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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사건, 5·18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 보여줬다

제6공화국 토대에 대한 인식차에서 비롯돼… 이제라도 공화국의 보편적 정신으로 천명돼야
등록 2026-07-23 20:41 수정 2026-07-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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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6일 오후 전남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최근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표현이 담긴 응원 구호를 외쳐 공분을 샀다. 공동취재사진

2026년 7월6일 오후 전남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은 최근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표현이 담긴 응원 구호를 외쳐 공분을 샀다. 공동취재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말로 물의를 빚었던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응원 사건이 일단락됐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2026년 7월6일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으며 광주일고 교장이 6개월 출전 정지 징계 처분을 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선처를 호소했다. 사과하자마자 재심 요청을 한 것에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모처럼 문제 해결 방식을 ‘교육’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배재고 야구부는 7월20일 열린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재심의에서 ‘1개월 출전 정지’로 징계 감경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이 공화국을 만든 뿌리와 정신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를 둘러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적대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른 ‘과한’ 혐오나 조롱, 비하 표현이었다면 두 고등학교 사이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광주’를 조롱함으로써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진보, 세대로는 1980년대를 통과한 세대와 그 이후 세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지역과 세대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문제의 근원에는 현 제6공화국의 토대에 대한 근본적 인식 차이가 있는 것이다.

 

광주 시민에게까지 상처 준 조롱 응원

 

이 사건에서 사과와 용서의 주체가 배재고와 광주일고를 넘어서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응원에서 모욕감을 느낀 사람의 범위는 광주일고 학생 ‘당사자’들을 훌쩍 넘어선다. 광주의 아픔이 조롱당하는 순간 광주 지역민 역시 모욕감과 상처를 받았다. 또한 1980년 광주가 삶의 전환점이 됐던 사람 모두가 자신의 정당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에게는 광주가 있었기에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현재의 제6공화국이 성립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광주는 자기 삶과 현재의 정치공동체가 태어난 시작점이며 정신이다. 그게 아무리 현재의 삶과 상관없이 유리돼 ‘과거’를 우려먹고 사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극우/보수에 광주는 결코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에서 극우/보수가 집요하게 문제를 물고 늘어진 것이 공화국의 토대로서 광주다.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어린 학생’들의 창창한 미래를 염려하는 목소리였지만 그 사이사이에 깨알같이 박아 넣은 것은 5·18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은 개헌을 둘러싼 전초전에 가깝다. 현재 개헌 논의에서 큰 쟁점 중 하나는 헌법 전문에 광주민주화운동을 넣는 문제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정당은 당연히 5·18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 전문이 정치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정신을 천명하는 것이라면 5·18이야말로 현 공화국을 만들고 구성원 모두가 계승하고 따라야 할 정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1987년 제정된 현 헌법에 의해 탄생한 제6공화국을 낳은 기원은 광주민주화운동이다.

반면 5·18을 정치공동체를 낳은 정신으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 보수‘들’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정신으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국가의 정당성을 통째로 상대방에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이 보수의 내부도 가르고 있다. 보수 내에서도 결코 화해할 수 없이 대립하는 근본적 문제가 광주의 역사적 의의다. 역사적 평가는 끝났다는 입장과 기회만 닿으면 그 의미를 훼손하고 부정하려는 세력이 공존하는 것이 한국의 보수다.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쪽에서는 결코 광주를 공화국의 정통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은 세 가지다. 하나는 광주를 끊임없이 북한과 연계하는 것이다. 북한이 광주를 배후 조정했다는 음모론부터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어지는 학생운동의 주류가 이른바 ‘주사파’였던 것을 근거로 한다. 둘째는 언제 적 광주를 아직도 이야기하느냐는 주장이다. 이 말은 어떤 세대에는 살아 있는 역사로서의 광주이지만 젊은 세대에는 46년 전 지나가버린 과거(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광주는 46년 전 일이다!)를 아직도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특정 세대가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우려먹는 일로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근본정신은 광주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성역화하려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훼손하는 반국가적 행위라는 주장이다.

 

‘성역화’ 안 된 광주, 개헌 둘러싼 전초전

 

이번 사건은 현 공화국의 정신으로서 광주가 얼마나 ‘성역화’(그들이 쓰는 개념으로 본다면)되지 않았는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무엇이 성역화됐다면 그것에 대한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대다수 구성원에 의해 삼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제대로 된 천주교 신자라면 아무리 해변이더라도 수영복을 입고 성당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성당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잡담을 나누지 않는다. 비신자더라도 몸을 삼간다. 말과 몸을 삼가고 통제하는 것, 이것이 성역화됐다는 표식이다.

