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준 부산시장(왼쪽)과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2026년 1월28일 부산신항 내 동원글로벌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동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행정통합이 여러 지역에서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행정통합을 추진한 경남·부산만 “주민투표로 결정하겠다”며 속도를 늦추고 있다. 주민투표 주장의 중심에는 2010년 경남 마산·창원·진해 통합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의 주민투표 요구를 거부하고 속전속결로 통합을 밀어붙였던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들을 향해 “행정통합 주민투표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냐?”라는 비아냥 섞인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시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의 흐름을 바꾸고, 대한민국 경제·산업 수도로 도약하는 완전한 지방정부가 되려면 경남·부산 행정통합이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이에 따라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은 2026년 1월28일 부산신항 내 동원글로벌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행정통합에 대해 주민투표를 하고, 통과하면 즉시 국회와 협력해서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이를 근거로 2028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 통합 자치단체장 선거도 열어서 부산·경남을 행정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박완수 도지사와 박형준 시장이 밝힌 방안에 따르면,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는 경남·부산이 따로 시도지사를 선출하되, 이들의 임기는 2026년 7월1일부터 2028년 4월 통합 자치단체장 선거 때까지 1년9개월로 한정한다. 또 2028년 4월 취임하는 초대 통합 자치단체장 임기는 2030년 6월30일까지 2년3개월로 한정한다. 현직 시도지사가 아직 선출되지 않은 다음 시도지사의 임기 단축까지 합의한 셈이다. 박완수 도지사는 “박형준 시장과 저는 (임기 조정에) 합의했다. 앞으로 지방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부분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것이고, 후보자들이 동의하도록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후보들이 여기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남·부산 행정통합은 2019년부터 추진됐다. 김경수(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당시 경남도지사는 특별연합이라는 특별지방자치단체를 거쳐서, 부산·울산·경남을 행정통합하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2022년 7월 취임한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실체와 실익이 없는 특별연합의 과정을 생략하고, 부산·울산·경남 행정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울산시가 행정통합에 반대하면서, 부산·경남만 행정통합을 추진했다. 그마저도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의견이 높게 나오자, 2023년 7월12일 “지속적인 공론화 등을 통해 시·도민들의 인식과 여건을 성숙시켜나가겠다”고 발표하며 행정통합 추진을 보류했다.

최학범 의장 등 국민의힘 소속 경남도의원들이 2026년 1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주민투표를 거쳐서 부산·경남을 행정통합하자고 제안했다.
1년 뒤 박완수 도지사와 박형준 시장은 경남·부산 행정통합을 재추진하기로 합의하고, 2024년 11월8일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론화위원회는 2025년 말 경남·부산 주민 4047명에게 여론조사를 해서, 경남·부산 행정통합 찬성이 53.6%로 반대 29.0%보다 24.6%포인트나 높게 나오는 결과를 얻었다. 행정통합이 경남·부산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응답도 65.6%였다.
그러나 경남·부산 행정통합은 속도가 붙지 않았다. 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는 2026년 1월13일 “통합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통합 이후 갈등과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최종 결정은 주민투표를 통해 내려져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1월6일 박완수 도지사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이 정치적 논리로 행정통합을 하면 반드시 시행착오와 후유증을 겪는다”며 주민투표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최학범 의장 등 국민의힘 소속 경남도의원들도 1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급한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주민 동의를 바탕으로 완성돼야 한다”며 주민투표를 통한 행정통합을 주장했다. 경남도는 2월3일 “경남도민 1203명 대상 1월16~17일 여론조사 결과 75.7%가 주민투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왔다”는 결과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주장은 2010년 7월1일 마산·창원·진해 통합 때와는 정반대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이던 당시 행정통합은 박형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현 부산시장)과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앞장섰다. 2009년 12월24일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장악했던 경남도의회는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마산·창원·진해 통합안을 논의했다. 경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는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통합에 대한 경남도의회 찬성 의견안을 폐기했으나, 경남도의회 의장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의장직을 걸고 책임지겠다”며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표결에 부쳤다. 정회를 거듭하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은 끝에 기명 전자투표 방식으로 진행된 표결에서 전체의원 52명 가운데 찬성 36명, 반대 13명, 기권 3명으로 찬성 의결했다. 앞서 마산·창원·진해의 3개 시의회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마창진 통합 여부 주민투표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민을 철저히 배제한 통합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주민투표를 요구했으나, 정부와 한나라당, 경남도와 경남도의회, 해당 3개 시와 시의회 모두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결국 마산·창원·진해를 통합한 창원시는 주민투표 없이 지방의회 의결만 거쳐 2010년 7월1일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뜻을 수렴하는 절차는 전혀 없었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 통합 당시 주민투표를 요구했던 ‘열린사회 희망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026년 2월2일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 마산·창원·진해 통합을 실패로 이끈 책임 당사자들이 그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절차의 문제’로 책임을 돌리며 경남·부산 통합을 정치적 계산과 선거 전략에 활용하는 행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부산·울산·경남이 행정통합을 미루면 다른 지역에 완전히 뒤처지게 된다”며 “시·도민 뜻을 확인하는 방법이 주민투표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글·사진 최상원 한겨레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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