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인터뷰 특강 ‘청춘’이 지난 4월19일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의 ‘청춘을 노래한다’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3주에 걸쳐 특강이 진행되는 동안 강연 장소인 서강대 교정은 전보다 한층 더 연녹색으로 물들었다. 심 전 대표는 사회자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청춘을 회상하는 노래를 청하자 산울림의 을 불렀다. 노랫가락은 심 전 대표의 청춘처럼 힘있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김용민(사회자): 51년 전 오늘(4월19일) 이 땅의 청춘들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고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요즘 청춘들, 정치에 무심하다니 지혜롭다. 시위를 해도, 촛불을 들어도 청년의 삶은 황폐해져가기만 했으니…. 오늘 모신 분은 이에 지대한 책임을 느끼시는 분, 정치인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다. 정당이란 집권을 위한 조직인데, 진보신당은 ‘불임정당’ 아니 ‘피임정당’ 아니냐는 말도 있다.
심상정: 진보 정치가 청춘들에게 힘이 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는 듯하다. 진보 정치의 고뇌를 집약한다면 아직까지 국민이 ‘대안세력’이라기보다 ‘저항세력’으로 본다는 점이다. 분명한 집권 전략을 갖춘다면 국민의 기대에 더 빠르게 부응할 수 있다.
김용민: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 등을 다녀왔는데, 그 나라의 청춘들도 우리처럼 아파하는가.
심상정: 북유럽 3국의 청춘은 공부에 찌들지 않아 푸르른 새싹 같다. 핀란드에서 인상 깊었던 건 법적으로 규정된 ‘청소년 의회’다. 13살 때부터 지역구 청소년 의원을 뽑고 의회를 연다. 예산을 논의하고 두발 자유 등과 같은 문제를 청소년 대표들이 연설하고 얘기한다. 어릴 때부터 공동체 정치에 참여하고 평가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훈련되는 것이 부러웠다.
김용민: 이런 통찰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적용할 만한 가치나 체계는 없는지, 심 전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걸로 이어가보자.
하이힐 신고 나선 시위에서 노동운동의 대모로심상정: 1978년 대학을 갔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됐고, 1980년에 광주항쟁이 있었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은 독재정권 말기, 온 지식인 사회가 독재시대를 끝장내는 시대적 과제에 올인하던 시기다. 나는 운동은 안 하겠다 생각했다. 대학만 가면 미래가 보장된 시절이었다. 단, 운동권만 아니면. 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목표가 세 가지로 뚜렷해서 곁눈질하지 않으려 했다. 첫째는 연애를 실컷 해봐야겠다. 둘째는 참고서 말고 역사서 같은 책을 실컷 읽어봐야겠다. 셋째는 여행.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찍어봤다. 공부만 파지 않고 낭만도 즐길 줄 아는 친구들로…. 그랬는데! 찍어놓으면 영락없이 운동권이었다. 그중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어서 운동권 학회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맹렬하게 시대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운동권 여학생들은 옷차림이 다 비슷했다. 청바지에 운동화, 머리 스타일은 커트. 판에 박힌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스커트에 긴 생머리, 구두는 굽 7cm 이하로는 신지도 않았다. 마스크 등 위장도 하지 않은 채 그 차림으로 데모에 나섰다. 연말에 학생처장이 데모 사진을 보여주며 “데모하면 무기정학”이라고 징계를 하려는데, 내 차림이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자네 운동권 애인 뒀나” 하더라. 그렇게 무기정학은 면하고 (계속 운동을 했다).
방학 때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구로공단에 들어가서 ‘공활’(공장활동)을 시작했다. 공장에 들어가봤더니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노동자가 대접받지 못하고 무력한 상태로 생활하고 있었다. 산업체 특별활동을 13살부터 불러서 했는데, 이 친구들은 네다섯 시까지 일하고 야간학교를 간다. 그리고 (다시 공장에 와) 가방 내려놓고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다음날 아침에 바로 출근하더라. 내가 있던 공장에서 다림질하는 친구들을 ‘프레스’라 했다. 소매나 칼라를 센 열로 다림질해 누르는 작업인데, 이 친구들이 작업하며 조는 사이에 손이 꽉 눌려 오징어처럼 익어버리는 산재사고가 한 달에도 여러 번이었다. 재봉을 하면 손톱 위로 바늘이 지나가는 것도 수차례다. 그렇게 일해서 동생 학비 보내주고 부모님 약값 대며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우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했다. 한 달 일하며 ‘아, 이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된 벅찬 느낌을 그때 받았다.
