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심리학자, 프로파일러, 범죄수사 전문가, 작가, 칼럼니스트, 방송인.’ 표창원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행동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보장해주던 경찰대학 교수라는 직함을 내던지고 얻은 새로운 직함이다. 그가 ‘새로고침’이라는 주제를 논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에 모두들 동의할 것이다.
경찰대 교수직을 사직하기 전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명사였으나, 나처럼 습자지같이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떠오른 핫한 인물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일개 개인으로 국가권력과 이른바 맞장 뜨는 것과 같은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4월2일 강연은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강연은 어린 시절 회상으로 시작됐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평안남도 순천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해병이 된 아버지와 경북 포항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받은 철저한 반공교육, 월남전에 나갔다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 행상에 나선 어머니, 아버지의 귀국 뒤 끊이지 않던 싸움. “어린 시절은 분노가 많았고 자주 싸웠으며 심지어 싸움으로 친구의 팔을 부러뜨리기도 했다. 그러다 셜록 홈스 책을 접하게 됐는데,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그때까지의 태도를 바꾸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합기도 승단 심사에서 홍콩에서 무술영화를 제작하던 감독을 만나 영화배우의 길을 갈 수 있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접은 일, 스스로 ‘얄개시대’라 칭하는 친구와의 우정과 의리, 정의를 소중히 여겼지만 사고도 많이 친 중·고등학교 시절, 경찰대학을 가게 된 사건, 대학에서 원칙과 정의를 관철하는 것에 대한 주변과의 갈등, 경찰관으로서 범죄 검거보다는 시위 진압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고민과 부채의식, 영국으로 석·박사 과정 유학을 떠나게 된 이유부터 경찰대 교수 사임까지….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청중의 뜨거운 질문이 쏟아졌다.
<font color="#1153A4">청중 1</font> 국정원 사건에 대해 발언했을 때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다. 정부나 국정원 직원이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font color="#C21A8D">표창원</font> 잘 이겨내고 있다. 가장 큰 두려움은 혹시 내가 잘못하고 있으면 어쩌나, 망상적인 의심을 가지는 건 아닌가라는 것이며 이미 수도 없이 던진 물음이다. 우리가 가진 그 두려움과 공포가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 목숨 걸고 싸운 분들이 이뤄놓은 민주주의의 성과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과거처럼 함부로 집어넣을 수 없다. 그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고소밖에 없다.
<font color="#1153A4">청중 2</font> 자유와 경제는 연관돼 있는 듯하다. 진짜 말을 하고 싶은데 결국 개인은 월급에, 언론은 광고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font color="#C21A8D">표창원</font> 정의와 자유를 부르짖을 때 경제적 안락함 등은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 독립군 자손은 가난하고 친일파 자손은 부자라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걸 증명하고 싶었다. 모두가 나같이 사표 내고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조금씩 옳은 일을 하면서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자. 투표장에서의 한 표, 대안언론 구독 행위 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font size="3">법이 준 역할을 다하되 미워하지 말자</font><font color="#1153A4">청중 3</font> 경찰관이다. 직무 내용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인지 부조화를 어떻게 극복하셨나.
<font color="#C21A8D">표창원</font> 시위 때 지나가던 시민들의 시선을 기억한다. 한 기동대 소대원의 농민 아버지가 시위 선두에 섰던 적이 있다. 대원이 이렇게 말하더라. 이분들의 길을 열어주지는 말자, 법이 준 역할을 다하자, 그러나 이분들을 미워하거나 깔보지 말고 존중하자. 시위대와 우리가 적이 아니고 동료라는 마음, 이것이 중요하다. 경찰관으로서 받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되 그들을 미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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