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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배재고 야구부 응원 사태가 일깨운 학교의 본질… ‘적의 없는 승부’를 통해 얻는 지혜 가르쳐야
등록 2026-07-09 21:21 수정 2026-07-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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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슬램덩크’ 이미지. 한겨레 자료사진

만화 ‘슬램덩크’ 이미지. 한겨레 자료사진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조롱 응원 논란이 벌어졌을 때, 웹툰 작가이자 같은 대학의 동료 교수인 양세준이 ‘슬램덩크’를 중심으로 스포츠 만화의 세계관을 분석한 말이 떠올랐다. 그에 따르면 스포츠와 예술을 소재로 한 소년 만화는 ‘적의 없는 승부’의 세계를 펼친다. 치열한 승부를 펼치되 거기엔 적의가 없다. 경쟁자는 무찔러야 할 적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동료다. 때로 적의로 가득 찬 인물도 등장하지만, 그도 결국은 기예의 완성이라는 목표에 매료돼 포기하지 않는 경쟁자이자 멋진 동료로 거듭난다. 학교를 배경으로 스포츠와 예술을 소재로 한 소년 만화가 펼치는 세계는 우정이 압도하는 낭만적인 세계다.

만화의 세계관일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이 세계가 교육과 학교의 본질을 담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덕(virtue)의 추구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인 키케로는 이 덕 중에서 가장 높은 덕을 ‘지혜’라고 말한다. 지혜는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내면화하며 실천하는 탁월함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덕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오해와는 달리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식이 있어야 덕이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지행합일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앎’은 ‘실천’과 통합된 것이었고, 그것을 함께 추구하는 집단을 ‘스쿨’이라 불렀다.

 

교육의 목적은 ‘지혜’의 추구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꿰뚫어 본다는 말에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저 말에 더 근접한 말은 동양의 천문과 인문이라는 말이다. 이치가 있다는 것은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 이면에 질서가 있음을 의미하며 공부란 철저하게 그 질서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이치를 발견하고 그 발견된 이치에 힘입어 비판하며, 이치의 이치를 또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지혜의 ‘완성’에 이르려고 하는 것, 그것이 공부다.

이치를 알아야만 내가 어떻게 살지를 정할 수 있다. ‘좋은 삶’의 추구는 지식과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별자리를 모르면서 항해에 나설 수 없으며 물리학과 기하학을 모르면서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더구나 탁월한 항해사나 건축사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이치를 정교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몸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혜를 공부의 덕으로 삼는 사람은 알고 다룰 줄 안다는 점에서 기예로서의 지혜에 탁월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그리스인들은 ‘좋은’의 의미와 ‘탁월한’의 의미를 함께 썼다.

운동과 예술은 기예로서의 지혜에 탁월함을 만드는 가장 멋진 교육이다. 이치를 알고 그 이치를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 운동이다. 기예와 내 몸이 일치해 몸 자체가 이데아를 보여주는 것이 운동이다. 지혜의 ‘완성’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하는 것, 그리고 쉼 없이 실험하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 운동과 예술이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을 면제받고, 프로선수가 되어 천문학적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더라도 대부분의 선수는 운동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치를 꿰뚫어 보려는 것, 즉 지혜에 몰두하고 기예를 연마한다.

이런 점은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주인공들이 피아니스트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다룬 만화 ‘피아노의 숲’에 이 점이 잘 나타난다. 주인공 이치노세 카이는 전국피아노콩쿠르대회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바장조 쾨헬 280’을 연주한다.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카이는 스승인 아지노의 연주법을 그대로 흉내 내지만 스승은 자신만의 모차르트를 연주하라고 한다. 완벽하게 흉내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자 연주하는 당일까지 자신의 피아노를 찾지 못한 카이의 눈에 주변 모든 사람이 모차르트의 망령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뚱뚱한 모차르트, 아줌마 모차르트, 아기 모차르트 등등. 모차르트들은 카이에게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자격이 없다며 악보를 돌려달라고 말한다. 결국 마지막에 카이는 흉내를 버리고 자신의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고 모차르트 괴물들은 박수를 치고 사라진다. 이처럼 운동과 예술은 다른 어떤 공부보다도 지혜의 완성으로서 탁월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이 만화에서 모차르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연출적으로 정말 환상적이다. 독자들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2026년 7월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고등학교 앞에 학교와 야구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근조화환이 줄줄이 놓여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26년 7월1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배재고등학교 앞에 학교와 야구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근조화환이 줄줄이 놓여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혜의 완성 만드는 운동과 예술

 

