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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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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단죄하는 나라’, 그 믿음에 갇히다

러시아인 안드레이, 우크라이나 침공 징집 피해 인천공항 왔으나
난민 심사 거부로 출국대기실행… 5개월 소송 끝 임시 비자 받아
등록 2024-11-15 19:41 수정 2024-11-18 18:0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다와다 요코의 장편소설 ‘눈 속의 에튀드’는 북극곰 삼대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 베를린의 동물원에서 실제로 살았던 북극곰 크누트의 이야기에 작가가 상상력을 덧대 쓴 이 소설에는 냉전 시대 소비에트가 위성국가들에 선물로 보내기 위해 포획해 서커스 훈련을 시킨 북극곰이 등장한다. 크누트의 할머니인 그녀는 서커스단에서 자라나 서독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그녀가 쓴 자서전이 동물 착취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간주돼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망명을 도와준 서독 작가 연맹도 그녀의 진짜 삶에 관심 없는 건 소비에트 정부와 마찬가지다. 서독에서 그녀의 자서전은 사회주의 체제 비판의 수단으로만 활용될 뿐이다. 북극곰 삼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기발한 소설은 비인간 동물을 도구화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하지만, 그것만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경계를 넘는 존재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내온 작가의 소설답게 이 작품 속에 그려지는 북극곰의 처지는, 정치적 이유에서 강제로 이주당해 권리를 박탈당하고 대상화된다는 측면에서 난민과 그 후속세대에 대한 은유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동물원 북극곰처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024년 여름 공항 이용객 수는 1241만9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하루 평균 20만1천 명에 가까운 이들이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해 국외에 다녀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수치가 말해주듯 팬데믹 시대가 끝난 이후 공항은 활기를 되찾았다. 많은 이에게 공항은 자유와 경계 넘기, 해방을 연상시키는 장소다. 공항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도 희망에 부풀어 멀리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2024년 기준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좋은 공항으로 뽑힌 인천국제공항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갇힌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가명) 역시 오랫동안 공항에 갇혀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안드레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징집을 피해 한국에 왔다. 2022년 10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안드레이는 출국대기실에서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징집거부는 난민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입국외국인청이 난민 심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가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불복 소송을 통해 난민 심사를 받고 임시 체류 비자를 받아 입국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이후였다.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거부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처음 공항에 도착했는데, 출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이 입국 심사도 따로 하지 않고 러시아 여권 표지를 보자마자, ‘러시아’라고 하면서 왼손을 들더라고요. 그러자 누군가가 와서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갔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기약 없는 생활이 시작됐죠.”

출국대기실은 난민 신청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이 송환되기 전까지 단기간 대기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문제는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발생하는데, 그들을 위해 마련된 별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출국대기실에서 생활해야 하지만 그곳은 장기 체류자들을 수용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다.

“수하물은 입국 허가를 받아 공항을 빠져나올 때까지 되돌려받지 못했어요. 1인당 한 개씩 제공되는 칫솔, 치약, 수건, 비누 등의 생필품을 제외하면 기내에 가지고 탔던 짐이 제가 가진 전부였죠.”

삼시 세끼 주먹만 한 빵 하나에 주스

언젠가 나는 유럽에 가던 중, 환승편이 취소되어 낯선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적이 있다. 일정이 바뀐 이유에 대한 설명조차 없는, 느닷없고 일방적인 환승편 변경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은 밤 공항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뒤 세면도구나 잠옷도 없이 알지 못하는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상황에 서럽고 화났던 기억이 난다. 항공사 쪽으로부터 호텔 바우처까지 제공받아 겨우 하룻밤을 예정과 다른 장소에서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그런데 난민 신청을 받아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찾아온 나라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하루아침에 공항에 갇혀버린 안드레이의 마음은 도대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무료 변호나 통역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처음엔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안드레이는 공용 화장실 세면대에서 몇 벌 안 되는 옷가지를 손빨래하고, 침대 대신 모포를 깐 바닥 위나 벤치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잠을 자며 생활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삼시 세끼 주먹만 한 크기의 똑같은 빵 하나와 주스 하나가 식사로 제공됐는데, 영양균형 면에서 형편없는 것은 물론 성인 남성의 허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게다가 제공되는 빵의 개수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배고파도 더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출입국관리실의 인권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처우가 조금은 나아졌어요. 점심에는 그래도 도시락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빵이 먹기 싫으면 다른 것을 사먹으면 되지 않냐고? 출국대기실에 억류된 이들은 여권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공항 내 면세점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그들은 슬리퍼 따위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도 면세점을 기웃거리며 여권을 가진 누군가에게 대신 구매해달라고 사정해야만 한다. 바깥 공기를 쐬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공항의 유리창 너머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비행기가 세계 각지를 향해 자유롭게 날아가지만 안드레이는 하루에 단 1분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배고픔보다 힘들었던 입국 심사 직원의 눈빛

출국대기실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국을 거부하는 결정권자(법무부)와 입국불허자를 관리하는 기관(항공사 운영위원회)이 달랐던 초기에는 출국대기실을 운영하는 법적·제도적인 기준과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비용 절감을 중시했던 항공사 운영위원회가 장기간 머무는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자들에게 기본적인 처우를 보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요구로 2022년 8월 관리 주체가 법무부로 변경됐지만 안드레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인력 부족과 제도의 미흡함으로 출국대기실의 상황은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인터뷰가 진행되고 안드레이가 한국에 와 겪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나고 마음이 참담해졌다. 언젠가 나는 난민들이 인종차별을 멈춰달라며 시위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난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영상 아래 달린 원색적인 댓글들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괴로웠다. 대체로 누가 한국에 오라고 했느냐, 한국이 싫으면 “꺼지라”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누군가가 유명한 영화 대사를 인용해 달아놓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댓글이 유독 기억난다.

난민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은 바로 이런 인식,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은 호의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에게든 아니든, 난민에게든, 아직 난민의 지위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든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이 나처럼 욕구와 욕망을 지닌 존재라고, 고통과 슬픔,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북극곰에게 북극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동물원에 가둬버리는 사람들처럼.

‘눈 속의 에튀드’를 읽으며 우리가 북금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 다와다 요코가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북극곰들에게 1인칭 화자의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1인칭으로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일은 언제나 ‘경청’과 ‘응시’에서 비롯되니까. 누군가를 제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으면 우리는 다른 이가 함부로 다뤄지거나 휴지 조각처럼 버려져도 되는 사물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존중받아 마땅한 당신과 나처럼 고귀한 생명임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출국대기실에서 지낼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느냐는 내 질문에 안드레이가 전쟁 중인 고국으로 돌려보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나 여러 계절 동안 바깥을 나갈 수 없었던 답답함에 대해 말하는 대신 “입국 심사하던 직원들의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눈빛”에 대해 언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인권 존중하는 나라일 거라 기대했었다”

인권 감수성이 더 높은 다른 나라도 많은데 왜 하필 한국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안드레이가 한 대답이 인터뷰를 마치고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한국은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잖아요.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많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한국이 민주주의가 아주 발달하고 인권을 매우 존중하는 나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느끼는 것 같은 부끄러움이나 죄스러움 없이 안드레이가 했던 이 말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까? 우리나라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받아 마땅한 최소한의 존중을 건네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날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 많지 않아요”라는 안드레이의 말을 나는 다시 한번 곱씹는다. 그런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면서.

백수린 소설가

 

*동료시민 이주민: 인구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는 선택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이주인권’을 소재로 한 소설가들의 연속 기획을 선보인다. 4주마다 연재.

백수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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