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 성소수자 인권단체 빌롱투(BeLonGTo)의 모니네 그리피스 대표가 2025년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혐오와 차별이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동성부부의 삶을 정부가 드디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2025년 10월22일 시작한 인구주택총조사의 ‘가구주와의 관계’ 문항에서 가구주와 성별이 같은 사람이 ‘비혼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선택할 수 있도록 자료 입력 방법을 변경한 것이다. 성소수자의 규모와 분포, 주택, 교육, 직업, 경제활동 등에 관한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성소수자의 삶을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변화가 마침내 싹을 틔웠다.
평등을 외친 성소수자와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이뤄낸 이 진전은 외신을 타고 세계 곳곳에 전해졌다. 아일랜드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빌롱투’(BeLonGTo)의 모니네 그리피스 대표는 내 일처럼 기뻐했다. 2003년 활동을 시작한 빌롱투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 상담과 인권 옹호 캠페인, 연구조사 및 청소년 기관, 교사, 상담사, 양육자를 위한 조언과 교육 등을 하는 비정부기구다. 우리나라에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과 유사한 활동을 한다.
“물론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실제 규모가 확인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에 얼마나 많은 동성커플과 가족이 사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더욱 많이 확보하는 것은 한국에서 살고, 일하고, 그리고 사회에 기여하는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둘러싼 일부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피스 대표가 10월31일 한겨레21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성소수자가 내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라는 사실이 데이터로 가시화되면 성소수자를 불행하고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편견,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피스 대표의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아일랜드에서 그런 변화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2015년 5월22일 진행된 국민투표(찬성 62.1%, 반대 37.9%)를 통해 헌법을 개정해 동성혼을 법제화(법으로 인정)한 첫 번째 나라다. 당시 제34차 헌법 개정으로 ‘혼인은 그들의 성과 관련된 구분 없이 두 사람에 의해 법에 따라 계약으로 성립한다’는 조항(제4장 제41조)이 헌법에 새로 새겨졌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 아일랜드에서 결혼하는 동성커플은 코로나19 유행 시기(2020~2021년)를 제외하면 매년 600쌍 이상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3년(2022~2024년) 동안 혼인한 동성커플은 2022년 618쌍, 2023년 646쌍, 2024년 668쌍으로 집계됐다.
그리피스 대표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10월16일 한국 혼인평등 캠페인 조직 ‘모두의 결혼’ 주최로 ‘국제 혼인평등 콘퍼런스’가 열린 국회에서다. 이날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리피스 대표에게 동성혼 법제화 이후 아일랜드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자녀 또는 손주가 레즈비언, 게이라는 이유로 외롭거나 슬픈 삶을 살게 될까봐 걱정했던 부모와 조부모들이 매우 기뻐했어요. 사람들이 처음엔 동성혼이 낯설고 이성혼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동성혼도 여느 혼인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고, 나이가 들거나 아플 때를 비롯해 삶의 모든 순간에 서로를 돌보는 일이라는 점에서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죠. 지금은 동성혼에 대해 사람들이 충격받거나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아요. 이젠 결혼업계가 동성커플을 찾아다니며 관련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혼인성사의 불가침성을 강조한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1995년 개정 전까지 헌법에 이혼에 관한 법률 제정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었을 만큼 전통적으로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아일랜드에서, 혼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성소수자들에게 인생에서 매우 큰 문제였고 수치심의 근원이었다고 그리피스 대표는 덧붙였다. 그는 10년 전 국민투표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딸이 태어난 뒤로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날이었어요. 아일랜드 시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죠. 투표 전에 우리는 여러 기초 작업을 한 상태였어요. 동성혼은 혼인의 정의 또는 결혼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혼인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더 많은 가족을 보호하는 일임을 전국 여러 마을에서 풀뿌리 대화를 나누며 많은 사람에게 알렸어요. 이미 혼인한 사람들이 가족을 꾸리고 누린 긍정적 경험을 더 많은 사람에게 확장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죠.”
그리피스 대표는 이어 “아일랜드에서는 동성커플(비혼 포함) 규모가 2022년 센서스(인구총조사)에서 1만393쌍을 기록했는데, 이는 2011년 대비 157% 증가한 규모”라며 “과거에는 성소수자들이 아우팅(타인이 성소수자의 의사에 반해 그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을 우려하며 정보 공유를 꺼렸지만, 2015년 혼인평등 승리 이후 동성커플들은 이제 센서스에서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는 데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레즈비언 부부인 김세연·김규진(맨 왼쪽부터)씨와 게이 부부인 김기환·박종렬씨가 2023년 7월1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결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 부부는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에 참여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리피스 대표는 한국에서도 동성혼이 법제화되길 “바라고, 또 바라고, 기도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불수리한 구청의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하거나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지금의 민법 해석의 위헌성을 다툼)하는 방식으로 동성혼 법제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도 과거에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로 여겨졌지만, 동성혼 법제화라는 모멘텀을 통해 ‘우린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세계에 보여줬듯이, 한국 법원도 과거가 아닌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결정을 할 것으로 기대해요.” 그리피스 대표의 말이다.
