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앙.”
뒤에서 차량 경적이 울렸다. 꾸불꾸불한 곡선도로를 지나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못 봤을 터다. 도로 옆으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다. 왼쪽엔 논, 오른쪽엔 숲이다. 왜 인도도 없는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물으신다면, 탄소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가 함께 기획한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제1526호 표지이야기)에는 50명이 참여해 23명이 완주했다. 나는 이 기획을 취재하는 동시에 실험에 참여해 완주한 23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2024년 7월 초 실험을 시작하고 첫 난관과 마주했다. 실험에 참여한 농민 김정열씨를 취재하기 위해 경북 상주에 가야 하는데, 이동에 발생하는 탄소량을 계산해보니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보통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취재를 갈 땐 기차나 버스를 이용한다. 다만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은 회사 차나 자차를 이용한다. 김정열씨가 있는 상주의 봉강마을은 차로 약 3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대중교통으로는 6시간이 넘게 걸렸다. 평소 같으면 차로 이동했겠지만 1.5도 라이프스타일 취재를 위해 가는 길이니 내연기관차를 이용할 순 없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경북 상주 봉강마을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은 힘들고 오래 걸렸으며, 무엇보다 귀찮았다. 도보로 지하철역으로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상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상주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 시작임을.
앱으로 검색했을 땐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가 몇 대나 있는지 나오지 않았다. 경로만 알려줄 뿐이었다. 터미널에 붙어 있는 배차표를 보고 나서야 하루에 5대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빠른 버스도 3시간 뒤에 출발한다. 대체버스를 찾아보니 마을에서 약 2㎞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마저도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약 20분을 달려 마을과 2㎞ 떨어진 봉강입구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정류장엔 콜택시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택시를 부를 순 없었다.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10분 만에 셔츠가 다 젖었다. 도로는 꾸불꾸불했고, 그늘은 없었다. 이곳을 걸어 다니는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봉강마을에 다다른 건 오후 3시30분. 집에서 나온 지 6시간30분이 지났을 때였다.
서울에서 상주까지 이런 방식으로 이동한 결과, 16㎏의 탄소를 배출했다. 자동차를 탔다면 47㎏의 탄소를 배출했을 것이다. 절반 이상 줄였지만 이미 한 달 살기 실험에서 정한 하루 목표치(약 16㎏)를 넘겼다. 이제 실험을 시작한 지 2주차. 연평균 5.9t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난관은 출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주에 계속)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21토크ㅡ한겨레21 표지 기사의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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