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님, 위에 올라가서 바트(스테인리스 용기) 이만한 거 있죠? 그거 가지고 오세요.”
2024년 7월 어느 날, 2천 명 이상이나 되는 급식인원의 점심을 준비하던 서울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 조리실. 지친 듯한 표정을 한 30대 남성 조리실무사가 건조한 말투로 지시했다.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40대 ‘여사’가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 그거 아까 바트 얘기 저쪽에서 했었…”
“아니,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다른 얘기잖아요.”
남성 조리실무사가 무시하듯 여사의 말을 잘랐다. 그는 짜증이 난 듯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면서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여사’라는 표현은 단지 호칭일 뿐 존대의 뜻이 담겨 있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사는 놀란 얼굴로 잠시 침묵했다가 위층으로 몸을 바삐 움직였다. 일일 대체근로자인 기자가 단기계약직 여사를 달래며 왜 분위기가 이런지 물었다.
“그러게요. 좋은 일자리라면 자꾸 대체(근로자)가 올 일이 없겠죠?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요. 원래 여기 분위기가 좀 삭막해요. 시간 맞춰서 빨리 애들 밥 만들어야 하니까 대화도 잘 없고, 웃지도 않아요.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이세요. 뭘 할지 모르겠으면 높아 보이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돼요. 일단 영양선생님, 그다음에 덩치 큰 남자 있죠? 그 사람이 높은 사람이고 그다음 높은 사람은….”
방금 ‘높은 사람’의 짜증을 받아냈음에도, 단기계약직 여사는 이날 처음 본 기자에게 이 학교 급식실 상황과 일터에 적응하는 팁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여사의 말처럼, 이 학교 급식실은 한눈에 봐도 기자가 얼마 전 일했던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과 분위기가 달랐다. 다른 학교에서는 40~50대 ‘어머니 같은’ 여성 조리실무사들이 고된 노동 환경 속에서 얼려온 커피라도 나눠 마시며 서로를 다독였다면, 이 학교 급식실은 수직적인 위계에 따른 건조한 지시와 기계적인 일처리만 조용히 이어졌다. 학교급식실이라기보다는 ‘컨베이어벨트식 급식공장’ 같았다.
근무 하루 전날부터 그랬다.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이 고등학교 급식실의 조리실무사 구인 공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곳은 학교를 대신해 인력을 구해주는 위탁업체였다. 당장 다음날 일할 대체근로자를 구하는 공고였지만, 자리는 남아 있었다.
“이 일 해보셨어요?”
“한 번 해봤어요.”
“안 힘드셨어요?”
“힘들었어요. 그런데 하루니까 그냥 빡세게 한 번 더 해보려고요.”
“그럼 보건증 가지고 오시면 돼요. 일용직 신고를 해야 해서 주민번호, 이름, 계좌번호 문자로 알려주시면 내일 아마 입금될 거예요. 내일 한번 해보시고 하실 만하면 또 와주세요.”
업체 관계자와 기자의 대화는 간단히 끝났다. 최소한의 서류 제출도, 면접도 없었다. 서울의 조리실무사 채용 경쟁률이 바닥을 찍어 지원자 수가 모집 정원의 절반에 그치는 상황, 특히 강남·서초의 조리실무사 결원율이 27.2%로 전체 평균(9%)을 압도하는 상황(제1523호 표지이야기 참조)이 그대로 실감 났다.