그러나 이런 완성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단지 그 완성의 길 위에 있을 뿐이다. 간디는 이런 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진리를 향한 위대한 실험이라고 불렀다. 이 실험이 위대한 이유를 간디의 정신을 바탕으로 ‘마음의 씨앗’이라는 마음챙김 공부를 이끄는 조영훈씨는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끝이 있는 죽을 운명인 인간 개별체는 결코 위대해질 수 없지만 끝이 없는 진리를 향한 실험에 동참할 때 비로소 위대해진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교육이 왜 위대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인간 개별체는 결코 완성에 이를 수 없지만 완성을 향한 이 위대한 여정에 동참함으로써 위대해질 수 있다. 오직 교육을 통해 초라한 인간은 위대해질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키케로는 지혜에 이어 인간의 두 번째 미덕으로 우정을 말한다. 인간은 결코 지혜의 완성에 이를 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은 그 지혜의 완성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미덕을 갖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의지하며 격려하는 ‘우정’이라는 미덕을 내려줬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미덕을 공유하며 서로를 비추는 영혼의 거울이 되는 것이 우정이다. ‘또 다른 나’인 우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미덕(의 상태)을 확인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동양에서는 이런 우정을 ‘도반’이라 불렀다. 지혜를 향한 우정을 나누는 곳이 스쿨이다.

운동과 예술에서는 완성을 함께 지향하는 ‘도반’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경쟁자’로서 말이다. 완성을 지향하기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겨루게 되고 겨룸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 소년 만화가 포착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피아노의 숲’에서는 주인공인 이치노세 카이, 아마미야 슈헤이, 마루야마 다카코가 그런 관계다. 독자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슬램덩크’에서는 강백호와 서태웅, 서태웅과 윤대협이 그렇다. 이들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완성을 향해 가는 ‘도반’이다.

 

경쟁자와의 ‘우정’이 중요한 이유

 

소년 만화에서 승부를 겨루는 형식의 운동/예술 만화를 통해 독자가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은 이런 우정의 세계다. 이 우정의 세계는 당연히 ‘낭만적’이다. 현실의 이해관계를 초극하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우정은 서로에게 얻을 유익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탁월함에 이끌려 그 사람을 본받고 아끼려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낭만’의 요체는 바로 현실적 이해의 초극이 아닌가. 소년 만화를 보며 독자들은 죽을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지혜를 향한 우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지를 읽는다. 책을 펼치며 이런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에 감동하고 학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교는 지혜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탁월한 우정의 공간이다. 하지만 학교에 낭만이 없다며 학교가 우정의 공간이라고 한 말에 대해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이 말은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어떤 공부인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무지의 말이다. 학교는 지혜에서 탁월한 자가 되는 것, 즉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바로 우정의 공간이어야 한다. 우정에서 탁월하지 않다면 결코 지혜를 탁월하게 추구할 수 없다. 자신을 끝으로 생각하는 그는 승리한 자는 될지언정 끝이 없는 위대함에는 이르지 못한다.

한국의 스포츠와 예술 교육 현장의 현실을 보자. 양보는 없지만 너와 나 모두 탁월함을 향해 가는 적의 없는 배틀의 세계인가, 아니면 네가 죽어야 내가 승리하고 독식하는 적의로 뭉친 세계인가. 만약 거기 교육으로서의 운동에 우정이 1g이라도 고려됐다면, 그래서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경쟁자로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면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응원은 가능한 것이었겠는가.

그럼에도 지혜와 우정이라니,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꿈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무한 경쟁에 승자독식의 교육 현실에서 무슨 헛소리냐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라고 질타할 것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그 ‘현실적’인 것으로는 지금의 모습이 학교가 아니라는 현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아가 지금의 학교를 학교답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학교인데 좋은 것이 없다면 그건 학교가 아니다’라는 말이 놓치는 것이 있다. 나쁜 학교이거나 시시한 학교가 아니라 그저 학교가 아닐 뿐이다. 그렇기에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좋은 학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당연히 학교가 중심에 둬야 하는 것은 지혜와 우정이다.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학생과 교장·교직원·학부모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이 2026년 7월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로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학생과 교장·교직원·학부모 그리고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이 2026년 7월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안장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적의가 가득 찬 배재고 화환 ‘유감’

 

오직 지혜에서 탁월해지려는 자만이 우정을 찾는다. 경쟁자를 적이 아니라 영혼의 거울로 아낄 줄 알게 된다. 아낀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런 말을 제지할 줄 알고, 그 행동에 대해 사과할 줄 안다. 반대로 경쟁자가 오직 밟아야 할 적일 때는 가장 타격을 줄 수 있는 말로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적의 없는 승부라는 우정의 세계와 승부가 적의로 가득 찬 전쟁이 된 세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운데는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학교가 이런 질문을 하기도 전에 하나의 답을 교문 앞에 던져놓았다는 점이 문제다. 배재고등학교 앞에 깔렸던 화환들을 보라. 거기 어디 교육이 있는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기 감정의 배설만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보는 학생들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없었다. 그 배설은 또 다른 배설의 좋은 핑곗거리만 되었고 그 앞에서는 이미 학교가 고민하기 전에 ‘적의 없는 승부’의 정반대인 적의로 똘똘 뭉친 세계만 펼쳐졌다. 그게 한국의 현실이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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