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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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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완전 망했다”던 그 교수, 보수로 기운 한국 남성을 말하다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위대한 수업’ 강연 눈길
“저출생 해법, 남성의 삶 개선도 중요”
등록 2024-12-06 19:16 수정 2024-12-10 16:55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3년 7월 방영된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서 한국의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0.78명) 수치를 듣더니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3년 7월 방영된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서 한국의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0.78명) 수치를 듣더니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우!”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현 인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2.1명(인구대체율)보다 한참 밑인 0.78명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국 교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3년 7월 방영된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서 보인 말과 행동은 큰 화제가 됐다. 저출생(저출산)이 세계적 추세더라도(2022년 기준 전세계 합계출산율은 2.3명), 전세계가 놀랄 수밖에 없는 한국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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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남성-여성 시각차, 저출생에 영향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더 떨어진 한국의 초저출생은 인구 소멸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노동, 교육, 복지, 부동산, 가족, 사회통념 등 여러 사회 영역에서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다. 가사·돌봄 노동은 여성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가족 내 여성의 지위, 고용·임금 차별을 비롯한 전방위적 성차별과 성폭력 피해 위험 속에서 과도한 경쟁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소득 불평등 심화, 어려운 내 집 마련, 내 인생이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려운 삶의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여성은 홀로 버티기도 힘들다. 그런 여성에게 비혼과 비출산은 자연스러운 선택 또는 적극적이고 필사적인 생존 전략이다. 인구 소멸 위기의 원인은 앞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에 있다.

이렇게만 본다면, 여성들의 여건을 개선하면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윌리엄스 교수는 “남성들의 여건 개선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한 그의 강연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왜 보수로 기울었나’가 주목받고 있다. 2024년 11월25일 방영된 교육방송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서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의 젊은 남성과 여성이 왜 서로 다른 시각을 갖게 됐고, 이것이 저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해보죠”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한다.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4년 11월25일 방영된 교육방송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서 한국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정치적 성향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4년 11월25일 방영된 교육방송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서 한국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정치적 성향 차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수업 시작과 동시에 곡선 그래프가 등장한다. 한국의 18~29살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이념 변화를 보여준다. 한국 젊은 여성은 갈수록 자유주의(개인의 자유, 개성, 잠재 가능성 실현을 중시) 성향을 띠는데, 한국 젊은 남성은 보수주의(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중시) 성향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에서도 젊은 남성이 보수화되며 젊은 여성과의 정치적 성향 차를 드러내지만, 한국이 유독 그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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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은 왜 보수로 기울었을까. 윌리엄스 교수는 유럽과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을 조장하는 요인을 먼저 언급한다. “극우 포퓰리즘을 이끄는 것은 특정한 유권자 집단입니다. 그들은 빈곤층이 아닌, 평범한 중산층 노동자들이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안정적인 중산층 생활을 누렸어요. 프랑스에서는 이때를 ‘영광의 30년’(1945~1975년)이라 불렀죠. 이 시기의 중산층 가정들은 집과 차, 세탁기를 소유했고 호숫가 별장에서 2주간의 휴가를 즐겼습니다. 이런 생활은 남편만 정규직으로 일하고 아내는 가끔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도 가능했죠. 이 영광의 30년 시기에는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노동계층의 남성도 부유층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이상이요.”

 열등감 빠진 가부장들, 극우로 줄달음

이처럼 이성부부 사이에서 남성 노동자가 아내, 자녀의 생계를 전담하고 여성인 아내가 양육자 역할을 전담하는 남성 생계부양자, 여성 전업주부 가족모델이 자리 잡으면서, 자신의 임금만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념이 남성 노동자 사이에서 ‘남성성’ 규범으로 굳어졌다. ‘남성성’이란 남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말이나 사고, 행동 등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호황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성장률이 하락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중산층을 지탱한 많은 일자리가 저임금 국가로 옮겨갔고, 그 빈자리를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은 서비스 직종이 채웠다. 실업자는 늘었고, 물가는 치솟았다. 남자 가장의 외벌이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중산층의 삶에 새로운 불안정성이 생겼고, 이 점이 미국과 유럽 유권자들을 극우에 투표하게 만든 겁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특히 그런 남성들은 극우로 기울기 쉽죠. 자신들의 미래와 명예, 존엄성을 빼앗겼다고 느끼니까요.” 윌리엄스 교수의 말이다.

한 쌍의 예비부부가 한복을 입고 2024년 11월 서울 지역의 한 고궁 안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쌍의 예비부부가 한복을 입고 2024년 11월 서울 지역의 한 고궁 안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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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을 생계부양자로 여기고 돈을 버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2023년 8월7일 전국 20~39살 미혼 청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10명 중 4명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유는 성별에 따라 달랐다. 여성은 ‘혼자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46.3%·이하 중복응답), ‘다른 사람에게 맞춰 살고 싶지 않아서’(34.9%), ‘가부장제 및 성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34.4%)으로 비혼을 선택했다. 남성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서’(42.6%),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40.8%) 비혼을 선택했다. 똑같이 비혼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둘의 성격은 완전 다르다. 여성의 비혼은 자기 선택적 결정이지만 남성의 비혼은 어쩔 수 없는 포기에 가깝다.

