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025년 5월29일 낮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유세에 나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준석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의 이념을 “개혁보수” 또는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런데 명목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국명을 사용하지만, 국제사회는 그 나라를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준석이 자신을 어떤 말로 규정하든, 중요한 것은 그의 말과 행위가 실제로 무슨 내용이며 어떤 사회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다. 쉽게 말해 어떤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는 그 사람의 자기규정이 아니라 그의 평소 발언, 행위, 어떤 정당에 투표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준석은 극우다. 그는 정치학자 카스 무데의 분류법상 ‘급진 우파’에 가까우며, 한편으로 유럽의 급진 우파와 상당히 다른 면도 있다. 이 글은 학계의 보편적 분류법과 한국의 특수한 맥락을 모두 고려해 이준석의 이름을 ‘엘리트주의 극우’로 규정한다. 그런데 엘리트주의 극우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역전 앞’ 같은 동어반복일 수 있다. 극우 사상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엘리트주의이기 때문이다. 무데는 이렇게 말한다. “극우는 차이와 위계질서를 찬양하며, 이러한 극우의 핵심적인 특징은 엘리트주의다.”1
물론 엘리트주의라고 해서 모두 극우는 아니다. ‘극좌 엘리트주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엘리트가 권력을 잡아서 소수자·약자를 돕고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겠다는 주장도 성립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좌우파의 차이에 대한 논의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파는 근본적으로 불평등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래서 소수자·약자의 문제에 무관심하다. 극우 엘리트주의자는 한발 나아가 소수자·약자를 지원하는 것이 쓸모없다고 여길 뿐 아니라 소수자·약자의 권리 주장을 강하게 억압하려 든다. 여기서 더욱 극단화되면 과거의 파시스트처럼 “최종 해결”(Endlösung), 즉 우생학적 배제와 절멸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이준석은 파시즘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기본권을 요구하며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을 향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고 비난하며 비장애인 시민의 갈등을 증폭하고, 이를 통해 장애인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반복한 바 있다. 이렇듯 소수자·약자의 권리 요구를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생활 능력 없는 국민의 보호 등을 규정한 헌법 제10조 및 제34조 5항 등 헌정 가치를 침해하거나 그렇게 선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극우에 부합한다.
소수자·약자 차별/배제/혐오 선동의 구체적 전략에 대해서는 다시 상세히 논의하기로 하고 이준석 이념의 근간이라 할 엘리트주의부터 살펴보자. 이준석의 말에서 엘리트주의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에 나온다는 다음 발언이 대표적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우리가 엘리트주의를 욕하기 전에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2

아인 랜드.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런 발언은 미국의 작가 아인 랜드를 연상시킨다. 랜드는 20세기 중반 활발히 활동했던 소설가로, ‘움츠린 아틀라스’(Atlas shrugged), ‘파운틴헤드’(The Fountainhead) 등의 소설로 잘 알려졌다. 왕성히 작품을 발표하던 1960~1970년대에 이미 그는 미국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인 2010~2020년대 미국에서 다시금 크게 조명됐다. 트럼프가 오래전부터 “나는 아인 랜드의 팬”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3
문학 전문가들 사이에서 랜드의 소설은 혹평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무시되며, 철학계나 사회과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트럼프나 ‘티파티’(Tea Party Movement) 등 극우 성향 집단들 사이에서 랜드는 ‘추앙’에 가까운 압도적 인기를 누린다. 비결은 랜드가 미국 극우파의 판타지를 완벽히 구현해냈다는 점에 있다.
대표작 ‘움츠린 아틀라스’의 줄거리는 독점 규제와 복지 확대에 분노한 “혁신적” 기업인들과 자유시장 원리와 이윤추구를 맹신하는 학자 등이 “거저 주어진 보상과 대가 없는 의무”에 항의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콜로라도산맥으로 들어가 자신들만의 국가 ‘아틀란티스’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움츠린 아틀라스’ 외에 랜드의 여러 작품에선 소수의 탁월한 엘리트와 사유재산에 대한 절대적 옹호, 복지정책과 공공지출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시장만능주의 등이 자극적으로 표현된다. 랜드의 책이 일각에서 ‘극우보수의 이념적 포르노’라고 불리는 이유다.
아인 랜드는 평범한 자들이 탁월한 엘리트의 성취를 ‘평등’이란 명목으로 나눠 갖는 것에 격한 분노를 쏟아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이준석의 발언은 바로 여기서 랜드의 사상과 공명한다. 이준석의 말 그대로 한번 “생각”해보자.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과연 누가 가져다줬을까? 숱한 역사적 문헌과 증언은 웅변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엘리트의 선물이기는커녕 친일 관료, 군부독재 정권, 윤석열 같은 엘리트에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 노동자·인민, 즉 평범한 사람들이 쟁취한 것이다.
