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마지막 발언 기회 한 번만 주세요.”
2018년 8월3일 서울 중구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회의실. 이날 열린 제31차 전원위원회에서 김영모 선조위 부위원장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체보존 처리계획서를 1년4개월 동안 준비하면서 저희가 가장 공을 들이고 노력을 했던 게 (세월호의) 거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위원회는 거치 장소 결정을 거부했습니다. 누가 무슨 앞으로 어떻게 조처를 한다든지 하는 이런 문구가 전혀 없이 그냥 거치 장소 결정을 갖다가 제외한다고 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책임은 선조위가 지든지 아니면 위원장님께서 필요하시다면 거기에 대한 후속 문구 작성을 해서 마무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제안에 대한 김창준 선조위 위원장의 답은 한마디였다. “관리권이 해양수산부로 다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은 선조위 전원위 회의록에 기록된 마지막 말이 됐다. 세월호 선체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조사했던 국가기구인 선조위가 정작 선체 거치 장소에 대해서는 결정을 보류하고 정부에 그 결정을 넘기는 것으로 보고서를 마무리한 것이다.
#장면2.
2023년 7월 해양수산부는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별도의 신청을 하면 선체 내부를 탐방할 수 있도록 했다. 통제를 시작한 건 선체가 낡아 시민들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특히 2024년부터 50명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된 점이 영향을 끼쳤다고 해수부 쪽은 전했다. 선체 내부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체 관리 주체인 정부 관계자들이 처벌될 수 있다는 측면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해수부가 선체 진입을 제한하면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은 이랬다. “세월호 선체는 시설물안전법 등 다른 안전 법령을 적용하기 어려운 손상된 선체 구조물이며 일반인의 출입과 탐방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법적 근거가 없’는 까닭은 세월호 선체가 여전히 정부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선체를 소유한 청해진해운 쪽에 약 1800억원 규모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선체(24억원)의 소유권을 가져오는 대신 구상권의 일부 금액을 탕감하려는 간이변제충당 소송을 2022년 3월에 냈다. 간이변제충당은 물건의 감정액만큼 빚을 갚는 효력을 갖는다는 뜻인데, 이 소송에서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 청해진해운이 정부에 갚아야 할 1800억원 가운데 24억원이 줄어들고 선체 소유권을 정부가 갖게 된다. 하지만 법원은 2022년 6월 심문을 진행한 뒤 아직도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청해진해운도 여전히 세월호 선체 소유권 포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면3.
2024년 3월31일 오후 2시 전남 목포신항. 검붉은 색으로 녹슬어버린 거대한 규모의 세월호 선체가 서 있었다. 선체 윗부분은 녹색 가림막이 인공적으로 설치돼 있었다. 선체 인근 부지에는 선체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과 배에 실렸던 차량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놓여 있었다. 일부 파편은 녹색 그물로 덮여 있었다. 이 파편들은 ‘파손 선체 원형 보존을 위해 현재 임시 거치돼 관리되는 중’이라며 출입금지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이 무색하게 바닥에 놓여 있었다. 특별한 관리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선체가 놓인 공간에는 일요일 낮임에도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하루에 몇천 명이 왔죠. 지금은 수십 명 정도?”라고 말했다. 10년의 세월을 말해주듯 인근 펜스에 걸린 노란 리본은 대개 낡아서 색이 바래 있었다. 사람들의 줄어든 발길만큼 노란색이 선명한 새 리본은 많지 않았다. 사실 처음 오는 사람은 이곳을 찾아오기도 쉽지 않다. 선체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표지도 없고 목포신항에 오더라도 멀리서 보면 항만에 정착한 여러 선박과 구조물로 인해 세월호 선체가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세 장면이 지난 10년 동안 표류한 세월호의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014년 4월16일 참사가 난 지 10년, 2017년 4월11일 인양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아직 최종 목적지로 가지 못한 상태다. 세월호 선체는 인양 직후 거치된 목포신항 부지에 서 있지만, 이곳은 임시 거치 장소일 뿐이다. 게다가 관리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주변은 초라했다. 세월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왜 10년이 지났음에도 세월호는 표류하고 있는 걸까?