‘삼가함’이 본능적으로 작동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응원이다. 매우 악의적으로 작정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타깃으로 한 의식적 조롱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사전에 짰더라도 아마 최근에 논란이 되었으니 타격감이 있으리라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짠 응원일 것이다. 스포츠 응원에서는 상대방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려서 타격감을 올리는 것이 핵심이고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문제는 바로 ‘아무 생각 없이’에 있다. 특권 중의 특권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행동해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특권이 없는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이런 행동을 해도 될지, 이런 농담을 해도 되는지를 놓고 말이다. 특권이 있으면 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해도 된다. 문제가 생겨도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만들 힘이 바로 ‘특권’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말과 행동에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특권이다. 이런 특권을 가진 쪽에서는 ‘삼가함’이 없다. 삼가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보고 ‘성역화’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성역화되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성역화’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퇴행이다. 광주는 국지적 영역을 예외적인 것으로 대우하는 성역화의 대상이 아니라 공화국의 보편적 정신으로 천명돼야 한다. 지금 해야 하는 것은 광주가 공화국의 토대가 되는 정신임을 명확히 결정하는 일이다. 헌법 전문에 광주를 넣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광주가 헌법 전문에 들어가면 광주를 왜곡하거나 폄훼한 사람을 처벌할 필요가 없다.(나는 광주를 모욕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안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헌법 전문에 들어간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헌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헌정의 질서 위에 있는 정치 테이블에 올라올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건국절’ 논란을 일으킨 이들이 지금도 정치 테이블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광주를 헌법 전문에 넣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위치로 역전된다. 이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표현이 담긴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2026년 7월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참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표현이 담긴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2026년 7월6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참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광주’는 공화국의 토대가 되는 정신

 

헌법 전문에 들어가면 토론에서 정치인에게 하는 질문 역시 명확해진다. “5·18을 헌정의 기본 정신으로 인정하십니까, 아닙니까”라는 질문이다. 이 기본 정신을 부정하는 사람의 사상의 자유와 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줘야 하겠지만 그를 정치의 테이블에 올라오게 할 수는 없다. 현실 정치의 자리는 헌정 질서를 인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움직이려는 자들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바깥에서 ‘혁명’을 모색해야 한다. 그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헌정 질서 내의 ‘몫’은 없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말하는 자 스스로 자신이 ‘헌정을 부정하는 자’라는 위치를 만천하에 천명하는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면 될 일이다.

헌법 전문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인 광주일고 학생들이 짊어져야 했던 짐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사과한 쪽은 명백히 자신이 한 잘못이 있기에 뚜렷하게 사과의 ‘당사자’가 될 수 있지만 용서를 요청받는 쪽은 자신이 ‘주체’인지가 그리 선명하지 않다. 무엇보다 저 사건으로 인해 모욕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광주일고가 어떻게 대표할 수 있는가. 대표해도 되는가? 사과하는 쪽은 신속하고 명쾌하게 사과의 말을 하지만 오히려 용서하는 쪽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용서할 준비가 안 된 것만이 아니라 용서의 대표 주체가 되는 부담을 갖는 것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과와 용서는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비대칭적이다.

여기서 한국 사회가 광주일고 학생들을 한 번 더 괴롭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피해자인 그들이 이것이 자기가 용서할 일인지를 두고 갈등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존재를 괴롭히는 일인가. 이것을 매우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이다. 이 책은 나치의 학살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유대인 저자가 죽어가던 나치 장교로부터 일방적으로 용서를 청해 받으며 겪은 갈등에 대해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달라이 라마를 포함해 전세계 유명인들에게 하고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한 응답을 모아놓은 책이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에서 가장 황당했던 것이 이 점이었다. 왜 자신이 받은 모욕과 조롱에만 집중하며 분개해야 할 ‘피해자’에게 역사의 짐까지 지게 하는가? 역사의 이름으로 훈계하고 역사를 알 것을 촉구하고 역사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짐을 왜 피해자가 져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민주공화국을 낳은 정신이자 역사적 뿌리임을 헌법 전문을 통해 명확히 하지 못하고 40년간 ‘미완성’인 상태로 지체된 ‘87년 체제’와 거기서 정치적 이익을 얻는 집단 때문이다.

 

비난받아야 할 86세대 정치인

 

이 점에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광주를 부정하는 보수 세력뿐만이 아니다. 같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역사의 짐은 광주일고 학생들에게 던져놓은 주제에 자신들도 상처받은 당사자인 것처럼 비분강개하는 86세대 정치인이다. 급히 출범해야 했기 때문에 제6공화국은 자신을 낳은 근본정신을 전문에 넣지 못했다. 권력구조 문제도 있었기에 헌법 개정 이야기가 고비마다 나왔지만 추진되지 못하고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86세대 정치인들은 늘 권력의 핵심에 있었지만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은 구호에 그친 채 지금의 사태를 맞이했다.

정말 이들이 헌법 개정에 관심이 있을까? 헌법 전문에 광주가 들어가는 순간, 역설적으로 이들은 역사적 종언을 맞이해야 하는데 말이다. 자신들이 퇴장할 수 없는 근거로 시간을 지체하는 데 일조한 이들이야말로 유예된 과거에 도착한 가장 퇴행적인 집단일 것이다. 헌법 전문에 광주를 넣더라도 끊임없이 부정할 자들이 정치 테이블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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