이 학교 급식실은 조리실무사를 직접 채용하는 직영이 아니라 ‘일부위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부위탁에도 두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중식과 석식을 모두 제공하는 학교에서 한 끼만 외부 급식업체에서 조리한 음식을 운반해 급식하는 형태다. 다른 하나는 조리는 모두 교내에서 직영으로 하되 조리실무사만 용역업체가 대신 채용하는 형태다. 이 학교는 후자였다. 저임금 과노동에다 학부모 민원 증가 등의 이유로 조리실무사의 결원율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직영을 포기하는 학교 분위기가 반영됐다. 그러면서 ‘요리 경험과 노하우’로 음식에 정성을 더할 수 있는 중년 여성보다 ‘무겁고 위험한 작업'에서 1인당 ‘효율’이 더 높은 젊은 남성 위주로 인력을 수급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급식실 업무 역시 학생들 먹거리 교육보다는 단순 식사 제공을 위한 효율을 극대화하는 공장식 노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출근 당일 아침 7시30분, 위생복과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한 채 들어선 이 학교 급식실의 풍경에서 공장식 노동이 요구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금세 드러났다. 당장 눈에 띈 건 우두머리 격인 덩치 큰 조리사와 운동선수 같은 근육질 조리실무사, 앞서 단기계약직 여사에게 짜증을 냈던 마른 몸의 조리실무사, 보통 키의 조리실무사 등 4명의 젊은 남성들이었다.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조리실무사 6명을 이끌었다. 특히 6명 가운데 2명은 기자처럼 이날 일용직으로 일하러 온 대체근로자였다. 그러니까 힘이 센 젊은 남성들이 전문성 없이 언제든 교체 가능한 대체근로 인력들의 업무까지 지휘하면서 공장식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조리실무사들 사이에서는 소소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인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가 맡은 오전 업무는 가공육과 나물 조리, 앞치마·토시 빨래, 장비 세척 등이었다. 그런데 기자와 또 다른 일용직 대체근로자에게 가공육을 삶아서 건지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던 근육질 조리실무사는 자주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기자와 또 다른 대체근로자가 최선을 다해 그의 동작을 따라 했지만,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른 몸의 조리실무사도 오븐 트레이에 채소 옮기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기자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물어보는 등 불편하게 하자 “여사님, 여사님! 저 여사님 불러봐”라고 말하며 답답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성마른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위험하고 과도한 노동에서 맡은 일과 책임이 과할 뿐이었다. 근육질 조리실무사는 사람이 들어갈 만큼 큰 솥에 음식물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때 뜨거운 물이 튀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자와 함께 30~40㎏짜리 대야를 함께 들 때도 무게중심을 자신 쪽으로 가져가 들어 올렸고, 뜨거운 불과 기름 앞에서 혼자 가공육을 볶으면서 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업무 설명에서는 정확하고 친절했다. 마른 몸의 조리실무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리에 부상을 입어 절뚝거리는 상태로 일하면서도 뜨거운 불이 타오르는 커다란 솥 앞에서 고기 주메뉴를 조리하면서 중간중간 일용직 대체근로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도하게 부여된 노동과 책임져야 할 업무 사이에서 이들의 마음 상태는 극과 극을 오갔다. “이건 오븐세제예요. 이쪽은 일반세제. 진짜 위험하니까 꼭 어떤 통에 어떤 게 담겼는지 기억하세요. 실명할 수도 있고, 화상 입을 수도 있어요”라고 오븐 세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던 근육질 조리사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무섭게 돌변해 “아 씨×, 큰일 날 뻔했네” 욕설을 내뱉었다. 오븐세제통을 잘못 건드려 다리에 쏟아질 뻔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그의 욕설에 잔뜩 긴장했다가, 그가 다시 표정을 바꿔 친절하게 세제별 통을 세척할 장소로 옮겨주는 모습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급식실 안에는 ‘짜증과 친절한 미소’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격한 학교급식실 위생 수칙상 조리실무사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빨랫거리가 많다. 세척할 때, 반찬 할 때, 전처리 과정 할 때 쓰는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모두 다르다. 기자가 오전에 잠깐 근무하는 동안 혼자 쓴 장갑과 앞치마만 이미 6개다. 전체 조리원이 오전에 사용한 장갑과 앞치마들을 수거하니 커다란 통에 빨랫감이 가득 찬다. 그것도 묻은 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하얀 앞치마가 많다. 한 중년의 여성 조리실무사는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빨래·청소 거리를 바로바로 치우지 못하는 대체근로자가 답답하다는 듯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앞치마 세척해봤어요?”
“아니요. 제가 한 번밖에 근무를 안 해봐서.”