25년간 노동운동을 했다. 2004년 국회에 들어왔을 때, 기자들이 얼마나 이념이 투철했으면 그렇게 오래 노동운동을 이어왔느냐고 묻더라. 생소한 질문이었다. 이념이 투철해서가 아니었다. 동구 사회주의가 망하자 같이 운동하던 선배들이 다 이 길을 벗어날 때도 내가 몸담고 있던 구로공단 노동자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운동을 그만둬야 했겠는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여러분도 집요하게 묻고 끝을 볼 것을 권한다. 자유란 ‘자기 이유’의 준말이라 생각한다. 어떤 선택에서 나의 이유가 분명할 때 자유가 된다. 요즘 우수한 사람들은 사법고시를 보거나 대기업 입사, 임용고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앞으론 중국이 잘 나간다더라’ 하며 트렌드에 따라 청춘을 몰개성하게 관리하고 있다.
여의도 갈 때 노량진을 지나는데, 고시촌 앞에 줄이 엄청 길더라. 학원 교실에서 맨 앞에 앉으려고 긴 줄을 선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위치에 진입하면 모르겠지만, 경쟁에서 탈락해 주변인이 된다면? 그때부터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방황하게 된다.
이렇게 방황하는 사회마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저출산율이다. 스웨덴은 사민당이 70년간 집권하며 국민이 위임한 권력과 예산을 복지에 투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육과 교육 제도에 투자한 것이다. 요즘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에 달려드는데, 정당이 복지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욕구가 과거와 달라졌음을 놀란 가슴으로 받아들여서다. 17대 국회에 있을 때 복지 얘기를 꺼내면 ‘복지병’이란 말을 안 들은 적이 없었는데, 상전벽해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가 된 이래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뜻은 좋은데 그게 되겠어?”다. 우리 국민이 정당정치에 가진 절망을 보는 듯했다. ‘되겠어?’를 ‘분명히 될 거야!’라는 확신으로 바꿔내는 길이 사회가 변화하는 길이고, 청춘이 희망을 갖는 길이다. 모든 것을 뒤로 물리고 자유 찾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한 맘으로 권한다.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 청춘
청중1: 심 전 대표가 생각하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심상정: 첫째가 청춘이다. 계층적으로 청춘의 미래와 직결돼 있는 비정규직이다. 복지는 2차 분배고, 사실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열심히 일해서 대가를 받아 취미 활동도 하고 아이도 키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청중2: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본인들의 ‘자기 이유’가 뚜렷하게 와닿지 않아서일 텐데, 심 전 대표의 20대 정치 의식이나 자기 이유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다.
심상정: 촛불집회 때 사실 대학생보다 중·고등학생이 많이 나왔다. 고3이나 대학생은 인생이 너무 바빠 다른 곁을 둘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학생들이 성공 신화를 좇아 뛰어들었지만 요즘은 ‘제발 루저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경쟁을 통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느냐’고 물을 때 다수가 그게 어렵다는 판단을 하는 게 현실이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죄송스러운 것은 진보 정당이 절실한 20대를 불러내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소홀했고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20대가 내년 선거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정면에 나서기 바라고, 동시에 진보 정당에서도 ‘20대 맞춤’ 공약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김용민: 일곱 번에 걸친 강연의 핵심은 ‘청춘이여, 너는 너의 것이다’였다.
심상정: 어떻게 살면 좋겠는지 그 끝을 봐라. 청춘이 꽃피어야 미래가 꽃핀다. 나와 진보신당이 그 파트너가 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다.
글 김혜림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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