2015년은 아일랜드가 혼인평등을 실현한 해이면서 ‘성별인정법’을 시행한 해이기도 하다.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로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성별 확정 수술 같은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성별인정법이 생긴 뒤로 성별 인정(변경)을 신청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 89명을 시작으로 2018년 124명, 2021년 195명, 2024년 337명이 신청을 통해 원하는 성별을 인정받았다. 아일랜드 정부로부터 성별인정증명서를 받은 사람은 그 증명서에 명시된 성별을 여권, 운전면허증, 출생증명서 등 공적 문서에 반영할 수 있다. 주한아일랜드대사관은 성별인정법 시행 10주년을 맞은 2025년 7월1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제도는 트랜스젠더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존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어둠’도 있다. 비롱투가 아일랜드 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정신건강과 삶의 질을 조사한 ‘아일랜드에서 엘지비티큐아이(LGBTQI)+로 산다는 것 2024’(Being LGBTQI+ in Ireland 2024) 보고서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와 젠더비순응(각주1) 집단의 44%가 심각한 또는 극도의 우울증 증상(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을 보였다. 또 55%가 심각한 또는 극도의 불안 증상(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과 공포)을 호소했고, 75%가 자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살 생각을 했다고 밝힌 비율은 82%에 달했다.
“오늘날 트랜스젠더의 삶은 10년 전보다 더 어려워졌어요.” 그리피스는 그 이유를 에스엔에스(SNS)를 중심으로 유통된 ‘트랜스혐오’에서 찾았다.
“트위터(현 엑스)는 끔찍했어요. 트랜스젠더에게 인신공격을 퍼붓는 부정적인 말들이 많이 돌았어요. 그렇다보니 트랜스젠더들이 ‘누군가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공격하는 건 아닐까?’를 걱정하며 움츠러들고, 그런 불안이 쌓이고 쌓여서 우울·자해·자살로 이어지고 있어요.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날까봐(아우팅을 당할까봐) 화장실도 못 가고,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그래서 학교에서 기절하거나,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트랜스젠더 학생들도 있어요.”
앞서 아일랜드 의회는 1989년 11월29일 인종과 피부색, 국적, 종교, 민족,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증오선동’(각주2)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나아가 2024년 10월29일에는 인종과 피부색, 국적, 종교, 민족, 성적지향뿐만 아니라 성별, 성 특징(각주3), 장애 등을 이유로 한 ‘혐오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후자에서 처벌하는 범죄 유형은 폭행, 살인, 살해 위협, 공공장소에서의 위협 행위, 괴롭힘 등이다. 온라인을 이용한 혐오표현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전자의 법으로도 증오선동이 아닌 행위, 즉 성소수자를 모욕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확산하는 행위를 규제하기 어렵다.

모니네 그리피스 ‘빌롱투’ 대표가 2025년 10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그리피스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우리의 많은 선출직 대표(의원)들이 개인적으로는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한다고 믿어요.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트랜스혐오 담론이 커지면서 혐오 세력에게 표적이 되고 논란의 중심에 설까 봐 그들은 침묵을 선택했고, 혐오표현 금지법 제정과 같이 소수자 집단을 보호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성소수자가 더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혐오표현 금지법 제정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기 위한 공교육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래도 그리피스 대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성소수자의 권리와 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매우 높아요. 우리는 또 혼인평등 같은 성과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현재 정부 정책에는 성소수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많은 약속이 포함돼 있어요. 그걸 만들어낸 게 바로 시민들이에요. 시민의 힘을 믿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 용어 설명
1. 젠더비순응: 각 사회에서 특정 성별에게 부여하는 젠더규범에서 벗어나는 표현이나 실천을 가리킴. 트랜스젠더처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지정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사회의 규범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고, 드랙과 크로스드레싱처럼 당사자의 성별정체성과 별개로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그 사회의 젠더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실천을 하는 경우도 포함함.(조수미, ‘일본의 젠더비순응 실천과 정체성: 역사적 변화와 21세기의 트랜스젠더 정체성’, ‘아시아리뷰’ 제14권 제1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24)
2. 증오선동: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조장하는 증오 고취 행위. 실제로 어떤 폭력적인 행동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어야 증오선동에 해당.(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어크로스, 2018)
3. 성 특징: 성별과 관련된 신체적 특징을 의미. 여기에는 생식기, 기타 재생산과 관련된 해부학적 구조, 염색체, 호르몬, 사춘기부터 나타나는 2차 신체 특징이 포함됨. 신체적 또는 생물학적 성징이 전통적 정의에서 말하는 남성 또는 여성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인터섹스(intersex)라고 함.(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포용적인 학교 환경을 위한 법제도 개선연구: 성소수자 학생을 중심으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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