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사회자 서해성 작가의 말대로 ‘대중이 사랑하는 과학자’다. 지난 3월27일,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그 어느 지점에서 열정적으로 우리 삶을 해독·해석하는 그에게 이번엔 ‘선택’에 관해 물었다. 어떤 이에게는 지금 마주하게 된 우연치 않은 이 강연이 삶에서 자신의 ‘끌개’를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지만, 그런 비장한 긴장감은 접어두고 모두 유쾌한 강연에 빠져든다. 무대에선 사회자와 정 교수가 ‘정치성’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것으로 시작을 알렸다.
선택이 언제나 합리적일 거라는 착각
정재승: 올해의 인터뷰 특강 주제 ‘선택’은 마침 내가 연구하는 분야라서 반가웠다. 우리는 살며 할까 말까, 받아들일까 말까 하는 의사결정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오늘의 목표는 좀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다. 테드 강연의 소재로 유명해진 ‘마시멜로 쌓기 게임’을 한번 보자. 우선 몇 그룹에 마시멜로 탑 쌓기를 시킨다. 그중 유치원생들은 아무 계획 없이 일단 작은 탑부터 쌓아본다.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성공하면 좀더 높은 탑을 쌓아나간다. 이 실험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는가. 대다수 사람들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쓴다. 젊을 때는 나이 들었을 때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나이 들면 노후 계획을 세운다. 인생을 돌아보자. 계획대로 살아졌는가.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첫 번째 룰은, 의사결정을 실제로 하라(Go!)는 것이다. 때론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 된다. 맞는 조건이 90%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된다면 일단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워낙 일을 잘 벌리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겠지만. (웃음) 그렇지만 빠르기만 한 게 좋은 것도 아니다. 블링크(Blink)와 싱크(Think)의 선택에 달렸다. 즉각적 의사결정이 더 의미 있을 때도 있지만, 심사숙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선거 같은 일은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첫인상을 고집하는 경향이 많다. ‘체감표지’라는 게 있는데, 뇌가 만들어놓은 인지적 단축회로 같은 거다. 기억과 사실과 감정 등을 한데 모아서 직감으로, 본능적으로, 순식간에 판단하는 거다. 사람들은 이 강렬함에 경도돼 경솔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를 보고 꿈꿀 수 있고, 그래서 나를 흥분시키고 나의 뇌에 쾌락을 주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경제적인 동물이다’라는 말은, 인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자라는 가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 사람은 그다지 합리적·이성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지 않다. 여러 가지 실험을 보건대, 선택의 고민이라는 것은 자기합리화 과정이기도 하다. 곧 이미 진작에 결정해놓고는 결국 이런저런 자기설득의 이유를 붙인다. 우리 뇌는 이런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게끔 돼 있는지도 모른다. 3만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뇌, 원초적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던 바로 그 뇌로 지금도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이 언제나 합리적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자기확신을 객관화해 볼 필요”
의사결정에 관해 기억할 점은, 자기확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기억의 부실과 부정확 때문에 판단착오를 할 수 있음에도 자기가 지금 아는 것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안다고 하지만, 실은 즉각적 자기확신에 치우친,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지금 정치적 소용돌이에 있는 보수 진영 대 진보 진영의 싸움에도 그런 과도한 자기확신, 그것의 강요가 보인다. ‘상식과 몰상식이다’ ‘개념 있는 자와 개념 없는 자의 대결이다’라고 하는 순간 편향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건 매우 시대적이고 임의적인 개념이다. 자기확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객관화해 볼 필요가 있다.
좋은 의사결정이란 무엇인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된 특징은,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성실하게 모은다, 그런 뒤 남들보다 한 발짝 먼저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거나 상황이 바뀌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바꾼다, 이다. 겸손함과 결단력을 동시에 갖기란 참 힘든 일이다. 자기확신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겸손함과, 잘 결단하는 능력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이들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다.
끝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겠다. 뭘 해야 좋은지 모르겠다는 학생이 많다. 당연하다. 뭘 하려면 머릿속에 지도가 들어 있어야 한다. 스스로 수많은 시도와 경험을 해서 관심 분야의 전체적인 지도를 그려나가야 한다. 머릿속에 지도가 들어 있어야 내 인생을 올인할 만한 선택을 할 수 있다. 20∼30대에 여러분만의 지도를 그려보시라. 그때 그걸 못하면 40∼50대에 남의 지도를 기웃거리게 된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 지도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거다. 오늘 나의 결론은 유치원생·초등학생의 마음으로 일단 시도해보시라, 그리고 그것에 끝나지 않고 자기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을 하시라, 이것이다.
청중1: 현실과 꿈 사이에서, 꿈을 선택했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답한다면.
정재승: ‘너무 현실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말고 꿈을 꾸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태도를 깊이 고려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사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어떤 삶의 양식을 갖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사는 사람인지 성찰해보는 일, 즉 자기객관화의 성찰이 중요하다. 그것과 현실적 노력을 일치시켜나가야 한다.
청중2: 살면서 중요한 결정이 진로와 결혼이다. 결혼의 선택 과정을 알려달라.
정재승: 단 한 번의 선택을 경험했기에 말하기 조심스럽다. 20대 내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실패하는 데 온전히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다양한 사람과 여러 관계를 맺어보고 겪어보고…, (몹시 주저하면서) 결혼은… 늦게. (모두 웃음) 뜨거운 열정이 있을 때 결정하지 말고 그 열정이 식은 자리에 무엇이 남을 것인지 생각한 뒤 결정하시라.
나의 삶은 나의 선택, 그것이 곧 나
많은 문답이 이어진 강연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오랜만에 따뜻한 봄밤이다. 효창운동장 불빛 아래 밤안개가 포근하다. 잔뜩 껴입고 나온 오늘밤처럼 언제나 오래도록 망설이다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긴 자책과 회한이 이어지는 병통이 있는 사람이 밤길을 걷는다. 나의 삶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선택이 곧 나다. 존재의 일일지니, 선택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종옥 제22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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