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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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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변해”

제9회 인터뷰 특강 ‘선택’ 첫 번째 시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이라는 선택’
등록 2012-03-21 06:56 수정 2020-05-02 19:26

2012년 주최 제9회 인터뷰 특강의 주제는 ‘선택’이다. 사회자인 소설가 서해성씨는 이 선택의 의미를 두 가지로 해석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약자에게 강요된 선택, 그리고 2012년 우리 앞에 놓인 두 번의 중요한 선택이 그것이다. 첫 번째 강연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었다. 2011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한 그녀, 김진숙. ‘희망’의 대명사가 된 그녀의 지난 한 해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선택’을 고민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시종 유쾌하면서도 가슴 저리는 강연으로 300명이 넘는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 고난을 건너온 이만이 지닐 수 있는 밝고 투명한 건 강함이다. <한겨레21> 박승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시종 유쾌하면서도 가슴 저리는 강연으로 300명이 넘는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다. 고난을 건너온 이만이 지닐 수 있는 밝고 투명한 건 강함이다. <한겨레21> 박승화

“눈물보다 웃음의 힘이 훨씬 강해”

김진숙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와 내가 판사에게 인정받은 공이 있다. ‘정리해고를 사회적으로 여론화한 공’이다. 해고는 노동자에게 살인 행위인데, 우리 사회에서 이 살인 행위가 여론화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003년 한진중공업은 650명을 정리해고했다. 20년을 함께한 동지 둘을 잃게 한 게 바로 정리해고였다. 그러고도 (회사는) 8년 만에 다시 432명을 정리해고했다. 지난해 1월6일 동지를 잃은 그 크레인에 올라서 309일을 보냈다. (2003년 10월, 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은 마지막 60명의 조합원을 보고 129일 만에 목을 맸다. 그때 한진중공업의 조합원 수는 2500명이었다. 2500명이 끝까지 싸움을 함께했다면 김주익과 곽재규는 살아 있을 것이다. 노동자에게 약속은 목숨이다.

크레인에 오르고 100일도 더 흐른 지난해 4월27일 반전의 계기가 찾아왔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크레인 밑에 왔다. 그들은 고구마를 구워먹고, 쑥국 끓여먹고, 조합원이랑 사진 찍고 난리였다.(웃음) 조합원들이 몇 달 만에 웃어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웃으며 싸워야 함께 싸우고, 함께 싸워야 끝까지 싸울 수 있다! 눈물보다 웃음의 힘이 훨씬 강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그것이 희망버스의 대표 구호가 되었다. 그 뒤 문호가 개방됐다. 핀란드 ‘트친’(‘트위터 친구’의 줄임말)이 16시간 걸려서 찾아왔다. 희망버스에서 눈이 맞은 청춘남녀가 크레인 밑에 와서 언약식을 했다. 날마다 깨알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6월27일 공권력이 투입되고 크레인에 전기가 끊겼다. 크레인에서 가장 힘든 일은 세상과의 단절, 고립감이었다.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 내가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트위터였다. 내가 살아 내려오길 기도하는 사람들, 그 간절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묻고 싶어졌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십니까.” 그때부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멸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버티는 게 싸우는 거였다.

157일차, 6월11일 희망버스 4대가 찾아왔다. 2차에 1만2천 명, 3차에 1만5천 명…. 이건 기적이었다. 크레인 위에 사람이 있다니까, 흑자 기업이 정리해고를 한다니까, 비정규직 노동자가 900만 명이 넘는다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찍소리도 못하고 산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냥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오래도록 꿈꿔온 연대가 실현됐다. 2011년, 우리가 만든 역사는 만만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패배한 싸움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촛불이 이어져 희망버스가 됐고, 그 희망버스가 또 무언가를 잉태할 것이다.

“운동 중심은 비정규직으로 바뀌어 가“

청중1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도무지 해결될 수 없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김진숙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고착화돼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자기 것을 잃지 않으려고 보수적으로 변해 싸우지 않으려 한다. (노동)운동의 중심은 비정규직으로 바뀌어간다고 생각한다. 그 수도 더 많고 훨씬 절박함에도 힘이 부족한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청중2 세상이 느리더라도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낀다.

김진숙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변화해왔다. 우리가 마음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싸움을 지켜낼 수 있다. 그렇게 알려나가며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청중3 건강한 모습을 보게 돼 감사하다.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어떻게 하면 같이 갈 수 있을까.

김진숙 난 그냥 올라가 있으니 사람들이 오더라. (웃음) 그런데 노동조합 간부가 조합원을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노동조합이 획일성을 버리고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 19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의 역동성, 그리고 촛불집회와 희망버스의 진정성에서 우리의 운동이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야 한다.

청중4 청년들이 사회의식이 없다는 비판이 많지만, 주변에는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참여하는 방법 등을 잘 모른다. 행동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김진숙: 어떤 세대가 공통의 경험을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예컨대 87년 6월항쟁처럼. 그런데 같이 거리에서 투쟁해본 경험이 없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으로 불행했던 세대가 있다. 그러다 촛불 세대가 등장했고, 그들이 다시 자기 삶의 현장에서 투쟁의 중심이 돼가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트위터를 통해 젊은 세대가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것이 4월11일 다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삶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그들에 의해 역사는 바뀔 것이다.

청중5 크레인에서 절망과 싸웠던 외로운 순간에 생명을 지켜낸 근원적 힘이 궁금하다.

김진숙: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내가 못 버틸 것 같은 순간마다 누군가 꼭 찾아와줬다. 어느 순간 내가 간절한 만큼 저 사람들도 간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주익 동지가 죽은 뒤 웃는 것도 죄스러운 8년을 보냈다. 그런데 내가 내려가지 못하면 저 사람들 중 누군가 그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간절함을 배신할 수 없었다.

청중6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다. 조선소 안 여성 노동자의 작업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앞으로 어떻게 투쟁해야 할까.

김진숙 조선소의 비정규직 비율이 600∼800%다. 비정규 여성노동자 수가 놀랄만큼 늘어나 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비정규직이 다 하고 있다. 은폐된 사실이 너무 많다. 하청노동자의 작업 환경과 산재가 과제다. 산업 안전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투쟁하고 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 보건의료 단체와 연대하는 노력도 이어나가야 한다.

희망을 보여줘 오히려 감사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강연을 마치며 이렇게 인사했다. “저를 살아서 내려오게 해주시고, 우리 조합원들을 1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네요. 아니요, 김진숙 위원님,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김자경 제23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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