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애도, 진부한 ‘시대의 언어’와 벌이는 싸움

2025년 8월7일 인천시청 앞에서 ‘고 이지혜 학생 명예회복을 위한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겨레 이승욱 기자
매년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와 ‘서사와 참사’라는 수업을 진행한다. 세월호나 이태원 그리고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을 겪은 당사자나 피해 유가족들을 초청해 그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들의 상실과 슬픔을 사회적으로 애도하는 이야기를 학생 창작자들과 함께 짓는 수업이다. 지난 2년 동안 학생 창작자들은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느낌과 경험을 이야기로 형상화했고, 작품을 재난피해자권리센터 누리집(https://1661-2014.org/exhibition-past)에 전시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센터와 좀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재난 참사 현장에서 조금 더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의 말을 듣고 이야기로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수업에서는 이런 밀려난 이들의 취약한 애도에 학생들과 함께 다가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1999년 일어난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이다. 이 사건은 불이 난 곳이 호프집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불량’ 청소년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화재의 원인과 대처에서 드러난 문제점보다 ‘호프집’만 부각되면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대표적 사례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희생자 중에는 단원고 학생이 아닌 이들도 있었다. 43명의 ‘일반인’ 희생자다. 이들에 대한 애도는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 역시 애도의 자리를 단원고 학생들에게 더 내주었다. “나도 슬프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냐?”는 마음으로 뒤로 조금 물러섰지만, 이들의 애통함이라고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는가. 취약한 자들의 애도라는 관점에서 우리 학생들이라도 이 일반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보자고 했다.

2026년 4월1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산업 현장에서도 유독 애도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이들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죽음과 애도가 그렇다. 한 예로 2024년 6월24일 발생한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이들은 가장 취약한 애도를 받았다.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과 대처 과정에서도 수많은 소외와 배제, 그리고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상실과 슬픔의 과정에서 이들이 경험한 것은 자신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밀려난 ‘이방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사회적 애도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된 이들의 유가족이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있다. 분명 자신들도 슬픈데, 자신들이 과연 슬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한편에서 이들의 슬픔은 밀려나거나 사회적으로 함께 슬픔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피해자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슬픔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죽음으로 여기도록 ‘둔’(분명 그들은 그렇게 두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이 슬퍼할 자격을 끊임없이 묻는다. 이들의 슬픔은 애도에도 자격을 따지고 서열을 매기는 사회에서 이중으로 봉쇄돼 아직 형상이 없는 슬픔이었다. 이 수업을 통해 그 슬픔의 형상을 찾아 실체를 그려보고자 했다.
다소 거창하게 말하면 예술은 형상을 찾아 본질이 실체로 존재하게 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하얀 대리석을 볼 때 일반인 눈에는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눈에는 이미 그 안에 다비드가 있고 피에타가 있다. 그는 그 돌을 보며 피에타의 ‘본질’을 드러내는 형상을 조각한다. 피에타의 형상에 드러난 것은 성모가 예수를 안고 있는 객관적 모습이 아니라 세계의 구원을 위해 희생양이 된 당신의 아들을 안은 성모의 슬픔과 인내라는 ‘본질’이다. 이 작업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실체로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우리의 작업을 감히 미켈란젤로에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준에서건 예술의 지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언어다. 예술인 언어가 가진 가장 큰 마술은 경험에 형상을 부여하고 실체로 존재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 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이 한 경험을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말이 생기기 전까지 ‘그것’은 온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사람을 괴롭힌다. 인간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고통에 대해 말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벌어진 일인데도 내가 설명할 말이 없으니, 누구에게 호소하고 나눌 수도 없게 된다. 이 고통에 빠진 분들을 위해 그들의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함께 하려고 한 것이다.

