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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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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의 반영

교내 채용박람회 최고 인기, ‘취업운 타로점’
등록 2013-12-12 15:37 수정 2020-05-03 04:27

“준비가 됐지만 마음이 여립니다.”
타로카드를 하나씩 뒤집으며 타로점술사가 말한다. 점괘는 한마디로 ‘올해 취업이 힘들다’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묻고 싶지만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다. ‘취업운 타로카드’ 부스는 교내 채용박람회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내년 초에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래.” 졸업하고 1년을 아르바이트하며 보낸 채원이 말했다. 그는 유명한 홍익대 앞 타로점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질문 하나당 1만원씩 낸다고 했다. 타로카드는 직접 고른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셈이다. “사무직에서 일하고 싶은데 언제쯤 취업이 될까요?” 카드를 뽑는 채원의 손이 떨렸다. 다리가 4개 달린 책상 그림이 나왔다. 점술사가 점괘를 읊었다. “사무직 맞네요. 회계·세무 쪽이 좋겠군요.” 회계·세무직을 원하던 채원은 눈시울까지 붉혔다. “당분간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지만 내년 2월·4월에 운이 아주 좋습니다.” 채원은 다시 놀랐다. 가고 싶은 회사의 필기시험이 2월, 면접시험이 4월에 잡혀 있었다. 5분 만에 2만원을 내놓았지만 채원은 만족했다.
나도 방송에 여러 번 출연한 타로점술사를 찾아갔다. “언제쯤 취업할 수 있을까요?” 타로카드를 3장씩 두 차례 뽑으라고 했다. 탑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카드가 처음 나왔다. “앞으로 많이 불합격하겠습니다.” 점술사가 말했다. 과로, 치열한 경쟁, 어려움을 의미하는 나쁜 카드가 잇달아 나왔다. “앞으로 6개월간은 취업이 어렵겠네요.” 기운이 빠져가는데 문이 열리는 카드가 마지막에 나타났다. “내년 중반에 취업을 기대하세요.” 내년 2월에 졸업하고도 한참 더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자 나이 24살, 아무런 경력도 없는데 불안했다. 아르바이트부터 구해야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타로점을 처음엔 재미 삼아 봤다. 그러다가 이내 진지해졌다. “이 길이 나와 맞는 걸까요?” “그렇다”는 점술사의 한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맞지 않다는 점괘가 나온다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심각하게 고민할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취업 현실에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더라도) 미래를 엿보고 싶은 욕망이 타로점에 스며든다.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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