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확전… 트럼프, 또 제 발등 찍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7월22일 델라웨어주 도버공군기지에서 열린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행사에 참석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REUTERS
끝났다던 ‘좀비전쟁’이 다시 불을 뿜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에 “지옥의 문을 열라”고 명했다. 2026년 7월22일 이란을 겨냥한 미군의 맹폭이 12일째 이어졌다. 휴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는 부질없다. 전쟁은,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미국과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80번째 생일을 맞은 2026년 6월14일 전쟁을 끝내기 위한 14개항의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에 합의했다. 이란 핵 문제를 포함한 구체적인 종전 조건은 후속 협상에 맡겨졌다.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양해각서 내용이 이란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미국 내 비판이 터져나왔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조바심을 냈다. 이란 쪽은 전쟁 첫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미뤄둔 국장을 7월3~9일 성대하게 치렀다. 이란 내부에서 ‘대미 보복’ 여론이 급등했다.
이번에도 호르무즈해협이 문제였다. 양해각서에 따라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후속 협상이 진행되는 60일 동안 징수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호르무즈해협 통제 방안을 놓고 오만 쪽과 협상을 이어갔다. 협상은 쉽지 않았고, 이란 쪽은 자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해협 통과를 시도한 선박을 본보기 삼아 공격했다. 미국 쪽은 민간선박 공격을 빌미로 이란을 타격하고, 양해각서에 따라 풀었던 대이란 해상봉쇄를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아닌 미국이 해협 통행료를 직접 거두겠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란 쪽은 중동 지역 미국 동맹국을 겨냥한 보복 공격으로 응수했다.
“지금부터 미사일이든 로켓이든 드론(무인기)이든 또 다른 어떤 무기로든 이란이슬람공화국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할 때마다 미국은 이란 수도 테헤란 안팎에서 교량이나 발전소 한 곳씩을 폭격 파괴할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22일 오전 전사한 미군의 유해 송환식에 참석하기 위해 델라웨어주 도버공군기지로 향하는 길에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런 글을 올렸다. 7월17일 이란군이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요르단 무와파크살티 공군기지를 보복 타격했다. 현지에 주둔 중이던 미군 이저벨라 곤잘러스 일병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상을 입은 타일러 피핸 중위와 마이클 스윈턴 부사관도 응급치료 도중 숨을 거뒀다. 실종 상태로 알려졌던 에인절 램퍼새드 부사관도 결국 숨진 채로 발견됐다. 부상자도 다수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전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다.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은 7월22일 국방부의 발표 내용을 따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이후 (요르단에서 전사한 4명을 포함해) 미군 18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2026년 7월18일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루단과 반다르아바스를 연결하는 교량이 미군의 공습으로 끊겨 있다. AFP 연합뉴스
“7월22일 밤 10시30분께 이란을 겨냥한 12일째 연속 공격을 마무리했다. 이란의 해군능력과 미사일·드론 보관시설, 해안 감시시설, 방공자산을 타격했고 민간선박과 상선 공격 능력을 약화시켰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7월23일 소셜미디어 엑스(X) 공식 계정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어 “7월 들어 미군은 이란 지상군 시설 10여 곳을 타격했고, 해상에선 대이란 봉쇄를 재개했다. 중부사령부는 선박의 이란 항구 출·입항을 차단하기 위해 선박 9척에 우회 명령을 내렸고, 1척은 강제로 회항시켰다. 미군 5만 명 이상이 중동 일대에서 높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집중적이고 치명적인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전쟁 중’이란 점을 새삼 강조한 게다.
병력 5만 명 이상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7월21일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란 전쟁 경비로 현재까지 약 375억달러(약 55조1600억원)가 투입됐다”며 “미군의 전투 준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 670억달러(약 99조3천억원) 규모의 추가 국방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추가 예산은 미사일 등 소모된 탄약 재고를 확보하고, 군사장비 교체 등에 주로 사용될 것”이라며 “추가 예산 지원이 없으면 중동 주둔 미군의 훈련과 군사장비 정비 등을 축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투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군은 7월21일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장거리 전략폭격기 ‘B-1 랜서’를 동원해 이란 군사시설을 타격했다. 미군이 장거리 전략폭격기로 이란을 타격한 것은 양해각서 체결 뒤 이날이 처음이다. ‘말의 전쟁’ 수위도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반시설 폭격 위협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쪽은 “9·11 동시테러와 같은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며, 미국은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자신이 중부사령부에 “이란에서 지옥의 문을 열라”고 명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시작하긴 쉬워도 끝내긴 어려운 게 전쟁이다.
전선은 더욱 넓어질 조짐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안사르알라)도 다시 ‘참전’ 의지를 밝히고 나섰다. 아라비아반도의 동쪽엔 호르무즈해협, 서쪽엔 바브엘만데브해협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 횡단 파이프라인을 통해 서부 얀부항에서 홍해를 통해 원유를 수출해왔다. 후티 반군은 7월20일 ‘바브엘만데브 봉쇄’를 선언했다. 홍해에서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목이 막혔다. 아시아로 향하는 선박은 북상해 수에즈운하와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남단을 지나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양해각서 체결 뒤 배럴당 70달러 선까지 내려갔던 국제유가는 7월23일 배럴당 98달러(브렌트유 기준)까지 다시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양해각서 체결을 서두른 것도 치솟는 유가 탓이 컸다.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는 이제 100일 남짓 남았을 뿐이다. 충동적으로 벌인 전쟁으로 발등을 찍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어설피 재개한 전쟁으로 다시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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