아리셀 참사 2주기 추모제가 2026년 6월24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공장에서 열렸다. 화성(경기)=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물론 이 작업은 쉽지 않다.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인다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말은 갖다 붙이는 순간 슬픔과 경험에 대한 모욕이 된다. 흔히 감상적인 ‘사연팔이’라 비난받는 이야기가 그런 경우다. 이런 이야기는 당사자들이 겪은 사건 중 가장 극단적으로 비참했던 것을 주로 나열해 이들을 ‘비참한 자’들로 형상화한 뒤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는 비참한 자들끼리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고통의 경주를 펼치게 하는, 애도를 빙자해 구경거리 사회의 자극적인 먹잇감으로 슬픔을 던져주는 모욕적인 비참의 ‘포르노’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도 슬퍼해도 되는가?” 질문을 삼키는 유가족들의 슬픔에 형상을 부여하려면 먼저 그 슬픔의 참모습을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왜 그들의 슬픔은 사회적 애도의 대상이 되는 슬픔으로 여겨지지 않는지를 물어야 한다. 거기에 그들의 슬픔을 그런 형상으로 만드는 동시대의 ‘참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난 것이 ‘악’이다. 슬픔을 만드는 동시대의 악. 이 악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 슬픔의 형상에 다가설 수 없다. 슬픔을 서열화하고 자격을 묻는 이 사회의 이름을 먼저 불러야 한다. 예수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됐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피에타는 결코 역사에 단 한 번 있었던 사건인 피에타일 수 없다.
이것은 천주교의 구마 의식과 비슷하다. 악마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의 고통과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제대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악마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악은 오직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는 ‘거짓’을 통해서만 활동한다. 그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이름을 밝히는 일이다. 거짓으로 은폐된 이름이 밝혀지면 악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무력화될 수 있다. 먼저 그 고통과 슬픔을 유발하는 악의 이름을 찾고 불러야 하며 그 악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에 대한 ‘내력’을 악 스스로에게서 들어야 한다. 슬픔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름과 내력을 통해 밝혀지는 정체를 알아야 한다. 악을 외면하고 슬픔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악의 본질이 드러날 때만 슬픔은 자신의 이름과 형상을 가질 수 있다. 슬픔만 강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악이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바로 이 악의 이름과 내력을 알고 싶어 했다. 피해자들과의 만남에서 학생들은 집요하게 물었다. 이 사건이 왜 해결되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법도 있고, 제도도 있고, 기관도 있고, 주변에 도와주는 시민단체도 있는데 왜 해결이 안 되는지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묻고 또 물었다.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 아니라 이 사회가 왜 작동하지 않는지였다. 작동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제도나 법, 그리고 구조나 사회 따위의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슬픔의 형상을 찾기 위해 악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어 했다. 사연을 만든 악의 형상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사연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넘어가는 슬픔의 형상은 창작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사연팔이’에 불과하다.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이 악의 ‘진부한’ 이름이었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서열화된 애도와 죽음, 혐오와 차별, 구조적 모순 등. 이 악을 설명하는 이름들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언제나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저기 다 맞는 말을 실체에 대한 이름이라 할 수 있을까? 악을 설명하는 ‘우리’의 언어야말로 진부한 것이 아닐까. 이 진부한 언어로 무엇에 맞설 수 있을까. 아니,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본질을 명목으로 그 어떤 실체도 드러내지 못하는 이 진부함이야말로 악과 함께하며 슬픔을 형상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악이 아닌가.
물론 매번 완전히 새로운 이름과 언어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이건, 자본주의이건, 근대문명이건 재난은 같은 구조에서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통해 본질은 실체가 된다. 같은 구조라고 하지만 단 하나도 같은 사건은 없다. 악은 그 이름이 같다고 하더라도 내력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매번 얼굴을 바꾸고 그에 따라 슬픔 역시 달라진다. 슬픔의 실체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차이를 통하지 않고서 본질은 반복되지 않는다. 차이의 역동성으로만 본질은 실체가 된다. 따라서 본질을 형상화한다는 것은 차이를 무시하고 고정된 어떤 것을 본질로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차이의 역동성으로 드러나는 반복을 형상화해야 한다. 본질이라는 말로 고정된 이름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형상화에 실패하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 태어나는 것은 없으며, 이런 언어로는 아무것도 고양하지 못한다.
젊은 창작자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이전 시대의 언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몇몇 기성세대가 착각하듯이 역사와 사회에 무식해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니다. 기성세대에게 마치 세상의 본질을 설명해주는 것 같은 마법을 발휘하는 ‘시대의 말’이 이들에게는 아무런 힘도 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본질이라는 이름으로 실체를 형상화하지 못하는 말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들에게 이런 예술가적 열망이 있는 한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가능성에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차이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자신의 진부한 언어와 싸워야 한다. 애도는 바로 그 진부한 ‘시대의 언어’와의 싸움이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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