2024년 3월31일 목포신항에서 만난 문지후(34)씨는 거대하면서도 초라한 세월호 선체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미디어에서만 봤던 세월호 선체를 이번에 처음 봤다고 말했다. “마음이 더 안 좋죠. (직접) 보니까 더 그래요. 생각보다 더 크네요.”
그러면서 문씨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2017년을 떠올렸다. 세월호 선체는 침몰하고 3년이 조금 안 된 2017년 3월23일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파면이 헌법재판소에 인용된 3월10일에서 겨우 13일 지난 날이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선체를 인양할 수 있었음에도 정치적 이유로 인양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정부가 (인양을)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거잖아요. 그게 기억나네요.” 문씨가 말했다.
세월호는 이후 4월11일 목포신항 육상 거치 작업이 완료됐다. 그즈음 선조위가 출범했고, 선체 수색으로 미수습자 9명 가운데 4명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후 10월27일 제11차 선조위 전원위에서 논쟁 끝에 누워 있는 세월호 선체를 직립하기로 결정했고, 2018년 5월10일 세월호는 똑바로 세워졌다. 하지만 거듭되는 수색에서도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 일반 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 등 5명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세월호 선체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는 이 5명의 수습을 염원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동안 배는 염분이 가득한 바닷바람에 더 낡았고 좌현의 녹은 검붉은 색을 더했다.
애초 선조위는 2018년 8월 활동을 마치면서 선체 활용 방법을 두고 “세계적인 다크투어리즘(Dark-tourism) 명소로 탈바꿈해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과 재난 등 비극적 역사가 담긴 지역을 관광하는 것을 뜻한다.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했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제2차 세계대전 학살지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등이 대표적이다. 고통이나 슬픔을 넘어 세월호 같은 참사가 일어난 배도 ‘역사적 가치’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크투어리즘은 참사나 재난을 한 차원 넓게 해석하는 행위다. 세월호 선체가 최종 목적지로 가면, 선체는 참사의 기록물인 동시에 재난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는 교과서이면서 또한 시민들이 동료 시민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게다가 침몰했던 선체를 온전히 보존해 상징적인 장소로 활용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대개 침몰한 선박은 비용 등의 이유로 바닷속에서 꺼내지 않거나 분해해서 일부만 보존해왔다. 1953년 300여 명이 사망한 창경호, 1970년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1993년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등 국내 해상선박 사고에서도 선체 자체를 보존한 사례는 없었다. 2012년 1월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코스타 콩코르디아 크루즈 선박 좌초 사고에서도 선체는 분해돼 재활용됐다. 이 때문에 세월호 선체를 최종 목적지에 두고 제대로 된 관리 체계를 갖춘다면 세계인이 찾는 참사의 기억 및 추모 공간이 될 수 있다.
선체를 보존함으로써 이뤄지는 참사의 기억에 대해 사회학자 엄기호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는 “기억한다는 것은 그날 내가 느꼈던 아픔을 다시 생생하게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현재(의 암흑)를 생생하게 감각함으로써 현재로(동시대인으로) 깨어나는 활동”이라며 “기억은 점차 무뎌져가는 어떤 감각을 놓치지 않고 부여잡는 것이 아니라 그날 놓쳤던 감각을 생생하게 하는 사람 혹은 이야기와의 만남을 통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만들자는 논의는 세월호의 최종 목적지를 어디로 해야 할지를 두고 일어난 논쟁으로 인해 하염없이 연기됐다. 애초 세월호는 ‘인천 ’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다 ‘전남 진도’ 맹골수도에서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 . 이 배의 최다 탑승객은 ‘경기 안산’에 있는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 이 때문에 선조위가 2018년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선체 처리 관련 설문조사 에서 ‘만약 세월호 선체가 보존된다면 어느 지역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가 ’를 묻는 말에 응답자의 37 .4 %가 참사가 발생한 진도를 꼽았고 , 안산이 25 .7 %로 뒤를 이었다 . 목포는 20 .8 %로 3번째였다 . 목포는 출발지도 , 도착지도 , 사고지도 , 희생자 다수의 연고지도 아니었다 . 그저 인양된 선체가 임시 거치된 곳일 뿐이다 . 이 때문에 선조위에선 세월호를 목포에 영구 보존하는 것을 두고 이견이 제기됐다 .