“대체 그럼 뭘 해본 거야.”
그러면서도 온몸을 앞뒤로 밀어내며 하얀 앞치마를 솔로 박박 밀어서 닦고 있는 기자에게 내심 미안했던지 “몸살 나겠다. 너무 무리하진 말아”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자는 그의 답답한 마음과 걱정하는 웃음 사이에 아득한 간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학교 급식실에서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한 노동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저도 면접을 안 보고 일하러 왔거든요. 면접을 안 보는 걸 보니 사람이 오래 붙어 있는 곳이 아니구나 했죠. 몸은 오후 세척이 더 힘든데 정신적으론 오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여긴 사람들이 서로 거리를 두는 느낌이에요. 제가 식당 서빙 일도 해보고 고깃집, 양대창집 일도 해보고 여러 가지 해봤는데, 가장 힘든 게 현재예요. 제가 해본 일 중에 제일 힘들어요.”
경력 20년이 넘은 서울의 한 학교 영양교사도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교육청에서 조리실무사 뽑을 때 면접관도 해봤거든요. 정규인력이 부족하니까 이제 진짜 웬만하면 뽑아줘요. 남의 학교라도 사실 대충 뽑을 순 없잖아요. 그래도 (사람이 부족하니까) 팔다리 멀쩡하면 그냥 뽑는 거예요. 그랬더니 원래 일하던 사람들(오래 학교급식실에서 일한 정규조리사)이 막 미치려고 그래요. 진짜 혈압 오른다고 해요. 싸우고, 따돌림도 있고. 지금 이 이슈가 눌린 상태였는데, 강남 영동중학교 부실급식 사태가 터지기 시작하면서 위탁업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덤벼들 수 있어요. 정치권에 로비할 수도 있고요.”
조리실무사들의 건조한 분위기는 식사 시간에도 이어졌다. 오후 1시께 학생들과 교사들이 식사를 마치고 빠져나가자 함께 땀 흘리며 조리하고 배식하던 조리실무사들이 식당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식당에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밥만 먹었다. 그러다 밥을 후루룩 먹은 조리실무사들이 우르르 식당을 빠져나갔다. 기자가 겨우 젊은 일용직 대체근무자에게 이 일을 하러 온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당장 돈이 얼마 필요했는데 급전을 구할 수 있어서”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강남은 잘살아서 사람이 안 구해진다는데 강남 근처 사는 사람 다 잘사나? 일자리가 좋으면 왜 안 가겠어? 첫 기본급 198만원이고, 10년 넘게 일하면서 손가락이 다 틀어져도 내 월급 200만원 조금 넘는데 동네 식당 가는 게 나은 거지. 근데 또 대체인력은 시급을 서울생활임금 시급(1만1436원)으로 계산해. 그 사람 시급이 우리보다 많아. 그러니까 조리실무사 정규 채용이 되겠어? 계속 단기로 뽑고 악순환인 거야.” 경력 13년이 된 서울의 한 학교 조리실무사가 한 말이다.
<em>“조리선생님들은 배식하면서 많이 먹는 애가 누군지, 누가 어떤 음식을 특히 좋아하는지 알게 돼요. 그 애들에 대해 얘기 나누기도 하고요.”</em>
<em>“조리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먹는 게 예뻐서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고 오히려 영양교사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했어요.”</em>
<em>“어린아이들이 감사하다고 편지와 음료수를 가져다주기도 해요.”</em>
이 학교에서 일하기 전 영양교사들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말은 적어도 이 학교에선 먼 과거의 이야기가 돼가는 것 같았다.
