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4년 11월15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받자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까지도 민주당 내부에선 무죄가 선고되거나,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나와 피선거권이 박탈되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보려면 판결문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우선 검찰이 이 대표를 재판에 넘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자였던 이 대표가 △2021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개발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용도 변경에) 응했다” 말하고 △2021년 12월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을 아느냐는 질문에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말한 것 △2021년 12월 다른 방송 인터뷰에서 2015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장 중에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말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다.
이 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김문기 전 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 때문이었으나, 실제 재판에서 핵심 쟁점이 되고 이 대표에게 중형이 선고된 이유가 된 사건은 ‘백현동 발언’이었다. 재판부는 전체 판결문 133쪽 가운데 백현동 발언과 관련해 61쪽을 할애했다.
2021년 10월10일 이 대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됐지만, 당내 경선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성남시장 재직 시절 시행했던 대장동·백현동 개발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민간업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였다. 백현동 아파트는 높이 50m, 길이 300m의 거대한 옹벽 옆에 위태롭게 들어선 건물 사진이 ‘옹벽 아파트’라는 별명과 함께 공유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에선 사용승인이 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20일 경기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백현동 토지 용도 변경은) 국토부가 요청해서 한 일이다. 만약에 (용도 변경)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것을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 변경은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사안으로, ‘국토부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이 대표의 발언은 허위라고 보고 기소했다.
법원은 이러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의 용도 변경은 성남시의 자체 판단으로 성남시장인 피고인이 스스로 검토하여 변경한 것”이라며 이 대표의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서 한국식품연구원으로부터 토지관리계획변경 입안 제안을 1~3차에 걸쳐 보고받고 결정했기 때문에 이 대표가 이러한 정황을 모를 수 없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22명의 성남시·국토부 전현직 관계자들이 “국토부의 압박이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도 이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판결문에 직접 담기진 않았으나, 백현동 개발에 관여한 로비스트 등 관계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은 2014년 1월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매각 계약을 했다. 그러나 성남시가 부지 용도 변경을 거부하면서 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정 회장은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한국하우징기술 김인섭 대표를 로비스트로 영입했고, 2015년 1월 성남시는 부지 용도를 녹지에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김인섭 대표는 정 회장으로부터 77억원과 5억원 상당의 공사장 함바 식당 사업권을 받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과 2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63억57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에게 돈을 건넨 정 회장도 회삿돈 48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2023년 6월 구속기소됐다. 이 대표 자신도 2014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백현동 개발 사업 과정에서 김 대표의 청탁을 받고 민간업자에게 사업권을 줘 도시개발공사에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된 상태다. 부장판사 출신의 ㄱ변호사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일부 개발업자들이 이미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은 사실은 분명히 이 대표에게 불리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재판부는 이미 선고가 난 김씨의 재판 등 유사 사건 기록을 모두 꼼꼼하게 검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언론이 주목했던 ‘김문기 전 처장 몰랐다’ 발언에 대해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2021년 12월22일 이 대표는 에스비에스(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하루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전 처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시장 재직 때는 (김 전 처장을) 몰랐고요. 하위 직원이었으니까요. 그때 당시에는 팀장이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언론 보도에서 이 대표가 2015년 1월 김 전 처장과 오스트레일리아 출장에 동행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대선을 앞두고 제기되는 대장동 의혹이 자신에게 번져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김 전 처장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대표가 “몰랐다”고 발언한 것만으로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에게 표창장을 주고, 국외출장을 함께 가는 등 ‘교류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모를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다고 한 발언만으로 표창장을 준 사실이나 국외출장을 함께 간 사실을 부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 대표의 ‘골프 발언’은 유죄로 인정됐다. 이 대표는 2021년 12월29일 채널에이(A)에 출연해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의 일부를 떼내가지고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해당 발언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조작했다”, 즉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일반 유권자들이 해석할 수 있고, 이는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발언이 “(성남도시개발공사 직원 가운데) 공식 일정에서 벗어나 이 대표와 함께 골프를 친 사람은 김 전 처장과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뿐이었는데, 김 전 처장이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이 대표의 대응에 관여했기 때문에 (2021년 12월) 이 대표가 골프 발언을 하기까지 기억을 환기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보인다”고 판시했다. 고의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본 것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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