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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추모 공원인데 유족 뜻 반대로 하는 영동군

13년 운영한 평화재단 밀어내고 시설 직영화 강행하다 예산까지 삭감
등록 2026-02-12 16:52 수정 2026-02-19 18:25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과 위령탑. 한겨레 오윤주 기자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노근리 평화공원과 위령탑. 한겨레 오윤주 기자


노근리평화공원이 교육관 운영을 잠정 중단하는 등 파행 위기다. 사단법인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이하 평화재단)이 개장 뒤 줄곧 공원을 위탁관리했는데 충북 영동군이 직접운영(직영)에 나서자, 노근리사건 희생자 유족회와 평화재단 등이 반발한 것이다. 평화공원을 지원해온 행정안전부는 거듭된 민간위탁 운영 권고에도 영동군이 직영에 나서자 공원 시설의 운영·관리 예산을 줄였다.

재단 밀어내고 지자체가 관리 나서

 

영동군은 2026년 2월2일 평화재단에 보낸 공문에서 ‘2월13일까지 사무실을 비우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평화재단 쪽은 2월4일 “엄동설한에 막무가내로 사무실을 비우라고 해서 막막하다. 영동군의 일방적 직영 전환으로 직원 상당수가 실직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 민원을 신청하거나 군의 행정대집행을 막는 법적 대응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회도 “평화재단과 유족회는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공원 운영을 본궤도에 올려놨다. 군의 강제 직영 추진에 관해 감사 의뢰, 민형사상 책임 제기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동군은 평화공원에 과거사지원팀장과 직원 등 4명을 상주시키며 평화공원 접수에 나섰다. 2025년 1월6일부터 평화공원 교육관(2046㎡·식당, 숙박시설, 대회의실 등)은 무기한 휴관하고 있다. 평화공원은 이후 위령탑 등 개방된 공원과 평화기념관, 위패봉안관 등만 운영한다.

노근리 평화공원 옆 경부선 철로 쌍굴다리 노근리 사건 유적지. 한겨레 오윤주 기자

노근리 평화공원 옆 경부선 철로 쌍굴다리 노근리 사건 유적지. 한겨레 오윤주 기자


 

노근리 평화공원 위패봉안관 조감도. 영동군 제공

노근리 평화공원 위패봉안관 조감도. 영동군 제공


노근리는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5~29일 미군 폭격 등으로 민간인 226명(정부 심사 확정)이 희생된 곳으로, 평화공원은 이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평화의 전당이다. 앞서 정부는 2011년 191억원을 들여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옛 노송초등학교 터와 주변 13만2240㎡에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평화공원에는 평화기념관·위령탑·생태공원과 함께 교육관을 들였다. 2025년 6월엔 국비 15억4600만원과 영동 군비 등 16억3200만원을 들여 평화공원 위령탑 뒤에 위패봉안관(399.27㎡)을 추가 설치했다.

기념사업만 위탁하고 시설 관리는 직영?

평화공원은 지금까지 평화재단이 위탁운영했다. 평화재단은 2012년 4월1일부터 2014년 1월31일까지 1차 공원 관리·운영 위탁자로 선정된 뒤 2~3년 단위로 ‘기간 갱신 재계약’과 ‘재위탁’ 형태를 번갈아가며 13년 동안 공원을 위탁운영했다. 관례대로라면 2026년 1월1일부터 2028년 12월31일까지 ‘기간 연장 재계약’을 해야 하지만 군은 직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동군의 평화공원 직영은 영동군의회의 ‘민간위탁 제동’에서 출발했다. 영동군의회는 2025년 10월 제337회 임시회에서 군이 제출한 ‘노근리평화공원 관리운영 민간위탁 동의안’을 부결했다. 영동군 과거사지원팀은 “위탁운영을 하려면 군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의회가 부결한 뒤 시설은 직영, 사업은 위탁 형태로 분리 운영할 것을 권고했다”며 “군의 민간위탁 지침에 공유재산이 늘어나면 신규 민간위탁 사무를 추진하게 돼 있는데, 다목적 창고와 위패봉안관이 추가돼 새로 위탁 공고·선정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평화재단 쪽은 군이 민간위탁 관리 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억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위패봉안관과 다목적 창고 등은 위탁 사무 내용이 전면적으로 변경된 경우가 아니라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고, 군이 새롭게 위탁하려는 트라우마 치유 사업도 본질 변화 없이 동일성을 지닌다”며 “기존 위탁 사무 내용이 전면적으로 변경된 것이 아니어서 기간 연장 재계약을 이어가는 게 맞다”고 밝혔다.

