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2026년 9월28일 시민들이 서울의 한 상영관에 걸린 영화 홍보물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의 여의도 정치는 걱정된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려는 자세는 없고 지지층 동원에만 혈안이 된 사람이 너무 많다. 이는 특정 세력의 문제만이 아니며 특정 국가의 문제도 아니다. 결국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가 불러온 파국이다.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을 보자. ‘암살자(들)’을 감싸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다룬 주제와 핵심 내용이 이미 다양한 경로로 제기된 의혹에 근거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과도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다뤘다는 것만으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가령 미국의 경우 에이브러햄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로 다룬 영화도 있다.
문제는 관객에게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가상의 이야기’라는 맥락을 제대로 공유하는 데 성공했느냐에 있다. 영화를 직접 관람하지 못해 평가하기 조심스럽지만 언론 보도나 감독 인터뷰, 영화를 실제 관람한 관객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 지점에서 ‘암살자(들)’이 실패했다는 지적은 가능해 보인다. 영화적 상상이 아닌 사실관계를 다투기 위한 맥락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거다. 정파성에 의존하는 상업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가능한 비판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러한 비판이 어디까지나 영화 비평의 맥락에서 제기돼야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은 우파 정치 운동에 가깝다. 여기서 영화의 실제 문제는 중요치 않다. 영화적 표현을 빌리자면, ‘암살자(들)’은 맥거핀(영화나 소설 등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극적 장치)이다. 영화를 공격하는 사람 다수는 ‘문화예술계는 좌편향적이므로 교정이 필요하다’는 자신들의 평소 정치적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로 형평성이나 ‘내로남불’ 같은 수사가 동원된다. 영화계가 ‘변호인’이나 ‘1987’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에 우호적인 반면 자칭 우파 취향의 영화에는 냉담하다는 것이다. 일부 국민의힘 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을 희화화하거나 음모론으로 포장한 억지스러운 가상 콘텐츠를 들이밀며 “왜 박정희는 되고 노무현은 안 되냐”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영화 비평을 정치 운동과 의도적으로 뒤섞는 논법이다. 이 우파 정치 운동의 최종 목표는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해자 약자 서사가 동원된다. 피해자 혹은 기득권에 탄압당하는 약자에게 더 많은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의 당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에서는 이 맥락에서 독재자인 박정희는 ‘좌파 영화의 왜곡에 따른 피해자’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우파 정치 운동이 윤석열에게 ‘반국가세력과 주권침탈세력에 의해 억울하게 탄핵당한 피해자’ 지위를 부여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법적 비상계엄이었다고 우기고, ‘올림픽공원 시위대’에 ‘좌파에 의해 참정권을 박탈당한 피해자’ 지위를 부여해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선거 관리 문제를 부정선거론 및 계엄옹호론으로 연결하는 것도 마찬가지 행태다. 급기야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이른바 ‘학술 토론회’에선 전두환이 ‘1980년 당시 광주에 대한 발포 명령 등을 했다는 의도된 오해의 피해자’이고 ‘민주주의의 산파역’을 했다는 주장이 버젓이 등장했다.
보수정치가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나 군사분계선 지뢰 폭발 사고를 다루는 태도도 비슷하다. 보수정치는 이유가 어떻든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는 바람에 사태가 더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군에 잡힌 사실은 2024년 12월 말 우크라이나 언론 보도와 국가정보원 보고 등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2025년 2월 조선일보는 현재 국내로 송환된 2명의 북한군 포로를 현지에서 인터뷰한 뒤 얼굴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며 이들이 한국에 올 의사가 있음을 확인해 보도했다. 이후 보수언론은 이들이 송환되지 않는 이유로 정권이 북한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비판을 해왔다. 하지만 포로들이 송환된 지금에 이르면 ‘북한 눈치를 봤다’고 주장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랬다면 포로 송환 자체를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 눈치’ 주장이 나오는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이 사실을 언급할 때까지 송환 사실이 비공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공개’와 ‘북한 눈치’를 연결하는 건 무리다. 외교 관계자들과 국정원 설명 등을 보면, 문제의 상황은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와 연관이 있다. 러시아에 붙잡힌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북한군 포로를 교환할 수 있다는 러시아의 제안과 포로의 의사대로 한국으로 송환하는 일의 당위 사이에서 고민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이 무기 지원 등을 기대하며 후자를 택한 것이다. 여기에 ‘북한 눈치’가 들어갈 자리는 더욱 없다.
‘북한 눈치론’은 군사분계선 지뢰 폭발 사고에서 위력을 더 키운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포함한 보수정치는 정부가 북한 눈치를 봐서 현장 조사 시점을 늦춘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국방부와 군의 설명을 보면, 현장 조사가 사고 직후 곧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사고가 난 곳에 여전히 지뢰가 남아 있으므로 사고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인원이 동원돼야 하는데, 여기에는 의료적 판단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군은 피해 장병들의 신체와 장구에서 지뢰 파편이나 화약흔 등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기는 등 조사를 계속했다. 여기에 북한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가 추가로 발견되고 유엔군사령부가 정전협정 위반을 공식화했다는 사실까지 더해 보면 ‘북한 눈치’를 말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향후 대응이나 피해 장병들에 대한 처우 등에 문제 제기를 집중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도 보수정치가 ‘북한 눈치’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였다면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했을 거다. 그러나 21세기의 극우정치는 한층 교묘하다. ‘중국, 북한과 한국의 민주당은 전체주의를 선호한다는 동질성이 있어 같은 편이므로 눈치를 보는 것’이란 서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남더러는 민주주의 하라면서 자기들은 전체주의를 옹호하다니! 위선적 진보! 내로남불! 이 서사는 ‘철 지난’ 것이 아닌 듯한 외양을 갖췄다는 점에서 수용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을 걸고 실현하려는 것이 독재자들의 복권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극우정치의 정당화로 이어지는 이 난국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글로벌 주류 정치는 엘리트 정치의 고도화로 대응하려는 듯하지만, 이게 오히려 극우정치의 민주주의 담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더 많은, 더 실질적인 민주주의 구현만이 유일한 정답일 텐데 이는 여전히 아득한 과제다. 최근 논란은 이 고민에서 우리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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