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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화] ‘돈’이 위로 몰려 화가 뻗친다

‘울화와 돈’에 대해 ‘뚫어 뻥’을 외친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
등록 2009-04-02 11:56 수정 2020-05-03 04:25

돈 때문에 터지는 ‘울화’를 야구로도 못 달랜 그날, 홍 연구위원은 동양철학의 ‘상징’을 통해 ‘돈’과 ‘화’를 설명했다. 경제면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넘겨버리던 무지한 청자의 귀에까지 술술 파고든 그의 강연은 ‘신통방통’했다.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

금융경제연구소 홍기빈 연구위원

‘수승화강’의 원리에 반하는 현실

홍기빈: ‘돈’은 쓸모가 정해져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길을 찾아서 보내주는 것이다. 돈을 쟁여놓으면 사람도 돈도 망가진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계속 쌓아놓다가 주식투자같이 다른 돈을 더 끌어올 수 있을 때만 쓴다.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나는 동양철학의 ‘오행’(五行)이 우주나 사람의 몸이 전체를 순환할 때 반드시 밟아나가야 할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전국시대 동양의학 경전인 에는 ‘화’(火)의 속성으로 ‘흩어질 산(散)’자를 써놨다. 심장에서 피가 뻗어나가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돈’ 역시 ‘돌고 돈다’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 사회 전체를 돌아서 ‘돈’이라는 것이다. ‘화’와 ‘돈’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경제학자들도 화폐의 유통체계를 혈액의 순환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돈’을 ‘화’에 비유한다면, 돈은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눈에 보이는 곳에서 물은 아래를, 불은 위를 향하지만 그렇게만 되면 지구가 유지될 수 없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고, 태양에너지는 아래로 내려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에너지가 된다. 이것이 수승화강(水乘火降)이다. 이는 우주의 원리로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 향하기에 인간은 출산을 하고 곡식을 거두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신자유주의 경제는 수승화강의 원리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돈을 물에 빗대 ‘부자들의 배를 불려주면 언젠가 물이 아래로 떨어져 가난한 사람들의 입을 적신다’는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 이론에 충실했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서비스·사치품 시장을 확대했다. 대학에서는 이것을 분배이론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최근엔 신자유주의 경제를 이끈 잭 웰치, 고든 브라운, 앨런 그린스펀 등이 줄줄이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화’의 기운을 가진 ‘돈’은 아래에 풀어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어째서 온돌을 애용했는지 생각해보자. ‘돈’은 ‘화’이기 때문에 아래에 갖다놔야 올라간다. 금융시장 등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빈곤층에게 돈을 풀어야 한다.

지금은 ‘자금의 중계’를 해야 할 금융기관조차 리스크를 줄여 수익을 창출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 금융기관조차 나갈 때보다 들어오는 게 많을 때만 지갑을 연다. 그러면 시중에 돈이 돌 수 없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 가장 위에만 꽁꽁 묶여 있다. 도교 경전에 ‘주화입마’(走火入魔)란 말이 있다. 도를 닦다가 기가 잘못 흘러 역상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통이 막힌 사회에서 살다 보면 순환이 안 돼서 ‘울화증’이 난다. 이유 없이 화가 뻗쳐 우발적인 살인을 한다. ‘입마’(入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보험금을 노려 일가족을 살해하고, 암에 걸려도 계속 경쟁전선에 뛰어드는 게 왜 이상한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생긴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한 군데 몰려 있어서다. 돈이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돌게 해줘야 한다.

‘내 새끼주의’부터 버리자
인터뷰 특강에 초등학생이 떴다. 사회자 오지혜씨는 “그동안 고등학생 수강자는 봤어도 초등학생은 처음”이라며 놀랐다. 이들은 똑 부러지는 질문까지 던져 강연장을 후끈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특강에 초등학생이 떴다. 사회자 오지혜씨는 “그동안 고등학생 수강자는 봤어도 초등학생은 처음”이라며 놀랐다. 이들은 똑 부러지는 질문까지 던져 강연장을 후끈하게 만들었다.

오지혜: MB 정권의 ‘기업 프렌들리’를 왜 서민·빈민 계층까지 지지하는 것일까.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가 망한다는 기업 중심의 의식을 가진 분들이 있다. 실제적 대안이 있나.

홍기빈: ‘건강’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면 몸짱이나 운동선수가 숭배를 받는다. 지난 7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최고경영자(CEO) 숭배’ 현상이 생겨났다. CEO가 대통령이 되면 다 잘살게 될 거라 믿는 것이다. ‘대안’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것도 위험하다. 그들의 논리는 새벽 3시에 집에 들어온 아빠가 자고 있는 부인과 아이를 깨워서 술을 마시자고 해, 자다 깬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럼 대안 있냐?”라고 묻는 식이다. 멀쩡한 사회를 황당한 방향으로 뒤집고 나서 안 된다고 하면, 그럼 너는 대안이 있느냐고 다그친다. MB 정권이 취업자 대책이라고 내놓은 인턴제도에 대안이랍시고 “비정규직이라도 시켜줘라”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 근본적인 ‘대안’의 의미를 고민해봐야 한다.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생협이나 공동체 자치의 형태로 소득을 만들어내고 있다.

청중1: 백수다. 이번호 을 보니 지금 말한 대안을 칼 폴라니의 이론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칼 폴라니의 이론을 실행하자면 기득권이나 지배체제를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실천 방안을 제시해달라.

홍기빈: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맞다. 지난 30년간의 운영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총체적 위기 상황인데, 우리의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바꿔야 하는지 위기의 범위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더 큰 위기다. 대안이나 해결책을 연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절실하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는 칼 폴라니의 이론은 지금 기꺼이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리는 연금이나 보험으로 노후를 준비해왔다. 노후가 상품화된 것이다. 그보다는 몸을 건강하게 단련하고, 아플 때 의존할 수 있는 친구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를 상품화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청중2: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적 연대가 아쉽다.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홍기빈: 우리 사회 중산층의 형성 과정에는 물질주의·개인주의가 팽배하다. 그들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내 새끼주의’다. 교육정책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것도 ‘내 새끼’가 잘되는 방향만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새끼’만 잘되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세대라는 건 지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대’를 이타주의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연대는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 사람 새끼다’라고 보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략적 동맹은 연대가 아니다. ‘연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 ‘내 새끼주의’부터 버리자.

글 최고라 17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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