행안부도 2025년 12월31일과 2026년 1월8일, 21일, 26일, 2월2일 영동군에 다섯 차례나 공문을 보냈다. 행안부는 공문에서 “노근리평화공원은 노근리 사건 희생자·유족을 위해 조성된 추모 시설로 노근리평화재단이 관리해왔는데 특별한 하자가 없다”며 “유족회도 노근리평화재단이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관련 법령, 재단 설립 취지, 민간위탁 제도의 정부 정책 기조와 현 추세, 공원 관리 효율성 등을 검토한 결과 공원 전체를 민간위탁하는 게 타당하다. 영동군의 직영 추진을 중지하라”고 민간위탁을 권고했다.

2017년 11월2일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자 등이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을 찾았다. 한겨레 오윤주 기자

2017년 11월2일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목회자 등이 노근리 쌍굴다리 현장을 찾았다. 한겨레 오윤주 기자


 

2017년 11월2일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왼쪽 첫째) 등이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오른쪽 첫째)에게서 노근리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오윤주 기자

2017년 11월2일 허버트 넬슨 미국 장로교단 사무총장(왼쪽 첫째) 등이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오른쪽 첫째)에게서 노근리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오윤주 기자


그럼에도 영동군은 시설 운영·관리는 ‘직영’, 기념사업은 ‘민간위탁’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영동군의회도 영동군을 거든다. 영동군의회는 2026년 1월15일 입장문을 내어 “공원 운영 과정에서 역할 구분, 업무 처리 방식, 예산 집행 등에 문제점이 많다고 판단해 민간위탁 동의안을 부결했다”며 “행안부가 지방의회의 의결권을 부정하고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었다. 행안부는 군의 자율 직영 추진에 관한 부당 간섭을 멈추라”라고 촉구했다. 이에 관해 양해찬 유족회장은 “나도 두 차례 영동군의원을 했는데, 이런 막무가내 의회와 군 행정은 처음이다. 군과 의회는 유족 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라고 촉구했다.

유족회장도 “막무가내 행정 멈춰”

영동군이 평화공원 시설 운영·관리 직영의 뜻을 고수하자 행안부는 2026년 1월 노근리평화공원 관련 국비 예산교부 때 7억7500만원만 지원하기로 했다. 영동군 과거사지원팀은 “애초 예상한 국비 12억700만원 가운데 평화재단 운영, 노근리 사건 위령제, 트라우마 치유 사업 등 보조사업 예산만 내려왔다”며 “공원 시설 관리 직영에 따른 관련 예산 4억3200만원은 빠졌다. 행안부와 추가 협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충북도도 행안부와 영동군의 줄다리기가 난감하다. 조미숙 충북도 도민소통과장은 “애초 기대했던 예산이 보류돼 안타깝다. 영동군과 행안부의 이견을 조율하고 중재해 원만한 해결 방안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대 평화재단 총무부장은 “평화공원 민간위탁은 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정부도 권고하고 있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평화공원을 궤도에 올려놓은 재단의 운영권을 강탈한 영동군의 행위는 위법·부당하다”며 “공원의 국가 소유와 민간위탁 지정을 위해 2월20일까지 영동군에서 항의 집회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영동=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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