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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516로’ 버릴 수 있을까…내란 이후 논의 재개

주소 사용자 20% 이상 신청해야 ‘변경 절차’ 시작
등록 2026-02-05 22:32 수정 2026-02-12 11:17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 5·16도로. 연합뉴스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 5·16도로. 연합뉴스


“1960년대 5·16도로가 개통된 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오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어서 다들 혁명이라고 했어요. 60년간 불러온 이름을 보존해야 합니다.”

“흑역사도 역사니까 5·16도로라는 말은 지금처럼 관행적으로 쓰되, 새 시대니까 ‘516로’라는 도로명 주소는 바꿨으면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기념비 있는 도로

2026년 1월30일 ‘516로 도로명 변경 도민 공감 토론회’가 열린 제주시 연동의 농어업회관. 마지막에 손을 든 두 시민의 의견은 엇갈렸다. 이날은 제주도가 도로명 ‘516로’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묻는 첫 번째 자리였다. 제주도는 2026년 6월까지 도민과 516로 주소 사용자를 대상으로 토론회와 주민설명회, 설문조사를 차례로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에서 516로를 두고 공론화가 다시 시작된 건 8년 만이다. 12·3 내란 이후 군사정권을 상징하는 도로명을 쓰지 말자는 주장이 제주도의회에서 나왔다. 여기에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5·16 용어 개념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응답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군사정권 전에도 도로는 있었다. 한라산을 가로질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횡단도로는 1932년 일제강점기 목재를 나르기 위한 임도로 개발됐다. 그러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강제로 노동력을 동원해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확장·포장 공사를 시작했다. 7년 만인 1969년 정식 개통된 도로는 5·16도로라고 불렸다. 아직도 이곳에는 ‘五一六道路’(오일육도로)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 기념비가 남아 있다.

관행적으로 불리던 5·16도로(공식 명칭은 지방도 제1131호선)라는 이름이 공식 행정 체계 안으로 들어온 때는 2009년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총 40.56㎞인 5·16도로 중 31.61㎞ 구간에 516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부여됐다. 현재 이 주소를 쓰고 있는 세대주·건물주 등은 1238명(제주시 551명, 서귀포시 687명)이다.

이미 16년 넘게 써온 도로명을 폐기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도로명주소를 바꾸려면, 일단 주소 사용자의 20% 이상이 신청해야 한다. 그 뒤 제주도 주소정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주소 사용자의 과반수가 90일 안에 서면으로 동의해야 한다. 이때 새로운 도로명도 제시해야 한다.

제주도, 주소 사용자 대상 설문조사 예정

‘비선 실세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2016년에도 516로가 논란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흔적이 남은 5·16도로 기념비에 빨간색 글씨로 ‘독재자’ ‘유신망령’이라는 낙서가 새겨지기도 했다. 덩달아 516로가 도마 위에 오르자 서귀포시는 2018년 관내 주소 사용자 700여 명을 대상으로 도로명 변경에 대해 의견을 묻는 우편물을 발송했다. 하지만 20여 명만 응답했고, 그중 대부분은 ‘도로명 유지’ 의견을 냈다.

양승철 제주도 토지정보팀장은 “제주도는 일단 516로 역사를 최대한 알리고 도민의 관심을 모으려 한다”며 “5~6월께 도민과 주소 사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예정인데, 결국 선택은 주소 사용자가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서보미 한겨레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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