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30일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윤리센터에서 열린 ‘체육계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식'. 전문가들은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 5년이 되도록 스포츠인이나 사회로부터 전문성과 신뢰성 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만약 제가 겪은 일을 신고한다면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면 신고할 수 있을 것 같아요.”(현직 선수)
“지금 그런 일(지도자에 의한 성폭력)이 있다고 해도 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한 팀에 많아야 30명이에요. 서로 다 알고, 어떤 신고가 있다면 ‘저 선수가 이야기했구나’ 짐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같고…, 내가 신고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이 없어요.”(현직 선수)
“사건 신고가 돼도 징계가 안 나오고 그냥 그만두는 거로 끝나는 걸 많이 봤어요. 협회나 단체가 가해자를 보호해주는 거로 느껴져요. 그 일이 불거지면 다들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생각하고 꺼리니까 처벌 없이, 징계 없이 끝나는 거죠.”(여자축구 지도자)
“여자축구계에 있으면서 뭘 보고 듣고 겪어도 신고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만 피해를 입는데 어떻게 신고해요. 해결에 대한 믿음이 없어요.”(여자축구 지도자)
2025년 10월, 한겨레21이 만난 전현직 여자축구 선수와 지도자들은 성폭력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했을 때 신고해서 해결될지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스포츠계에도 미투가 있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코치로부터 미성년자 시절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29차례 강제추행 및 강간, 폭행을 상습적으로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조재범 코치는 이후 징역 13년형이 확정됐다.)
심석희 선수의 미투 이후 체육계 성폭력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꽤나 전방위적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스포츠특별인권조사단(이하 특조단)이 설치됐고 스포츠계 전체에 대한 전수 실태조사가 인권위 특조단 직권으로 실시됐다. 5274개 초중고등학교 소속 운동부 학생 6만3211명, 전국 102개 대학팀 소속 선수 7031명, 56개 종목 실업선수 406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이뤄졌다. 이 실태조사에서 학생선수 2212명(3.8%, 응답자 5만7557명 대비), 대학팀 소속 선수 473명(9.6%, 응답자 4294명 대비), 실업팀 선수 143명(11.4%, 응답자 1251명 대비)이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초등학생 선수 438명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해, 초등학생 시기부터 성폭력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권위는 2020년 7월 대통령,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장애인체육회 회장, 교육부 장관 등에게 △독립적인 조사 권한과 전문성을 갖춘 국가기관을 활용해 체육계 성폭력 피해에 대한 철저한 피해자 보호 및 공정한 조사를 보장할 것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 직장에서 고용하는 운동경기 지도자 및 선수 자격 기준 등을 정하고 폭력·성폭력 등 인권침해 징계 전력 및 선수 보호 의무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할 것 △민원 취하 또는 합의로 인한 사건 종결, 수사 또는 재판으로 조사가 중지된 경우에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의무화할 것 등 피해자 관점을 반영한 정책을 권고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본부장은 “당시 대책이 어느 때보다 강력했기에 스포츠계 성폭력이 뿌리 뽑힐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다만 2007년에도 우리은행 여자 프로농구팀 감독의 선수 성추행 사건 이후 전방위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스포츠계 성폭력 예방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및 인권 가이드라인 배포, 스포츠인권센터 설치 등 다각적인 대책이 제시되고 실행됐지만, 12년 뒤 여전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에 근거한 우려 역시 컸다”고 말했다.
2019년으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체육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겨레21이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여자축구 관계자 8명에게 ‘지금 성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다면 이를 신고할 것인지, 어디에 신고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부모님께 말하면 부모님이 신고하실 것 같다”고 말한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신고하지 않겠다”거나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면 신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성은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계 인권침해·성폭력·비리 등을 일원화해 신고·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스포츠윤리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실태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2021년 스포츠윤리센터 실태조사에서 ‘인권침해를 경험·목격했다’고 답변한 선수 가운데 초등학생 선수 50.6%, 중고등학생 선수 48.8%, 프로·실업팀 선수 52%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선수는 ‘대응 방법을 몰라서’(38.1%), 중고등학생 및 프로·실업 선수는 ‘보복 피해에 대한 두려움’(각각 29.8%, 39.6%)이 신고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2024년에는 나아졌을까. 2024년 이뤄진 스포츠윤리센터 실태조사에서 ‘인권침해 피해를 직접 경험 또는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47.5%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이라 답했고, 17.7%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없던 일처럼 넘어감”이라고 답했다. 비율로 따지면 2021년보다 더 높아진 65.2%의 스포츠계 인권침해 피해/목격 경험자가 직접 대응을 회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계 성폭력을 비롯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왜 여전히 피해를 경험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걸까. 2019~2021년 인권위 특조단장을 맡아 특조단을 이끌었던 김현수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은 “스포츠계 인권침해·비리 사건을 신고받고 조사하도록 설립된 스포츠윤리센터가 애초 취지와 다르게 독립성·전문성·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스포츠윤리센터의 문제를 짚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독립된 조사기관’으로서 독립성이 중요했지만, 설치되는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출범하면서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체육계 문화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 권고를 산하기관이 부처에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9년 2월25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출범식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왼쪽 다섯째)과 자문위원, 조사위 관계자들이 현판을 제막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신고가 접수돼 조사를 마친 뒤 ‘징계 요청’을 결정하더라도 징계 권한이 없어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신고인 소속 체육회 등으로 ‘징계 요청’이 들어가면 그 과정에서 징계 수위가 낮춰지는 경우가 많은 점도 문제다.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사무총장은 “사안을 조사하고도 자체적인 징계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각 피해 선수 소속기관으로 징계 요청이 올라가면, 그 과정에서 다시 신고 사실이 유출되고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겪음에 따라 신고인과 피해자를 포함한 체육계 종사자들에게 ‘신고하면 제대로 처리된다’는 믿음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며 “스포츠윤리센터로 누가 신고하겠냐”고 되물었다.
