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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희망’은 왜 ‘유서’를 써야 했는가

‘지역소멸 1위’ 의성의 희망을 상징하던 ‘청년농부’의 죽음… ‘주소 이전했으니 됐다’ ‘얼마 줄게 와라’ 식의 농촌 이주 정책에 미래는 있을까
등록 2024-03-30 08:00 수정 2024-04-02 04:40
최서현이 일궜던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자두밭. 류우종 기자

최서현이 일궜던 경북 의성군 의성읍의 자두밭. 류우종 기자


설 연휴를 앞둔 2024년 2월7일 저녁 7시께. 경북 의성경찰서에 동시다발로 신고 전화가 들어왔다. 지역 청년들의 전화였다. 내용은 이랬다. “최서현(가명)을 찾아봐주세요.”

최서현은 경북 의성군의 29살 귀농 청년이다. ‘#자두청년’이라는 해시태그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십 개 게시물을 올려둔 그는 주로 자두와 복숭아 농사를 소개했다. 하지만 갑자기 ‘유서’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농촌 지역에 정착해서 살고 싶었을 뿐인데, 농촌사회 이면에 신물이 난다. 다들 고맙고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안녕히 계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본 지역 청년들이 앞다퉈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최서현의 어머니는 차로 15분 거리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들 친구로부터 연락받은 어머니는 집으로 향했다. 잘 쓰지 않던 작은방에서 쓰러진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은 의식이 없었다.

최서현은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안동시 안동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진은 이튿날 그의 뇌사를 판정했다. “억울해서 그런가, 아이가 눈을 못 감아요. 눈이 자꾸 떠진다고요. 간호사가 눈에 테이프를 붙여 감겨줬어요.” 최서현 어머니의 말이다. 2월28일 의성읍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서현의 가족은 3주째 매일 중환자실에 누운 그를 보러 가고 있었다. “의사가 뇌사 판정했지만, 그래도 (최서현을) 좀더 보고 싶어요.”

자두·복숭아 농사 지으며 특산물 사업도

대구에서 나고 자란 최서현은 농업고등학교와 농업대학을 졸업하며 농업인의 길을 걸었다. 2016년 말 외가가 있는 의성으로 이주했다. 최서현은 ‘촌스럽게’라는 농장을 운영하며 자두(6612㎡, 약 2천 평)와 복숭아(1만9835㎡, 약 6천 평) 농사뿐만 아니라 의성 흑마늘·자두·호박 등 특산물을 이용한 식혜를 만들어 팔았다. 그는 농촌체험 사업도 했고, 마을 대소사도 앞장서서 도왔다. 동물체험 테마파크도 만들고자 했다. 2017년 12월에는 서울시민청 토론회에 참석해 “의성의 지역 농산품을 생산 판매하고 유통 플랫폼을 조성하는 마을 활동가가 꿈”이라며 “농촌에는 새로운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발언했다. 2021년 12월에도 안동 문화방송(MBC)에 출연해 “제가 생각하는 꿈이 정말 방대하다”며 “농업 관련 큰 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제 원대한 꿈”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서현은 자신처럼 의성으로 이주한 청년들의 적응을 돕는 일에 열중했다. 의성에서 창업한 귀촌 청년 ㄱ씨는 “처음 온 청년들한테 (비닐)하우스 짓는 거라든지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최서현이 귀농해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는 의성군이 청년 귀촌 사업에 열을 올릴 때와 맞물린다. 의성군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지방소멸위험지수’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마을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의성군은 청년 유치 계획에 열을 올렸다. 지역 언론과 군청 예산서, 보도자료 등을 종합하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년 일자리와 창업 지원, 주거단지 조성, 유치 홍보 등에 국비와 도·군비 1363억원이 투입됐다. 의성군은 2020년 213명, 2021년 229명, 2022년 213명 등 3년 연속 귀농인 전국 1위를 차지했다고 실적을 홍보했다. 그즈음 의성군은 토론회와 간담회, 지역방송 등에 최서현을 귀농 청년들의 ‘희망’으로 꼽아 추천했다.

