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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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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20만 가구 당장 ‘퇴출’? ‘전환’에서 답 찾는 실험

서울 성동구, 관내 6321개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
‘미흡’ ‘부적합’ 등급 개선하자 주거 스트레스 큰 폭 하락
등록 2025-10-31 15:27 수정 2025-11-04 07:06
성동구는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 포섭되지 않는 주거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해 자체적인 ‘위험 거처 진단 조사표 및 매뉴얼’을 개발해 공무원과 건축사들이 함께 관내 6321개에 이르는 반지하 주택을 모두 방문 조사했다. 사진 성동구청 제공

성동구는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 포섭되지 않는 주거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해 자체적인 ‘위험 거처 진단 조사표 및 매뉴얼’을 개발해 공무원과 건축사들이 함께 관내 6321개에 이르는 반지하 주택을 모두 방문 조사했다. 사진 성동구청 제공


2022년 8월8일, 서울에서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다. 폭우가 막 잦아들던 8월10일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등 모든 측면에서 주거취약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며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 전면 불허 입장을 천명했다. 당시 기준 약 24만 호, 서울시 전체 가구의 5%가 머무는 ‘주택’이 단 이틀간의 폭우 이후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 됐다.

‘반지하 퇴출’ 외쳤지만 전체 3.1%만 이주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2022년 이후 정부와 서울시 지원으로 반지하를 벗어난 가구는 7608가구다. 서울시 전체 반지하 가구의 3.1%뿐이다. 여전히 23만5천여 가구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그 기간 윤석열 정부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갈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3년여에 걸쳐 7조원가량 삭감했다. 서울시 역시 다르지 않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서울시의 ‘지하 거주 감소를 위한 소요예산’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반지하 매입 등 관련 예산은 2023년 5368억원, 2024년 4188억원으로 줄었다가 2025년에는 2085억원으로 2년 새 절반 이상 줄었다.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를 “한국만의 독특한 뉘앙스를 가진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국가 특히, 급격한 도시화가 발생한 국가들은 모두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한 주택을 갖고 있지만, 지하 공간을 법적 주택으로 인정하고 실제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왜일까. 한국에서도 애초 반지하는 집이 아니었다. 1962년 제정된 건축법은 ‘주택의 거실은 지층에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다 6년 만에 갑자기 법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김신조 때문이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 정부는 주택법을 개정해 지하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삽입했다. 애초 반지하는 적의 포격과 공습을 피하기 위한 방공호였다. 전쟁 등 재난 사태를 대비하는 비상대피소, 벙커 시설이었다.

하지만 이후 서울과 수도권에 몰아친 건 적의 포격과 공습이 아니라 지방에서 밀려든 인구였다. 서울엔 집이 부족했고, 맨몸으로 올라온 가난한 이들에게 지상은 비쌌다. 거주할 곳은 한정적이었다. 전쟁의 공포를 대비하던 방공호가 주택난의 공포를 해결해야 하는 이들의 숙소로 전환된 이유다. 1970년대까지 이어진 이촌향도의 물결은 서울의 가장 낮은 틈, 반지하부터 채워갔다.

결국 정부는 1975년 12월 건축법을 개정해 ‘환기, 위생 등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다면 지하층도 주거 목적(거실 설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도시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당장 생존할 공간이 절실한 사람이 넘쳐난다. 1975년부터 2022년까지 반지하는 용적률 산정에서도 제외됐다. 1980~1990년대 주택 200만 호 건설이 추진될 때 반지하는 용적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임대 수익이 나는 공짜 층으로 인식됐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10년 동안 3배 ↑

도시의 팽창과 함께 늘어가던 ‘비상대피소에 사는 시민’들은 늘 비가 올 때 주목받았다. 1998년 집중호우로 반지하에 침수 피해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상습 침수지역에 한해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몰고 온 폭우 피해에 정부는 처음으로 신축뿐만 아니라 기존 반지하도 감축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2년 폭우 이후 반지하는 공식적으로 ‘퇴출’ 대상이 됐다.

어떤 반지하 주택은 생존의 위험에 직면해 있고, 많은 반지하 주택이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반지하를 없애버리겠다는 철벽 정책은 거기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임시숙소 등 포함)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2010년 39만1천 가구(거주 인원 144만3천 명)였다가 2020년 119만3천 가구(거주 인원 277만9천 명)로 3배 증가했다. 좋은 집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소득 상승과 거주 욕구의 변화 등으로 2000년대 이후 반지하 주택 입주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관악구(8%), 강북구(7%), 중랑구(6.3%), 광진구(5.5%) 등의 지역에서 반지하 거주율이 높다는 사실은 거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여전한 현실이다. 그들을 옮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줄고, 정책은 ‘퇴출’만 남은 구조적 모순 상황에서 반지하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반지하는 기후·건축·복지 등 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가 맞물린 복합적 과제다. 복합적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할 이상적 실천은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 정부의 ‘반지하 일몰제’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2022년 8월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그때까지 서울시 전체에 반지하 주택이 얼마나 있는지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반지하 주택을 처음 전수조사한 건 서울시 성동구(구청장 정원오)였다. 2022년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시행한 것이 2023년 서울 전역으로 확대됐고 2024년에는 인구주택총조사의 기반이 되는 전국 단위 조사인 가구 주택 기초조사에 뒤늦게 반영됐다. 그 전까지는 정부 단위 통계에 반지하 주택은 정확한 숫자로 반영조차 되지 못했다.