종종 우파나 엘리트주의자들은 엘리트의 이른바 ‘혁신’, 더 건조하게 말해 엘리트의 생산성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그러면서 “극소수 뛰어난 사람의 재능과 노력으로 얻은 성취에 대해 좌파들은 헐뜯기 바쁘고 정부는 발목만 잡는다”고 불평한다. 특히 엘리트주의 극우는 거의 피해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품고 있다. 이를테면 “탁월한 소수(우리)에게 무임승차한 주제에 무슨 평등이냐”는 식이다. 그러나 과학자나 기업가의 ‘혁신’은 진공 상태에서 튀어나온 게 아니다. ‘혁신’은 개인이나 특정 기업의 노력만이 아니라 당사자가 미처 다 파악할 수조차 없는 거대하고 촘촘한 사회적 인프라, 예컨대 세금으로 만든 공교육·학술 체계, 고속도로 같은 물류 시스템, 국가의 직간접적 지원 등이 모두 작용한 결과다.
엘리트주의란 ‘우월’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더 많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이념이다. 그 이념은 엘리트의 생산성이 평범한 사람 대다수를 압도할 정도로 크다는 생각과 깊이 연관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윤리적으로 문제일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틀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증거가 존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는 20세기 상반기 생산성 성장에서 거의 90%는 ‘기술 발전’ 때문이며 다른 요소들, 예컨대 ‘자본가의 기여’ 같은 것은 그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것임을 수치화해 보여줬다.4
여기서 솔로가 말한 기술 발전은 탁월한 개인이나 소수의 기여라기보다 인류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공동 자산에 가깝다. 인지과학자면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개인 소유권에 대한 낡은 고정관념이 완전히 오류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우리가 아무리 관대하다 해도 우리 소득의 5분의 1 정도만이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나머지 5분의 4는 엄청난 생산력의 사회 시스템에 구성원이 참여해서 만든 사회 전체의 세습 자산이다. 이는 커다란 지적 자본이 축적된 것이며, 이러한 지식의 상당 부분과 후하게 주어진 불로소득은 모두 동료 시민들이 재능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이전된 것이다.”5
쉽게 말하면 엘리트 개개인의 생산성은 엘리트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트 지배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며, 지금껏 엘리트가 독식해온 자원과 권력도 다시 공정하게 분배돼야 마땅하다. 다만 어떤 분배가 진정 올바른지, 궁극적인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답은 공동체마다 다를 수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엇이 공정한 분배인지를 놓고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합의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는 점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다수가 사실상 엘리트-과두정치, 금권정치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 독식을 경계하고 막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덧붙여서, 엘리트주의 극우 이념은 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무정부적 자유지상주의와도 유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직의 경우 개인의 우열보다 개인의 자유(선택)가 핵심이기에 논의의 결이 다르다. 또한 노직은 말년에 자신의 사상을 반성하고 입장을 상당히 수정했다.
그런데 노직 같은 철학자는 물론이고, 어쩌면 아인 랜드 같은 ‘진성’ 엘리트주의 극우파들도 이준석을 자신과 동류로 묶는 걸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 도입한 제도, 예컨대 ‘정치인 자격 시험제’ 같은 사례를 보면, ‘엘리트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그냥 ‘한국형 시험에 의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준석 본인은 정작 시험도 안 보고 박근혜가 꽂아준 ‘낙하산 인사’였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이런 조잡한 이념에 어디까지 진지하게 대응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극우 이념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 사회 극우화가 그만큼 심각할 뿐 아니라 이 글이 일종의 내재적 접근 방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내재적 접근이란 연구 대상이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하는지를 우선 그들 입장에서 바라본 다음, 이를 재맥락화해 철저히 비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극우 이념을 가능한 한 그들 의도대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 다음회에 이준석류 차별/배제/혐오 정치의 전략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카스 무데, 권은하 옮김,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위즈덤하우스, 2021, 42쪽)
2)박다해, ‘이준석이 말하지 않는 것’(한겨레21 2021년 6월4일)
3)에드 킬고어, ‘Donald Trump’s Role Model is an Ayn Rand Character’(New York Magazine, 2016년 4월12일)
4)로버트 솔로, ‘Technical Change and the Aggregate Production Function’(Th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39(3), 1957)
5)허버트 사이먼, ‘Public Administration in Today's World of Organizations and Markets’(‘PS: Political Science and Politics’ 33(4), 2000년 12월, 756쪽)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오늘의 극우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들이 고름 터지듯 분출되는 현상이다. 이 연재는 내재적 관점에서 극우를 직시하는 연구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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