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만세’라고 외쳐도 감옥에 갇히지 않는 게 한국 언론 자유의 출발이라고, 한 세기 전에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 2010년 문화방송 <pd> 판결 논란이 한창일 무렵 우연히 마주친 이 시는 나에겐 ‘언론 자유’의 정의 그 자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시가 자주 눈에 밟힌다. 1960년에 쓰인 시가 여전히 읽히고 회자되는 까닭이 시인의 급진성 때문만은 아닐 터.
3월14일 인터뷰 특강 둘쨋날, 사회자인 소설가 서해성씨도 비슷한 논지로 운을 뗐다. ‘자유언론의 길’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이상하고, 화가 난단다. 유신독재 때에나 쓰던 말을 또 마주하다니, 사회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겠다며 제목을 고치자 했다. “다시, 언론 자유를 말하다.” 박정희 정권과 이명박 정권에 의해 두 차례 해직된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에게 딱이다.
“언론, 진실로써 희망 전하는 것”
정연주 내가 67살이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가 보이지 않나. (모두 웃음) 요즘 행복한 일이 많아서 그렇다. 첫째, 이명박 정권 임기가 하루씩 짧아지고 있다. 행복하다. 둘째, ‘배임죄’와 ‘해임무효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밀린 봉급에 이자까지 붙여서 받는다. 셋째, 종합편성채널(종편) 평균시청률이 0.3%다. 약 15만 가구가 봤다는 얘긴데, 인터넷 뉴스 방송 1회 시청자가 80만 명이다. 수구언론을 깰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행복하다. 넷째, 등 새 미디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에선 50만원짜리 중고 카메라 두 대로 인터뷰하더라. 종편은 돈을 얼마나 들였나. 모두 이 정권 덕분이다. 역사의 축복이다.
내 삶에서 첫 ‘언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든 교회 교지다. 교회 학생회에서 ‘광야’라는 교지를 발간했는데, 친구가 주로 글을 쓰고 나는 필경을 맡았다. 한번은 교회 건물을 신축하는 일로 특별헌금을 걷었다. 장로였던 내 아버지도 헌금을 독촉했다. 친구와 내 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교지 1면에 “중세시대에 면죄부를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장 그만둬라”는 식의 글을 실었다. 다음날 난리가 났고, 학생회에서 추방당했다. 첫 ‘해직’이었다. (웃음)
대학에 들어가 대학신문 기자 일을 했지만 교회도 계속 다니며 성서를 읽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다들 알 것이다. 노아는 비둘기가 물어온 나뭇잎을 보고 생명이 살아 숨쉬는 육지라는 희망을 알게 된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노아 시대의 한 마리의 비둘기가 언론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진실을 알리고, 그 진실로써 희망을 전한 것이 언론 아니겠나. 그때가 1970년, 유신정권 2년 전이다. 암흑시대에 진실로 희망을 전하는 언론인이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두 가지다. 사실 전달, 그리고 모든 권력에 대한 감시·비판 기능이다. 유신독재 때 언론은 이를 다하지 못했다. 3년차 기자 시절, 대학가에서 데모가 시작됐다. 뒤늦게 가니, 데모는 끝나고 학생들이 도서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하고 있었다. 취재를 하려고 도서관으로 가는데 입구에 팻말이 걸려 있었다.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는 언론은 개가 됐다.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고, 분노가 치밀었다. 당시 젊은 기자들 모두 그랬다. 그렇게 1974년 자유언론 실천 선언, 제작 거부 등이 이뤄졌고, 이듬해 해직됐다. 이게 두 번째 해직이다. (웃음)
“인류 보편적 가치가 선택 기준”
언론 자유 투쟁은 해직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다. 그 갈림길에서 내 기준은 단순했다. 옳은가 옳지 않은가. 옳지 않은 길에는 마음의 평화가 없다. 내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역사 앞에도 떳떳하지 못하다. 2008년 한국방송 사장 시절 퇴진 압박에 시달릴 때도 그랬다. 그 시점에 사회를 위해서, 조직원들의 자존심을 위해서,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는 일,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어떤 가치로 세상을 보고, 옳은 선택을 할 것인가.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온 가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자유, 인권, 평화, 생명, 사랑 등이 가장 값진 가치다. 이런 가치를 기준으로 삼으면 역사를 이해하고, 선택의 길목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보인다. 이 기준으로 보면 지난 4년을 규정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 측면만 보면 몇 가지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 작가가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양이를 그렸으면 괜찮았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는 더하다. 예컨대 시트콤 을 보자. 나는 학벌 차별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그려낸 방송 프로그램을 처음 봤다. 그런데 ‘빵꾸똥꾸’라는 표현 때문에 주의를 줬다. 문화방송 김여진씨 사건은 어떤가. 진보와 보수 논객을 불러 토론한다기에 기대했다. 그런데 김여진씨를 못 나오게 하려고 이상한 규정을 만들더라.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다니, 그럼 뭘 얘기하나. 정말 빵꾸똥꾸다.(웃음)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청중1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치권을 보고 있자면 막막하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조언해달라.
정연주 최선이 없으면, 차선, 상대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누가 되든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나는 그래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필요한 것이 뭐냐를 생각해보자.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정권은 절대 안 된다. 표현의 자유가 개선된다면, 비판이 가능해지고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나.
청중2 방송사 등 언론노동자의 파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예비 언론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정연주 메이저 언론에 들어가면 그 조직의 영향력을 바로 활용할 수 있지만 주체적 삶을 살기 어렵다. 왜 파업하나? 기자로서 자존심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반달곰이 두 번째 새끼를 낳은 일은 기사가 되고, 4대강 문제는 아무리 발제해도 취재조차 못한다. 내곡동 사건,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논란도 취재조차 못하게 한다. 얼마나 비참한 기자 생활인가. 옛날엔 언론사 말고는 수단이 없었다. 요즘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1인 미디어가 가능한 시대 아닌가. 좀더 유연하게 생각해보라.
시 ‘담쟁이’로 못다 한 이야기 달래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은 하고 싶은 말의 10분의 1도 하지 못했다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로 짧은 강연의 아쉬움을 달랬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박소영 제22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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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선택’의 남은 일정
3월27일(화)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탁월한 선택의 지혜
3월28일(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국현대사의 선택
장소 및 시간: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저녁 7~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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