 


C·D등급 개선사업으로 행정 효능감 높아져

그렇다면 왜 성동구는 반지하 주택을 전수조사한다는 다른 방향을 잡았을까. 그 방향성에서 무엇을 확인했기에 무작정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전하게 남긴다’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정원오 구청장은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장기적 방향이 ‘퇴출’이라면 단기적 목표는 ‘안전 확보’인데, 이 두 가지는 상충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20만 가구가 넘는 반지하 세대가 있는데 이들을 모두 지상으로 이주시킬 경우 전월세 급등, 저렴 주택의 멸실, 거주 연속성 붕괴 등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날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전수조사 결과 “공간이 갖는 ‘위험의 특수성’을 제거하는 접근이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판단과 함께 자연재난이 인재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른 선택을 하게 된 성동구의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는 복합적 문제인 반지하 주택을 ‘퇴출’이 아닌 ‘전환’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성동구는 공무원과 건축사들이 함께 관내 6321개에 이르는 반지하 주택을 모두 방문 조사했다. 성동구는 주택법상 최저주거기준에 포섭되지 않는 주거 요인들을 파악하기 위해 자체적인 ‘위험거처 진단 조사표 및 매뉴얼’을 개발해 5개 대분류, 9개 중분류, 27개 소분류로 나눈 평가 항목을 마련했다. 5개 대분류는 구조물 안전, 사고 예방, 생리적 요건, 심리적 요건, 공중위생이고, 9개 중분류는 구조물 안전에 관한 항목(대지, 구조물, 마감), 사고 예방에 관한 항목(낙상, 감전/화재/폭발/중독, 충돌/침수), 생리적 요건(습도/온열 조건), 심리적 요건(공간보안/조명 및 소음), 공중위생(위생 및 물 공급) 등이다. 평가는 기준표에 따른 정량 평가와 건축사들의 개선 시급도 의견을 반영한 정성 평가로 나눠 이뤄졌다.

성동구는 이 기준에 따라 반지하 주택의 거주 실태를 ‘A(양호), B(보통), C(미흡), D(부적합)’로 나눴다. 조사 결과, 시설 보완 및 수선이 필요한 B와 C등급은 총 473가구, 거주 부적합한 D등급 가구는 4가구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C등급 주택들에 대한 집중적인 개선사업이 이뤄졌다. 영국의 핸디퍼슨 제도(고령자, 장애인 또는 취약계층이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 기반의 복지 프로그램)를 벤치마킹해서 ‘화장실 보수, 계단 난간 보수, 곰팡이 제거 및 도배, 누수 및 결로 방지, 콘센트 보수’ 등 집수리를 통해 주택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지원에 집중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성동구의 위험거처 개선사업 성과를 분석한 한양대 임팩트사이언스연구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 시행 이후 ‘C·D등급 가구의 하자 수준은 82%, 안전사고 위험은 78% 감소’했고, 10점 기준 8.62에 달하던 주거 스트레스는 3.30까지 줄어들었다. 주거 불안에 따른 우울감과 불안감 역시 60% 이상 줄어들었다. 행정의 효능감을 느낀 C·D등급 가구 거주자들은 이웃을 더 신뢰하게 되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도 향상됐다. 한양대 연구진은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에 “이 사업은 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고 적었다.

반지하 주택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최저주거기준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특히 ‘안전'을 보장하는 구체적 기준과 강제성 면에서 큰 격차가 있다. 한국의 안전 규정이 추상적인 반면, 외국은 공간 규정부터 공간 내 시설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영국은 최소 주거면적이 한국보다 무려 2.7배 크다. 주택이 협소하기로 유명한 일본조차 한국보다 주거기준이 1.8배 더 넓다. 반지하 주택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법적 최저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국제 기준으로 보면 안전하지 않은 환경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송정동 반지하 주택에 빗물막이(차수막)가 설치돼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10월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송정동 반지하 주택에 빗물막이(차수막)가 설치돼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존재하는 한 안전하게 관리한다’

성동구의 반지하 주택 주거개선 사업은 일방적인 ‘퇴출’ 정책에 홀로 맞선 ‘정책 실험’이다. ‘존재하는 한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성동구의 정책 전환은 단순하지만 현재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기도 하다. 주거개선 사업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집을 고치자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복지 정책의 본질은 사실 단순한 것일지 모른다. 정부는 늘 항목을 잡아, 사업별로 ‘얼마를 지원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복지의 본질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자를 중심에 둔 섬세한 설계에서 출발해야 하고, 체감을 통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정서적 반응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반응이 삶의 질과 생의 의지를 변화하게 한다.

방공호에서 시작해 용적률의 역설 속에서 방치돼온 반지하 주택은 누적된 서울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자 오늘의 도시 복지 좌표를 묻는 문제다. 완전한 멸실이 불가능한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무조건 퇴출하겠다는 정책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외면한다. 무조건적인 이주 요구는 그 자체로 거주 취약층에는 경제적 부담이자 심리적 불안 요소다. 여전히 그들은 기본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집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다.

중앙정부의 반지하 정책 의지 필요한 이유

일부에서는 반지하 주택 환경 개선 사업이 ‘근시안적’이고, 반지하 주택을 소유한 건물주들의 절반 가까이가 차수벽 설치조차 반대하는 상황(차수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서울시 반지하 주택 9440가구 중 미설치 사유 1위가 ‘집주인 미희망’(4738호)에서 보편화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나설 필요가 있다. 성동구는 주거 여건이 개선된 반지하 주택의 경우 집수리 지원 후 5년간 임대료 동결을 결합해 시행한다. 간접적이지만 월세 지원 효과가 발생하고, 지하 거주자가 이주할 사회·경제적 시간을 버는 측면도 있다. 반지하 주택을 어떻게 할 것이냐보다 중요한 건 누구도 위험한 주택에 거주해서는 안 된다는 더 넓고 굳건한 사회적 합의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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