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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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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긴장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여섯 번째 강연자 장항준
‘영화로운 청춘’을 주제로 드라마틱한 젊은 시절에 대해 수다를 떨다
등록 2011-04-28 17:25 수정 2020-05-03 04:26
» 영화감독 장항준씨(오른쪽)와 사회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 영화감독 장항준씨(오른쪽)와 사회자 김용민 시사평론가.

4월18일 창간 17돌 기념 제8회 인터뷰 특강의 여섯 번째 손님으로 장항준 감독이 강연에 나섰다. 이날 강연의 주제는 ‘영화로운 청춘’. 사회자는 장항준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인기 드라마 이 가져다준 변화에 대해 물어보며 강연의 들머리를 넘어섰다. 장 감독은 금전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유쾌하게 시작된 대화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용민(사회자): (창작 의지의 원천은 제작자의 금고에서 나온다는 장 감독의 농담에) 예전 시나리오작가 때의 아픈 경험이 있어서 ‘입금’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인가.

장항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가족을 부양할 수도 있고.

김용민: 최고은씨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땠나.

장항준: 사실 많은 영화인이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1천만 관객 시대 속에서도 최고은씨 같은 사례가 많았다. 가정 형편이 좋거나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영화 산업은 성장했지만)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졌다.

김용민: 법의학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드라마를 통해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낸 관찰력을 보면서 오늘의 청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지금부터 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웃음과 거짓말로 점철된 청춘

장항준: 나는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해 집안에 큰 변화가 있었다. 나의 출생과 집안의 가난 해방이 겹쳤다. 아버지께서 나일론 공장을 위탁 운영하게 됐는데, 그게 잘됐다. 단칸방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이 됐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 아버지는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지금 잠실역 근처의 4분의 1 정도가 우리 집 땅이었다. 집에는 정원사, 운전사가 있었고 가정부 아줌마가 있었다. 논현동의 큰 저택에서 살았는데 친구들과 집에서 야구를 할 정도였다.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문제에 봉착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난다.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별 탈 없이 자랐지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재능이라면 남들보다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 사람들이 활짝 웃는 모습이 좋았다. 웃는 얼굴을 보려고 거짓말을 했다. 한번은 엄마와 이모가 집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이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이 됐다고 했다. 난리가 났다. 그들에게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이 내가 반장 된 것만큼이나 기뻤을까.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후폭풍 따위는 생각지도 못한 채. (청중 웃음)

한 친구의 권유로 친구들과 문예 동인지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보고 듣고 쓰고 생각하자를 줄여 ‘보듣쓰생’이라 모임명을 정했다. 2주에 한 편씩 시를 썼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시라고는 동시밖에 모르던 나는 보듣쓰생 활동을 하며 부끄러움을 배웠다. 역사와 세계관,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 확립되지 않은 내 시와 친구들 작품의 확연한 차이가 부끄러웠다. 시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세계사와 정치에 대해 알려주고 같이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의식화’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또 하나 집중하는 게 있었다면 영화다. 매주 아버지와 함께 ‘주말의 명화’를 챙겨봤다. 시험 전날에도 빠트리지 않고 볼 정도였다. 학교에 가서 영화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보지 않은 영화도 봤다고 ‘거짓말’했다. 쉬는 시간에 보지도 않은 영화 줄거리를 말한다. 친구들이 모여들어 귀를 기울인다. 수업 종이 치면 나는 바빠졌다.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으므로. (웃음)

소설을 연재한 적도 있는데, 교내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은 내 친구들, 비열한 상대편은 학교 선생님들이었다. 의뢰도 들어왔다. “화학 선생을 악역에 넣어줘.”

» 유쾌하게 시작된 대화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 유쾌하게 시작된 대화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엔 연극영화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재학생에게 과외를 받았다. 어머니의 레이더망에 걸린 이가 연극과 재학생이었다. 그 형은 영화과나 연극과나 별 차이가 없다며 연극과 지원을 권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다. 타이즈를 입고 오라던 첫 수업부터 내 기대와 전혀 달랐다. 전공 수업에 그다지 집중하지 못하고 문예창작과 등 다른 과의 수업을 청강했다. 학교에 있는 대본과 영화를 섭렵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금세 졸업이 찾아왔다. 영화 쪽으로 인맥이 전혀 없던 나는 얼굴을 익힌 영화과 교수님을 쫓아다니며 일자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영화사 객원연출 막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영화 촬영 도중 회사가 부도났다. 학교 선배인 형을 통해 방송사 FD 자리를 얻었다. 촬영 준비, 소품 신청, 청소 등의 일을 했다. 집에 가서는 영화를 봤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중요한 영화 몇몇을 빼고는 빨리감기로 돌려봤다. 결말을 먼저 보고 다시 앞 내용을 보면 영화의 구조가 보인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찾아왔다. 프로그램 대본이 펑크가 난다. 습작한 노트를 찢어 PD에게 보여줬다. FD((Floor Director, 연출보조)가 된 지 석 달 만의 일이었고 두 달 뒤 예능작가가 됐다. (시트콤 의) 김병욱 PD와 팀을 짜서 만든 프로그램이 이었다. 히트를 쳤다. 전 방송사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사장의 금일봉을 받을 정도였다. 안락한 생활로 영화에 대한 꿈은 잊었다.

다시 영화가 찾아온다. 지인한테서 영화 시나리오를 다시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가 이다. 흥행했다.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에 최연소로 노미네이트됐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진출했고 성공했다. 자만심이 생겼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내가 연출하는 영화를 만들겠다 공언했다. 큰 소득 없이 3년여를 보내던 중 다른 작가가 쓴 시나리오로 연출을 해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거절을 거듭하다 내게 찾아온 기회를 너무 소극적으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란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기회도 많이 찾아왔다. 기회는 뒷머리채가 없다고들 하잖나. 기회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가온 기회를 잡을 수도, 놓칠 수도 있다.

나는 성공하지 못한 감독이다. 그래도 내 꿈은 60대가 됐을 때도 감독 의자에 앉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즐겁게 살며, 최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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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공하지 못한 감독이다. 그래도 내 꿈은 60대가 됐을 때도 감독 의자에 앉는 것이다. 앞으로도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즐겁게 살며, 최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 긴장하면 지고 설레면 이긴다."

자신의 장단에 맞춰 읽고 사랑하라

청중1: 요즘 고등학생들을 보면 목적의식이 뚜렷하다기보다는 공부에 대한 강박만 심한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장항준: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라고 하고 싶다. 장단은 내 것이고 신이 나려면 내 장단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공부를 하며 적당히 하고, 영혼을 살찌우는 일에 힘쓰면 좋겠다.

청중2: 30대 후반인데도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항준: 최근 정도를 걷지 않아도 박수 받는 사람이 많아져서 나 빼고 모두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일부가 부각되는 것일 뿐이다. 맘 편히 먹으시길.

청중3: 청춘에게 이것만은 꼭 해보라고 권한다면.

장항준: 첫째는 독서, 지적 호기심은 읽을수록 커진다. 둘째는 연애, 나랑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하거나 차거나 버림받거나 하는 경험들…, 비겁하게 자신의 사랑을 외면하고 후회도 하면서 사람을 보는 선구안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연애를 많이 해보지 못해 아쉽다. (웃음)

글 안재영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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