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강화도 마콩농장에서 ‘농부의 숲’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돌배나무 두 그루를 심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 일하면 유독 인연이 생기는 지역이 있다. 올해는 인천 강화도가 그렇다. 지역 주민 돌봄 연구에 참여해 인터뷰하러 자주 오갔고, 그 덕에 새로 사귄 농민이 많다. 연구가 끝나갈 때쯤 새 프로젝트 하나가 더 생겼다. ‘농부시장 마르쉐’가 지난해부터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그램, ‘농부의 숲’이다. 이름처럼 실현지인 농민의 밭에 생태계의 층위를 본뜬 퍼머컬처 방식의 ‘숲 정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그냥 식물만 심고 헤어지는 건 아니고, 참여자를 모집해 8월부터 10월까지 긴 호흡으로 만나며 농민과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실현지인 강화도의 ‘마콩농장’에서 시민들의 정원 활동을 지원하는 ‘마인드풀가드너스’와 함께 프로그램 진행자로 참여하게 됐다.
이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숲 정원 만드는 날. 오랫동안 농민과 소통하며 논 위를 흙으로 덮어 밭으로 만든 땅에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왕이면 먹거리까지 제공하는 과일나무가 좋겠다는 의견이 모여 커다란 돌배나무 두 그루와 준베리, 아기자기한 관목과 허브를 심어 작은 숲 정원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이 여의치 않아 포클레인을 섭외할 수 없었다는 것. 돌배나무 두 그루를 심으려면 땅에 1m의 구덩이를 두 개나 파야 했는데, 진흙과 돌이 많아서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가을 날씨가 어찌나 고온건조한지 흙은 단단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아침부터 몇 사람씩 돌아가며 삽과 곡괭이로 구덩이를 파기 시작해 점심을 먹고 다시 파기를 두 시간, 드디어 나무뿌리가 쏘옥 들어간다!
자기 밭도 아닌데 나무 두 그루가 밭의 ‘표정’을 만들었다며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마콩농장 농민은 요즘 말로 ‘극내향인’인 사람이라, 처음에는 혼자 일구는 밭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신청자로 찾아온 사람들이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밭에서 이런저런 일을 돕고 싶어 하는 걸 지켜보고 조금은 외향인이 됐나보다. 돌배나무 아래서 허리를 두드리는 내게 나중에 내 밭이 생기면 나무는 꼭 본인이 심어주겠다며 웃는다.
나는 예전에 언젠가 농민이 되고 싶은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농사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내게 끊임없이 나침반이 돼주고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사람들. 마콩농장에서 농부의 숲을 진행하면서도 농민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을 함께 벌이고, 이 일이 여전히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옆에서 자꾸 일깨워주는 사람 말이다.
농부의 숲은 기업과 시민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더 많은 밭에 생태적인 숲 정원이 들어서고, 그 밭이 기후위기 시대에 작은 숲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모두의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더 많은 농민의 밭에 작은 생태 숲이 생기고, 그 숲을 핑계 삼아 다시 찾아올 사람들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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