 선호하는 얼굴과 느낌을 보고 뽑아요. 또 금융권에서 3분의 1은 인맥으로 들어가요. 우리 아들도 ‘꽂아’주려고 했는데 본인이 싫다잖아.”

면담이 끝나자 면접 자세를 설명했다. 발 모양은 와이(Y)자여야 한다. 한쪽 다리가 다른 쪽 다리보다 훨씬 뒤쪽에 있다. 그래야 다리 사이가 뜨지 않는다. 서서나 앉아서나 그 발 모양을 유지한다. 인사할 때도 그렇다. 위태위태한 발 모양으로 서서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한 뒤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센다. 그리고 허리를 완전히 편다. 익숙하지 않아 자꾸 틀린다. 수십 번 연습했다. 앉아 있을 때도 치마가 뜨는 가운뎃부분에 손을 모은다. 발 모양, 손 모양에 신경 쓰다가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일은 내게 바캉스와 같습니다.” 컨설턴트가 말한다. “여성잡지 표지모델로 선정돼 인터뷰에서 내가 한 말이에요. 이 말을 면접 때 꼭 활용해요. 수강생한테 알려준 적이 없는데 오늘만 특별히.” 왜 금융권에서 일하려 하느냐고 면접관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조언했다. “학교에서 금융 수업을 들으며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제 생활신조는 바캉스와 같은 일을 하자는 건데 금융이 그랬습니다.” 컨설턴트는 자신의 말에 감탄했다. 뒤늦게 출신 대학을 물어 답했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컨설팅업체는 우리 학교 내에 있었다. 갑자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교내에 있으니까 학생들이 이용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학교 관계자를 내가 좀 아는데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라고요. 문제는 학생회장이에요. 꿈쩍도 하지 않아요.” 도무지 취업 현실을 모른다고 혀를 찼다. “학교 차원에서 제휴를 맺으면 학생들이 생돈을 날릴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자기네가 서울대생인 줄 알아.” 컨설턴트가 자기가 쓴 책을 가져왔다. 커다랗게 서명을 하더니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총학생회장의 연락처도 함께였다. “전화 한 통 부탁해요. 학보에 실린 컨설팅업체 인터뷰를 봤는데 학교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해요. 내가 시켰다고는 하지 말고.”

복식호흡, 이런 것까지 익혀야 해?

12월4일 또 면접을 망쳤다. 처음부터 고비였다. 밋밋한 내 자기소개와 달리 다른 지원자들은 통통 튀었다. 보디랭귀지를 적절히 섞어 쓰고 표정도 풍부했다. 어찌 그렇게 떨림 없이 말을 잘하는지 놀라웠다. 나는 떨려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질문이 들어오면 정전이 되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미소를 띠고 최근에 읽은 책,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척척 대답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면접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다음날 2차 컨설팅을 예약했다. 전직 아나운서가 강사로 나왔다. 먼저 내가 글을 읽고 목소리를 녹음했다. 들어보니 역시나 쩍쩍 갈라졌다. 목으로 말하는 게 문제였다. 복식호흡법을 배웠다. “숨을 들이마실 때 배를 쭉 내밀어요. 내쉴 땐 배를 집어넣고요.” 자꾸 반대로 들이마실 때 배를 집어넣고 내쉴 땐 내민다. “말할 때 배를 톡톡 튕기듯이.” 강사가 내 배를 치며 말했다. 어색해 웃어넘기고 싶지만 강사는 진지했다. 이번엔 대본을 바닥에 놓았다. 선 채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읽었다. 그러면 자동으로 복식호흡 말하기가 된다고 했다. 30분 넘게 그렇게 연습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지적도 받았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라고 했다. 입을 크게 벌려서 ‘아·에·이·오·우’를 10번 반복했다. 글을 다시 읽고 녹음했다. 확실히 나아졌다. 복식호흡을 열심히 연습하며 생각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합격할 수 있을까.’ 노민호/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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