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튿날인 2025년 7월13일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에서 방문객들이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7월 세계의 눈이 울산을 향했습니다. 선사시대 한반도의 삶을 담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덕입니다.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입니다. 산업도시 울산이 문화유산으로 관심을 받는 건 상당히 오랜만입니다. 등재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부터 세계가 인정한 암각화를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됐을까요?

‘반구천의 암각화’ 가운데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사연댐 전경. 울산시 제공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아우르는 반구천 3㎞ 구간을 통틀어 말합니다. 1971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약 5m, 너비 약 8m의 ‘ㄱ’자 모양 절벽 바위에 고래와 고래잡이 모습, 거북이, 호랑이 등 300여 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작살 맞은 고래와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등을 섬세하게 표현해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보다 1년 앞선 1970년에 발견됐습니다. 높이 약 2.7m, 너비 약 9.8m 바위에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에 이르는 동물 그림과 기하학적 문양, 글 등 620여 점이 새겨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있습니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들머리에 있는 울산암각화박물관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지고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특별기획전을 2026년 2월28일까지 선보입니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 2026년 1월25일까지 반구천의 암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획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도 만듭니다. ‘반구대 사피엔스’라는 이름의 드라마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품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합니다. 지역 영화제작사인 씨네울산이 맡았습니다. 배우 김홍표·황유주·김양우·문영동, 대곡리 주민 등 20명이 출연합니다. 25분짜리 4부작으로 계획된 드라마는 2025년 9월10일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2026년에 국내 주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통해 공개한답니다.
암각화를 찾는 관광객도 늘었습니다. 두 암각화에는 방문객 수를 세는 장치가 마땅치 않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와 가까운 울산암각화박물관 방문객 수로 전체 관광객 수를 짐작할 뿐입니다. 박물관 쪽이 2025년 7월12일부터 9월15일까지 집계한 방문객 수는 2만3807명입니다. 2025년 전체 방문객(6만4685명)의 36.8%가 최근 두 달 사이 집중된 겁니다. 2024년 같은 기간(1만2456명)에 견줘도 갑절 수준으로 늘어났습니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이곳은 울타리를 넘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암각화를 관찰할 수 있다. 주성미 기자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는 방문하기가 여전히 불편합니다. 시내버스 노선은 한 개뿐이고 그마저도 하루 세 번밖에 다니지 않습니다.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음수 시설과 그늘막도 없습니다.
암각화를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해가 잘 드는 시간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전망대에서 반구천(대곡천)을 사이에 두고 봐야 합니다. 맨눈으로는 관람하기 어려워 장비를 이용해야 합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세 개, 망원경은 두 개뿐이라 눈치껏 차지하거나 포기하고 고성능 휴대전화 카메라를 꺼내들어야 합니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가까이서 볼 수 있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암각화로 가는 길이 사라집니다. 반구천을 건너는 다리가 불어난 물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침수는 길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녹조가 짙게 퍼져 악취를 풍기는 물은 반구대 암각화를 삼키고 뱉어내기를 반복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인근 사연댐 물 높이가 53m를 넘으면 잠기기 시작합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반구대 암각화는 해마다 평균 151일 동안 물에 잠겼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4년 8월 국가유산청과 손잡고 사연댐 물 높이를 48m 이하로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집중호우나 태풍 때마다 반구대 암각화는 위기입니다. 한번 차오른 사연댐 물을 빼내려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이 걸립니다. 수위 조절용 수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2025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유산이 된 지 일주일 만인 7월19일 새벽 5시께 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8월24일 오후 4시께 암각화가 물 위로 온전히 드러나기까지는 꼬박 36일이 걸렸습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중심 바위. 울산시 제공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연댐 물 높이를 52m 아래로 유지하는 수문을 설치한다고 합니다. 수문을 설치하면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암각화가 물에 잠기더라도 하루 안에 물을 모두 뺄 수 있답니다. 8월26일 반구대 암각화를 찾은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수문 설치 공사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또 물입니다. 사연댐은 회야·대곡댐과 함께 울산시민의 생활용수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사연댐에 수문이 설치되면 하루 약 4만9천t의 생활용수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울산시민의 하루 평균 사용량(37만t)의 13.5% 수준입니다. 울산시는 지금도 부족한 물을 낙동강에서 끌어 씁니다. 최근 5년 동안 그 비중은 약 30%를 차지합니다. 사연댐 수문 설치 뒤에는 낙동강 물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비용 부담도 늘어납니다.
울산시는 낙동강 상류의 대구·경북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환경부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의결한 ‘운문댐 물 공급’ 약속 때문입니다. 대구시 취수원 문제만 해결되면 현재 대구 시민의 물 26.1%(하루 평균 79만7천t 중 20만8천t)를 책임지는 운문댐 물을 나눠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울산시는 하루 7만t의 운문댐 물을 기대하고 있지만, “흘려보내는 만큼만 공급받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선을 그은 김 장관의 말로 짐작건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울산=주성미 한겨레 기자 smoody@hani.co.kr

울산암각화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 마련된 ‘세계유산: 우리가 사랑한 반구천의 암각화’ 특별기획전 들머리의 ‘새끼 업은 고래’ 조형물.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유시민 “통화·메시지 도청된다, 조선일보에 다 들어간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5/53_17649329847862_20251205502464.jpg)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민주 ‘통일교 돈 수수 의혹’에 국힘 “특검, 선택적 수사…야당유죄 여당무죄”

박나래, 상해 등 혐의로 입건돼…매니저에 갑질 의혹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조진웅, 소년범 의혹 일부 인정…“성폭행은 무관”

전국 법원장들 “12·3 계엄은 위헌…신속한 재판 위해 모든 지원”

김상욱 “장동혁, 계엄 날 본회의장서 ‘미안하다, 면목 없다’ 해”
![[단독] 경제지 기자에 1억 주고 “잘 좀 써줘”…‘김건희 집사 게이트’ 조영탁 구속 [단독] 경제지 기자에 1억 주고 “잘 좀 써줘”…‘김건희 집사 게이트’ 조영탁 구속](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6/53_17649845156244_20251206500211.jpg)
[단독] 경제지 기자에 1억 주고 “잘 좀 써줘”…‘김건희 집사 게이트’ 조영탁 구속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