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륵(왼쪽)이 2026년 3월23일 베트남 다낭시 주이응이어사 선비엔촌의 주이응이어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에서 어머니 응오티드엉의 이름을 찾는 동안 그의 아내 쩐티리(오른쪽)가 두 손을 모은 채 이를 바라보고 있다. 가운데는 레륵 동생 레쯕의 아내 윈티탄.
두 사람 모두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에게 가족이 살해된 레륵과 쩐티리 부부가 2026년 3월23일(현지시각) 베트남 다낭시(옛 꽝남성 주이쑤옌현) 주이응이어사 선비엔촌 주이응이어 학살 위령비 앞에 섰다. 남편 레륵이 담담한 표정으로 위령비에 적힌 어머니와 동생들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가는 동안 같은 아픔을 겪은 쩐티리가 두 손을 모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북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산에 나무하러 갔던 레륵(당시 21)은 베트콩 혐의를 받아 미군에 체포됐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던 1969년 8월과 9월, 한국군이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어머니와 네 명의 동생을 학살했다. 그해 8월25일 선비엔촌에 한국군이 몰려오자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 레쯕(당시 2)은 집에 있는 방공호에 숨었다. 한데 이웃 한(Ha͐nh) 할머니 방공호로 몸을 피한 남동생 레반투(5)는 방공호 들머리에서 한국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고 한국군이 방공호 안에 수류탄을 던져 여동생도 숨졌다.
이 참극을 겪은 뒤 아버지와 레쯕은 탕빈현 빈민사로, 어머니 응오티드엉(당시 40)은 아들 레반빈(7)과 딸 레티웃(1)을 데리고 주이하이사로 피란을 갔다. 그해 9월17일 주이하이사 떠이선떠이촌에 들어온 한국군은 리에우 할아버지 방공호에 숨은 주민들을 끌어내 “베트콩이냐”고 물은 뒤 총을 쐈다. 레륵의 어머니와 두 동생이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레륵의 아내 쩐티리의 가족도 한국군 총에 희생됐다. 1969년 11월12일 꽝남성 탕빈현 빈즈엉사 5촌에 들어온 한국군은 당짜 할아버지 방공호로 피신한 주민들을 마당으로 끌어내 학살했다. 쩐티리(당시 16)의 어머니 레티더우와 여동생 쩐티떤(11), 남동생 쩐반떤(13)과 쩐반응오아(4) 등 4명의 가족을 포함해 주민 25명이 이곳에서 희생됐다. 쩐티리는 오빠 쩐반저(21)와 함께 미리 도망쳐 화를 피했다.
숲으로 피했던 쩐티리는 한국군이 마을을 나간 뒤 돌아와 신원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참혹한 주검을 목격했다. 그는 “너무 무섭고 마음이 아팠다”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주변 이웃들이 ‘힘을 내라’고 말하며 도와줘서 견뎌낼 수 있었다.”
1973년 감옥에서 풀려난 레륵은 쩐티리와 이웃에 살았다. 각각 농사짓던 두 사람은 함께 산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레 가까워져 결혼에 이르렀다. 이 부부는 2019년 4월 한국 정부에 보내는 청원에 함께 서명했다. 레륵은 “전쟁 중이라도 주민을 죽이면 안 된다. 주민 중에는 아기와 임신부, 노인도 있었는데 이들을 총으로 학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이라고 설명했다.
청원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이 부부는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여부보다 한국과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것에 한국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쩐티리는 “허리, 다리, 심장, 마음 등이 아파 외출이 어렵다”며 “한국에 좋은 약이 많다고 들었는데, 피해자들에게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레륵의 어머니와 동생 등 가족이 희생된 한 할머니 방공호와 리에우 할아버지 방공호 학살 사건, 그리고 뇨 할아버지 방공호와 린 할아버지 마당 학살 사건 등 83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주이응이어 학살 위령비는 2008년 6월에 세워졌다.
이날 이곳을 찾은 레륵·쩐티리 부부와 학살 당시 살아남은 동생 레쯕의 아내 윈티탄은 위령비와 그 바로 뒤에 자리한 집단묘지를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전쟁에서 스러져간 어린 가족과 이웃의 넋을 달래는 이 순간에도 지구촌 한편에서는 총구가 불을 뿜어대고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레륵(가운데)이 다낭시 주이응이어사 선비엔촌 자신의 집에서 1969년 학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레륵의 아내 쩐티리, 오른쪽은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동생 레쯕의 아내 윈티탄.

레륵(왼쪽)이 주이응이어 학살 희생자가 묻힌 집단묘지에서 아내 쩐티리(오른쪽)와 함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가운데는 레륵 동생 레쯕의 아내 윈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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