“목포는 반대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목포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고요. 목포신항만에 세월호가 거치돼 있다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2018년 8월3일 제31차 선조위 전원위에서 권영빈 제1소위원장이 한 말이다. 권 소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위원들도 목포가 참사에 대한 상징성이 없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목포는 6천t 규모의 세월호 선체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데 들어가는 번거로움이 비용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적었다. 결국 선조위는 세월호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0년 8월에야 해수부는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세월호의 영구 보존 장소를 목포 고하도로 정했다고 밝혔다. 목포 시민들은 세월호 영구 보존을 환영해줬다. 목포시는 시민 1만3992명 가운데 73.6%가 세월호의 목포 영구 보존을 ‘찬성한다’고 응답한 결과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는 애초 상징이 없던 목포에 사후적으로 상징이 부여된 계기가 됐다. “세월호 선체 거치를 (목포시가)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세월호 참사를 안아주는 의미가 있었죠. 그게 큰 상징입니다.” 정성욱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이 한 말이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정부의 소유권이 여전히 인정되지 않아 세월호를 최종 목적지로 이동시키고 상징적인 기억 공간을 만드는 일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수부는 “법원 판단만 기다리고 있다”며 소유권 이전은 시간문제라는 입장이지만, 기약은 없는 상태다. 해수부는 애초 세월호의 최종 목적지인 목포시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앞 공유수면으로 세월호 선체를 지금 거치된 목포신항에서 직선거리로 1㎞ 정도 이동시킨 뒤 3만4천㎡ 부지의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가칭)을 만들기로 했다. 해수부는 이 기억관이 다크투어리즘 장소에 걸맞게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미국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폴란드 아우슈비츠 박물관 등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기억관 역시 해수부가 애초 발표했던 최종 완공 시점은 2027년이었다가 다시 2년이 늦춰진 2029년이 됐다. 이런 상황이 세월호 선체가 그동안 목포신항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까닭을 설명해 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세월호 선체 인양 이후 7년, 세월호는 1㎞도 움직이지 못했다.
소유의 부재가 안전 부재도 낳고 있다. 선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소유한 동산이 아니기에 현행 시설물안전법의 규정을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그간 선체가 놓인 목포신항 부지의 관리를 해수부가 하고 있기에 간접적으로 선체 관리를 해온 셈이다. 현재 세월호 선체 구역에는 해수부 쪽 공무원 2명 정도가 상주해 관리하고 있다.
차일피일 미뤄진 건 선체 관리뿐만이 아니다. 안산시 단원고 인근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4·16생명안전공원’은 2024년 10월에야 착공할 예정이다. 애초 세월호 10주기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착공마저 2년 미뤄지면서 완공은 2026년 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과정에서 총사업비가 물가 상승 등의 여파로 500억원을 넘겨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 대상이 된 탓이다. 생명안전공원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봉안 시설을 포함해 추모공간, 문화·편의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지성 4·16 기억저장소장은 “(세월호 선체나 생명안전공원 등은) 완공 시간이 점점 늦어질수록 사람들 기억 속에 이런 참사가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들은 참사 현장이면서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다. 이것들이 잘 보존되는 것이 우리가 더는 희생되지 않을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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