서구 남성은 이민자 탓, 한국 남성은 여성 탓

한국에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가혹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기업과 은행이 줄도산하며 수많은 사람이 정리해고됐다. 그 여파로 중산층도 가파르게 감소했다. 남성성의 핵심적 요소인 ‘가장’의 지위가 흔들렸다. 그러자 남자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다.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가 가졌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아내, 집, 차, 아이들과 함께 중산층 생활을 누리는 삶이요. 이에 분노한 미국과 유럽의 남성들은 이민자를 탓하지만, 한국의 젊은 남성은 젊은 여성을 탓합니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어 “사람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분노하곤 한다. 권력자들에게 분노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젊은 남성들은 부유층이나,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려 이익을 취하는 대기업 대신 젊은 여성들을 탓한다”고 밝혔다.

많은 남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 변화는 또 있다. 이들은 ‘결혼 조건’ 하면 지금도 재산, 경제력 같은 물질적 풍요를 떠올린다.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2019년 4월 국외 학술저널 ‘성 역할’에 실린 논문 ‘가정적인 남자 찾기? 이성애 관계에서 남성성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를 보자. 벨기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향후 출산을 원하는 이성애자 여대생 224명에게 ‘이상적인 남자 배우자’를 물었다. 이들은 주체적인 자질, 즉 경쟁적이고, 확신이 있고, 지적이고, 진취적인 자질을 가진 남자보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공감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자질을 가진 남자, 즉 교감할 줄 아는 남자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성공적인 경력 설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업무 지향적인 남자보다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중시하는 가족적인 남자를 선호했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첫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3박5일간의 스페인 마드리드 방문을 마치고 2022년 7월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둘째)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첫째)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3박5일간의 스페인 마드리드 방문을 마치고 2022년 7월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오른쪽 둘째)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씨는 책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여성들은 남편이 돈벌이가 시원찮아도, 가사나 육아에 적극적이고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얼마든지 자신이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한다”며 “문제는 사회적 자원과 경제력이 없을수록 열등감 때문에 시간 많은 남성이 더 가사 노동을 안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의 여성관, 사회관, 자아 인식이 여성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남성의 집단적 ‘문화 지체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종합하면 여성이 평등을 향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과 달리, 남성은 ‘전통’에 따라 모든 것이 유지되길 기대하며 더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윌리엄스 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서 전통은 ‘이성애자 남성이 더 큰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여성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보이는 사회’를 가리킨다. 다른 말로 하면 ‘가부장제’다.(책 ‘가부장제 깨부수기’)

많은 남자가 남성성이 헤게모니(주도권)를 쥔 사회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는 현상에 대해, 네덜란드 남성 해방운동 단체 이멘시페이터(‘해방자’라는 뜻)재단을 설립한 옌스 판트리흐트는 책 ‘남성 해방’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남성이 자기반성을 하기 힘든 까닭은 취약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취약하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거나 ‘해결책이 없다’는 뜻이고, (남자들은) 양쪽 다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남성성 규범은 남성에게 문제를 해결하라고, 적극적으로 일에 덤벼들라고,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자신에게 의구심을 품지 말라고 지시한다. 자기반성은 그와는 반대되는 것을 요구한다. 자기반성을 하려면 멈춰 서서 문제에 관해 생각하고, 열린 자세로 다른 것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남성성 이상을 추구하는 남성들은 폭력을 쓴다. 판트리흐트는 “그런 남성들은, 여성이 이제는 유급 노동을 하므로 남성이 술값을 내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끼며 (…) 여성을 어떻게 유혹해야 할지 몰라 필요하다면 폭력을 써서라도 뜻을 이루라고 가르치는 강의에 참석한다. 그들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아 질서를 복구할 강한 지도자를 원하며, 남자아이와 성인 남자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이어도 괜찮던’ 선사시대나 1950년대라는 어떤 이상화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모든 청년에게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윌리엄스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한국 젊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한국 젊은 남성도 양극화 심화, 소득 불안정, 삶의 불확실성 증대 등의 피해를 겪고 있기 때문에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청년에게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청년 남성이 노동시장에서 대우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성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양극화 문제 해결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이) 노동법을 개혁해 기업들이 다시 사람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3년 597만7천 명에서 2018년 661만4천 명, 2023년 812만2천 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물론 남성(2023년 기준 355만7천 명)보다 여성의 비정규직 노동자(456만5천 명) 수가 더 많다.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4년 11월25일 방영된 교육방송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 출연하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법학대학원 명예교수가 2024년 11월25일 방영된 교육방송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 출연하고 있다. 교육방송 화면 갈무리


윌리엄스 교수는 이어 “젊은 남성들에게 사회에서의 실패가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며 “가장이 돼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더 매력적인 미래상으로 현재의 상실감을 상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교수가 비록 강의에서 따로 말하진 못했지만, 정부가 지금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과 (이성) 부부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은 인구가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자 국력이었던 18세기 때부터 나타난 정책”이라며 “지금의 청년 세대는 과거와는 다른 자기 생애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국가가 여성과 (이성) 부부의 섹슈얼리티와 자녀 수를 통제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반감도 있는 만큼 정책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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