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장에서 주최하는 가족체육대회에 참여했다. 신발 멀리 던지기, 2인3각 달리기 뒤에 어린이 경기가 이어졌다. 코끼리 코를 열 바퀴 돌고 30m 앞의 깃발을 먼저 뽑는 게임이었는데 우리 아이는 꼴찌를 겨우 면했다. 여덟 바퀴만 돌고 깃발을 선취한 아이가 1등을 했다. 아이 부모와 운영진이 워낙 친한 사이로 보여 항의도 못했다. 반칙을 목격한 아이들은 의기소침해졌고, 우리는 대회를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왔다.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게 바로 ‘위조된 표창장’ 아닌가.
남들 하는 만큼만 한다며 자식의 표창장을 위조하거나 논문을 대신 써다 주는 부모들이 있다. 자식이 좀더 크면 아파트를 증여해 투기를 돕고, 구직 면접은 프리패스로 통과시킨다. 평범한 부모를 둔 아이들은 입시경쟁의 밑바닥을 ‘깔아주고’, 내정자가 아니었던 청년들은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다. 이런 부모들이 우리를 동료시민이라 부르고, 오직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며 자기 이름을 내건 정당을 만든다. 적어도 세계 최저 출산율을 자기 경신하는 나라에선 정치하면 안 될 사람들이다.
들러리가 된 아이들은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운이 조금 없었다. 정직하게 승부를 겨루고 결과에 승복하라고 가르친 부모들은 그저 어른이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아빠가 법무부 장관이 아니어도,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장애나 질병이 있어도, 갑작스러운 사고나 재난을 겪더라도 충분한 기회를 얻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운으로 얻은 기회를 독점하고 보란 듯 그 기회를 세습하는 이들은 정치인으로서도 어른으로서도 낙제다. 그들이 그나마 공공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이 사회가 맹신해온 공정한 경쟁이 허구였음을 확증해준 것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시험이라는 선발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할 것이라고 더는 믿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말이 있다. 이혼할 때 재산분할을 1조3천억원씩 하는 부부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자산, 인맥, 정보 등 부부가 가진 모든 자원을 오로지 가족 안으로만 쏟고 공동체를 도외시할 때 결혼과 공동체가 서로 충돌한다는 개념이다. 탐욕은 대개 자녀를 향해 싹튼다. 탐욕스러운 결혼은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변태를 거쳐 돌봄의 양극화를 낳는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최소 두 번은 돌봄이 필요하다. 인간이기에 자연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두 시기, 적어도 미성년과 노년의 삶만큼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의 탐욕스러운 돌봄은 이마저도 난도질해 등급을 나누고 값을 매긴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소수의 탐욕 앞에서 사랑은 무방비하다. 그렇게 아이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노인은 체념에 익숙해진다. 부모와 자식 모두 제가 못난 탓이라 자책한다. 돌봄의 양극화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원망하게 하고 삶을 스스로 평가절하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다. 사실상 반(反)돌봄이다. 진정한 돌봄은 가족 안에 갇히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이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어 결국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공동체의 원리가 돌봄이다. 또한 돌봄은 가족에게만 떠맡길 일도 아니다. 탐욕스러운 돌봄이 이 사회를 자꾸만 퇴행시킨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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