<em>“폐암 진단받기 전까지, 2002년부터 22년 동안 일했어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둔 상태였는데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된 거예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일을 찾다보니 학교 조리실무사로 들어갔어요. 저희 애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거든요. 저도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고, 애들도 엄마가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고요. 애들이 급식실에서 일하는 엄마를 되게 자랑스러워했어요.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아이 혼자 키우는 사람들이 이 직종엔 의외로 많았거든요. 주말엔 같이 놀러도 가고 서로 위로도 받고. 정말 활기차게 저는 재밌게 일했죠. (최근 교육청에서 전수 검사했을 때 ‘폐암 진단’이라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너무 많이 무서웠지만요.”</em>
폐암 진단을 받고 휴직 중인 서울 지역의 한 조리실무사가 한 이 말도 지금의 학교급식실 노동자들에게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 학교급식실에는 ‘학생들 밥해 먹이는 일터의 보람’도 ‘직장인으로서의 소속감’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리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조리실무사들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었고,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갑질을 견디기 힘들다’며 자조하고 있었다. 이는 서울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신현미 영양교사협회장은 “조리사 인력난은 전국적 추세인데, 급식 인원이 대규모인 서울의 과밀학교는 좀더 심한 상황”이라며 “힘든 노동 강도, 조리실무사를 구하기 힘든 문제 때문에 수제 식단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자연에서 나는 식재료로 아이들이 성장하기 좋은 교육급식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하니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지금 급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선생님들끼리 한다”고 말했다.
과거 한국의 학교급식은 위탁급식이 많았다. 그런데 2006년 서울의 위탁급식 학교에서 대규모 식중독이 발생하면서 직영급식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이는 2011년 친환경 무상급식 도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리실무사들의 결원율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다시 위탁급식 체제가 거론되고 있다. 위탁급식 체제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급식 현장에 ‘이윤’이 개입돼 장기적으론 효율성만 추구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급식 교육이 ‘외주화’하면서 사실상 ‘밥과 관계’에 대한 교육이 사라진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과거에도 국회에서 위탁급식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때가 있어요. 급식비 구조가 나라에서 운영하는 거기 때문에 식품비, 운영비, 인건비만 들어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위탁으로 가면 민간업체가 운영할 때 드는 운영비가 있어야 하잖아요. ‘이윤’이라는 게 들어가는 거죠. (장기적으론) 식품비 등 다른 비용과 이윤이 싸우는 관계가 될 수 있잖아요. 저는 교육적으로도 ‘외주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밥 공부’가 필요한 이유는 밥을 먹는 게 인간의 기본이잖아요. 좋은 먹거리를 골라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고, 관계를 가르치고. 인력만이라 할지라도 위탁으로 가면 ‘밥을 만드는 사람’과 학생들의 관계가 지금보다 더 분리되잖아요. 교육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관계’가 형성돼야 서로 간에 배울 수 있어요. 학교는 학생들도 어른들에게 배우고, 어른들도 학생들을 통해 변화하는 공간이잖아요.” <밥 공부>(교육공동체벗 펴냄)의 저자인 정명옥 영양교사의 말이다.
갑작스러운 조리실무사들의 결원으로 어쩔 수 없이 위탁급식을 잠시 도입했으나, 조리실무사 인력을 다시 늘려서 문제를 해결한 선례도 있다. 2023년 3월 경기 김포의 향산초중학교는 조리실무사 7명이 집단 사표를 내면서 조리 정규인력 11명을 채우지 못해 급식 공백이 생겼다. 이 학교는 임시로 외부업체가 만든 음식을 학교로 가져와 배식하는 위탁급식 형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직영급식으로 돌아간 상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등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경기도교육청의 배치기준 협상 결과가 반영되면서, 인력 문제가 개선된 덕이다.
“일단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으니까 (위탁급식을 했죠). 일의 숙련도가 문제예요. 대체 인력은 오랫동안 일을 맞춰온 사람들과 다르잖아요. 정확한 조리 과정에 투입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가 있어요. 그런데 대체근로자한테는 그런 것들을 시키기가 힘들어요. 악순환인 거죠. 대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더 힘들어져요. 이게 비단 김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예요. 저희는 일단 당시 위기를 넘긴 게, 김포교육지원청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배치 인력을 11명에서 13명으로 늘렸더니 지금은 그만두는 분이 거의 없이 잘 운영되고 있어요.” 향산초중학교 관계자가 말했다. 결국 인력을 늘리면 될 일인데, 그걸 하지 못해서 구성원들의 갈등만 강화하면서도 교육은 삭제된 위탁급식 체제를 선택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후 2시께, 식판 세척을 시작했다. 2천 명 넘는 사람이 먹고 쌓아둔 식판 더미들이 수조로 밀려들었다. 세척실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베테랑 중년 여성 조리실무사는 자주 소리를 질렀다. 호스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 최종 헹굼을 담당하는 식기세척기 소리로 시끄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기계약직이나 대체근로자의 일머리가 답답해서이기도 하다.
