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짧습니다. 시행(2019년 7월16일) 5주년 기획 취재를 하면서 든 첫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 해 수만 건에 이르는 괴롭힘 신고를 근로기준법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제76조의 3(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의 단출한 조문이 감당하는 데서 온 느낌인 듯합니다.
짧은 법조문을 ‘게으른 입법’ 탓이라고 말하는 건 성급합니다. 애초 법의 취지가 ‘처벌’에 무게를 두지 않았기에 괴롭힘 행위도 세세히 규정하지 않은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예방-조사-조처 등 ‘관계의 안전’을 위한 의무를 사용자가 포괄적으로 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법 시행 이후 신고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설문조사를 해보면, 시행 전보다 괴롭힘이 줄었다는 답변이 다수입니다. 신고 건수가 곧 발생 건수는 아닙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지적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발생은 줄고 신고는 느는 현상이 나타났을 개연성이 큽니다. 긍정적입니다.
체감 효용은 다른 문제입니다. 법의 만족도는 높지 않습니다. 신고자(피해자)와 행위자(가해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신고 이후 조사 과정이 지난한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양쪽 모두 심리적 소모가 극심합니다. 특히, 괴롭힘 인정 비율이 낮은 건 신고자에게 퇴사를 결심해야 하는 위협으로 이어집니다.
저 짧은 법조문이 문제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괴롭힘 개념이 모호하니 이를 구체화하자는 겁니다. 결국 판단 기준의 문턱을 높이자는 얘기입니다. 주로 사용자 단체에서 나옵니다. 허위 신고 등 오남용 사례가 적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노동·시민단체들도 ‘없는 사실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진단은 정반대입니다. 오남용을 강조하는 사용자가 외려 문제의 장본인이라는 겁니다. 사용자가 예방 활동은 손 놓은 채 자의적인 조사와 조처로 법 취지를 훼손할 뿐 아니라 오남용까지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사례는 넘칩니다. 사용자 자신이 가해자인 사건에 대한 ‘셀프 조사’가 전형적입니다.
어느 한쪽 주장이 전적으로 옳거나 그르지 않을 것입니다. 법 시행 5년이면 여전히 과도기입니다. 그럴수록 법 취지를 새삼 상기하고, 운용의 내실화를 기해야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엽기적이기까지 한 사용자들의 행태에서 촉발돼, 관계의 안전을 위해 제정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은 괴롭힘의 문턱을 높일 때가 아니라 너른 행간으로 남은 법의 취지를 채워야 할 때입니다. 여전히 법의 가장 큰 공백은 ‘사용자’입니다. 그리고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입니다. 사용자의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법 적용 대상을 넓히는 일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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