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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원짜리 어르신들의 낭만을 지켜주세요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낭만극장, 17년 쌓은 어르신 문화공간이 서울시 무료화 정책 앞에 흔들려
등록 2026-06-04 19:41 수정 2026-06-08 10:35
청춘콘서트를 보러 온 어르신들이 2026년 5월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낭만극장에서 출연진 전원이 무대에 올라 부르는 ‘청춘쏭'을 감상하고 있다.

청춘콘서트를 보러 온 어르신들이 2026년 5월25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낭만극장에서 출연진 전원이 무대에 올라 부르는 ‘청춘쏭'을 감상하고 있다.


각종 악기가 유통되는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이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1969년 8월 문을 연 허리우드극장이 개봉 영화를 상영하던 이곳에는 현재 오래전 영화를 상영하는 실버영화관과 어르신들을 위한 쇼와 뮤지컬을 공연하는 낭만극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낭만극장에서 ‘청춘쏭 콘서트’가 열린 2026년 5월25일 어르신들은 극장 들머리에서 한참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286석의 자리가 가득 찼다.

바로 옆 실버영화관에서는 존 포드 감독의 1946년작 서부영화 ‘황야의 결투’가 상영 중이다. 80년 전 영화이지만 노이즈 제거와 색 보정 등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화질이 제법 선명하다. 어르신들이 보기 편하게 일반 영화보다 조금 위쪽에 굵고 큰 글자로 자막이 노출된다. 한 달에 두 번꼴로 이곳을 찾는 김장진(81)씨는 “종교영화를 즐기는데, 핍박받는 예수와 기독교인들을 다룬 ‘벤허’를 인상 깊게 봤다”며 “쇼 중에는 언젠가 추석 때 ‘타타타’를 부른 김국환씨 공연이 좋았다”고 말한다. 80살 들어 목 수술을 한 뒤 몸 오른쪽에 마비가 와서 재활운동 삼아 파크골프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송파구 복정역 근처에서 파크골프를 가끔 치고,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 두 곳 모두 이용료가 2천원”이라며 웃는다.

학창 시절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김석원(79)씨는 제임스 딘이 주연을 한 1955년작 ‘에덴의 동쪽’을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았다. 친구와 함께 두 달에 세 번쯤 이곳을 찾는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몇십 년 만에 옛날 동네 후배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며 즐거워한다.

이날 청춘쏭 콘서트 무대에 가장 먼저 올라 자신이 노랫말을 쓴 ‘봄날이야’를 부른 가수 정현아씨는 주 활동 무대가 부산인데 공연하러 서울에 왔다. 부산에서 행사 사회를 보다가 2021년 뒤늦게 가수로 데뷔한 정씨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부터 즐거워하던 어르신들이 노래하는 동안 눈을 맞추며 손뼉 치고 막 응원해주셔서 힘이 났다”며 “이 공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데 이 영화관과 극장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 이곳에서 3㎞ 거리의 청춘극장이 무료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서울시가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청춘극장은 2025년까지 이곳과 같이 60살 이상 어르신과 동반자에게 2천원의 영화 관람료를 받았다. 공연 관람료는 3천원이었다. 하지만 2026년 들어 운영 주체가 바뀌며 관객이 급감하자 청춘극장은 ‘누구나 청춘무대'라는 이름으로 55살 이상을 대상으로 무료 운영에 들어갔다. 이에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추억을파는극장’ 김은주 대표가 서울시에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무료로 해도 열 명밖에 오지 않는데 무슨 피해가 있냐”며 ‘노인복지’란 이름으로 강행할 뜻을 비쳤다.

일반 극장이 관람료 7천원을 받던 2009년, 어르신들에게 2천원의 관람료를 받으며 문을 연 실버영화관은 일반 극장이 1만5천원을 받는 지금도 2천원을 받는다. 트로트 뮤지컬 등 어르신용 콘텐츠를 공연하는 낭만극장의 관람료는 5천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활물가가 계속 오른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수준의 관람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김 대표의 뜻에 공감한 주변 사람들과 관계자들의 도움이 컸다. 특히 ‘국민 엠시(MC)’ 송해씨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이 극장의 운영 취지에 공감한 송씨는 유명 연예인을 최소한의 출연료로 섭외해주는 걸 넘어, 자신의 재산을 이곳에 투자하고 이 무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노래자랑 사회를 보며 지낼 말년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하고 떠나면 남진 등 후배들이 또 이어서 갈 거야”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2022년 송씨가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그의 계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렇게 17년간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와 문화복지 공간을 성장시켜온 김 대표는 2026년 1월2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럼에도 사회적기업 등 민간의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서울시의 무료화 정책이 굳어질 상황에 이르자, 김 대표는 “공공이 시민과 함께 만든 공익 생태계를 세금으로 다시 무너뜨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장기간 공익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겠느냐”는 호소문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도 영화관 로비에 마련된 서명대에서 ‘품격 있는 문화공간’을 지켜달라는 호소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나란히 자리한 낙원동 낙원상가에서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극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 나란히 자리한 낙원동 낙원상가에서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극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가수 정현아씨(맨 왼쪽) 등 청춘쏭 콘서트 출연진이 간이 탈의실과 거울이 세워진 극장 복도에서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가수 정현아씨(맨 왼쪽) 등 청춘쏭 콘서트 출연진이 간이 탈의실과 거울이 세워진 극장 복도에서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어르신들이 실버영화관에서 옛 서부영화 ‘황야의 결투'를 감상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읽기 편하게 자막 글자 크기를 키우고 색을 입혔다.

어르신들이 실버영화관에서 옛 서부영화 ‘황야의 결투'를 감상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읽기 편하게 자막 글자 크기를 키우고 색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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