한겨레21이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스포츠윤리센터 최근 5년간(2020년 9월∼2025년 8월) 인권침해·비리 신고사건 접수 현황을 보면 전체 접수사건 3279건 가운데 조사가 완료된 2772건 중 권고, 자격 취소, 기관 경고 등 조치가 완료된 건은 107건으로 3.8%에 불과하다. 징계 요청 건은 593건으로 21%에 달하지만, 실제로 이 가운데 징계가 이뤄진 건은 극히 드물다.
2021∼2025년 스포츠윤리센터 징계요구 이행현황을 살펴보면 556건 가운데 253건에 대해서 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불문경고에 그쳤다. 자격정지 이상의 징계가 이뤄진 건은 208건이었다. 조사 완료 2772건 가운데 결국 윤리센터가 요구한 대로 징계가 이뤄진 건은 7.5%에 불과한 셈이다. 40%에 해당하는 1109건은 각하, 기각, 조사 중지됐다. 신고 취하 건도 932건에 달해 취하율이 28%다.
처리기일 또한 매우 길어 전문성 등도 의심된다.조계원 의원은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 인력은 부족하고 평균 조사 기간은 길어 피해자들이 신고하고도 피해를 겪는 일이 많다”며 “최근 법안 개정으로 재심사를 요구하는 이의신청 절차가 생기고, 피신고 기관에 재정 지원을 제한할 수 있는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가 생긴 만큼 스포츠윤리센터는 폭력 무관용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체육계의 폐쇄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9년 인권위 특조단이 전수조사를 할 때 더블유케이(WK)리그 소속 여자축구 실업팀은 모두 제외됐다. 정부 조사이다보니 17개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실업팀 선수만 조사 대상이 됐다. 기업이 운영하는 직장운동부 소속 선수는 제외된 것이다. WK리그에도 서울시청·한국수력원자력·국민체육진흥공단 등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소속 실업팀이 있었지만 조사의 중복·완결성 등을 위해 결국 실업팀 여자축구는 대한축구협회가 별도로 한국상담학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별도의 실태조사를 했다.
문제는 그 뒤다. 대한축구협회는 실태조사 결과를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표할 경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식별되거나 낙인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해당 결과를 외부에 공표하지 않고 내부 참고용으로만 활용한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의 비공개 관행은 매우 퇴행적이다. 2021년 미국여자축구프로리그(NWSL)의 노스캐롤라이나 커리지팀의 폴 라일리 감독이 지속적으로 선수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보도로 드러났을 때, 미국축구연맹(USSF)의 대응은 달랐다. 미국축구연맹은 외부에 조사를 맡겼다. 조사를 의뢰받은 샐리 예이츠 전 법무부 차관은 1년 동안 200건의 인터뷰를 하는 등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 뒤 조사 보고서를 세밀하게 공개했다. 보고서는 추가 성폭력 사건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왜 이런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반복되는지 구조적 이유도 분석했다. 조사 결과 당시 미국여자프로축구리그엔 성폭력 사건을 신고했을 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연했고, 보호장치도 부족해 신고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구단도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성폭력 가해 지도자들은 쉽게 다른 팀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신고센터 접수·처리 현황’ 비공개는 오히려 조직의 투명성을 낮추고 폐쇄성을 강화해 신고를 더 위축시키고 문제 해결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말한다. 김동식 본부장은 “어떤 유형의 신고가 접수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그것이 모델링 효과를 낳아 신고도 장려되는데, 모든 것이 은폐되고 감춰지면 누구도 신고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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