“언니! 아직도 안 넣었어? 왜 아직 안 넣었어. 빨리빨리!”
옆에서 다른 조리실무사에게 소리 지르는 걸 보자 눈치가 보여 빨리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노동 강도를 측정했다. 다들 빠르면 10초, 느리면 20초에 하나씩 뜨거운 물에 담긴 채 겹쳐 있는 식판들을 떼어내 수세미로 박박 닦았다. 압력을 거슬러 물에서 식판을 건지는 반복 동작 때문에 손목이 아프고, 식판을 떼어내는 작업 때문에 손톱 밑이 아렸다. 식판만 밀려드는 게 아니었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 바트와 각종 집기들, 바퀴 달린 카트 등 세척할 것들이 주변에 쌓였다. 이 반복 노동은 오후 3시30분까지 90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반복됐다. 손가락이 아려서 더는 버티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 때쯤 세척실 밖의 누군가가 얼음물을 마시라고 부른다. 나와서 물을 마시면서 ‘이제 끝났구나’ 생각하는데 베테랑 조리실무사가 말했다.
“이제 바닥 닦아야지.”
몇몇 조리실무사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갔고, 기자는 바닥 하수구 뚜껑들을 들어내 끼인 음식물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오븐용 세제가 튈까 조심하며 바닥과 벽도 닦았다. 또 다른 이는 식기세척기에 끼인 음식물을 건져내고 청소했다. 어느덧 오후 4시. 이제는 누군가 세척해준 수저 정리를 시작했다. 이때쯤부턴 손이 덜덜 떨렸다. 수저 수백 개를 가지런히 정리한 바트들을 선반으로 날랐다. 이 과정에서 허리를 숙였다가 폈다 하는 일, 무거운 기구를 드는 일도 반복됐다.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한 고강도 노동이 8시간 넘게 이어지는 오후 4시30분께, 이제 정말 더는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또 다른 관리자가 나타나 막대걸레를 내밀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닦아주시고, 저쪽 애들 밥 먹는 테이블들 있죠. 그 밑에도 닦아주세요.”
최저임금으로 감당하기엔 턱없는 노동 강도다. 멀리서 영양교사 한 명이 힘없이 걸어온다. 하품하던 영양교사가 하수구 한쪽을 가리키며 다른 조리실무사에게 “여기 닦았죠?” 묻는다. 아마도 피곤해서 하품했을, 아무 죄 없는 영양교사에게 기자는 이날 처음으로 화가 치밀었다. 인터뷰 과정에서 조리실무사들이 “영양교사들 갑질이 엄청나다”고 욕하던 말까지 생각났다. 올해 서울 목동에서 한 영양교사가 목숨을 끊었을 때도, 학부모들의 집요한 민원에 더해 급식실 내 인간관계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급식 종사자들 사이에 떠돌았다. 이 모든 갈등은 ‘조리인력 부족’에서 온 ‘저임금 고강도 노동’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5월 ‘영동중학교 부실급식 사태’ 이후 조리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희망을 기대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조리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조만간 조리사 못 구해서 난리 날 듯요. 그동안 너무 싼 최저시급으로 조리사들을 부려먹었지요. 그동안 사회에서 제일 고된 직종, 특히 아줌마 직종, 조만간 대우받을 것 같네요.’
그러자 다른 학교급식 종사자들이 다음과 같은 댓글들로 찬물을 끼얹었다.
‘조리사 못 구하면 외주로 돌릴 겁니다.’
‘글쎄요. 외국인 노동자로 채울 겁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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