꿈을 위해선 필수였던 지역 단체 활동

이 귀농 청년의 삶은 어디서부터 금이 갔을까. 최서현은 2017년부터 제초제를 덜 뿌리며 본격적으로 친환경 자두농사를 일궜다. 이후 3년 동안 복숭아농사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았다. “기후위기로 서현이가 짓던 과수농사는 냉해 피해를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현이는 개의치 않고 여러 일을 추진했어요.” 최서현의 외삼촌이 말했다.

최서현은 꿈을 확장하고자 했다. 농산품 가공업과 테마파크 등 사업영역을 넓히려 했다. 이를 위해선 지역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인지도 있는 청년봉사단체인 ㅍ회 활동에 매진하게 된 까닭이다. “청소년기에도 이 단체 회원이었지만, 귀농 이후 더 열심히 활동했어요. 서현이는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 농업 유통망을 넓힐 수 있고, 테마파크를 위한 외자 유치도 가능하다고 봤어요. 원하던 꿈을 펼치기 위해 지역 네트워크가 필수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최서현의 외삼촌이 덧붙였다.

지역에서 청년회 활동의 의미는 단순 친목 활동을 넘어선다. 특히 귀농·귀촌을 한 경우 청년회 등 지역 커뮤니티에서 자리를 잡아야 인정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연고가 없다보니 귀농·귀촌해서 수익을 내려는 청년들은 지역 연계 사업이나 행정적 협업을 하기 위해 지역 단체에 가입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의성에 귀촌한 지 3년 된 ㄷ씨가 말했다.

전국에 지부를 둔 ㅍ회는 주로 해당 지역 출신 청년이 간부를 맡는다. 하지만 최서현은 의성으로 이주한 귀농 청년이면서도 이례적으로 의성 ㅍ회 사무국장으로 임명됐다. 그만큼 헌신을 인정받았다. 최서현은 2023년 의성군이 지원하는 사업에서 2천만원 규모의 사업지원(자부담 40%)을 받았다. 최서현은 어머니 최씨에게 “4년간 네트워크를 넓힌 성과”라 말했다고 한다.

경북 의성군 농업기술센터 예산서를 보면, 본예산 기준으로 ㅍ회가 주관하는 농업인 교육이나 야영·체육대회 등에 2023년 2210만원, 2024년 2160만원의 지원금을 배정했다. ㅍ회는 군이 설립한 공공 키즈카페 위탁운영도 맡고 있다.

의성군은 특정 단체 소속이라고 해서 특별히 행정·사업적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의성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한겨레21>에 “공모사업에서 청년회 소속이라고 특혜를 주는 일은 없다”며 “행사나 교육 등으로 ㅍ회에 지원되는 금액은 소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서현은 자연과 농업에 대한 게시글을 올려 사람들과 소통했다. 최서현 인스타그램 갈무리

최서현은 자연과 농업에 대한 게시글을 올려 사람들과 소통했다. 최서현 인스타그램 갈무리


“개인 일까지 시키고 수익을 가로채”

그런데 ㅍ회에서 만난 관계가 최서현의 발목을 잡았다. 2023년까지 약 4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은 최서현은 의성군 ㅍ회 회장 ㅈ(32)씨의 지시를 주로 따라야 했다. 최서현은 유서에서 ㅈ씨가 자신에게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365일 매일매일 그(ㅈ씨)의 전화를 받는 것은 지옥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자기 개인비서마냥 청년회와 무관한 개인 일까지 시키며, 단체 일이라며 무수한 업무들을 주며 본업도 못하도록 만든다. (중략) 그의 자식을 어린이집으로 찾으러 가거나, 그를 깨우기 위해 아침에 그의 집에 가서 (중략) 모든 행사 준비부터 실행까지 나와 회원들한테 시키고 (중략) 의성군의 키즈카페를 의성 ㅍ회로 위탁받아 운영하며, 나오는 수익을 자신이 가로채고 나는 매일같이 거기서 일하고도 제대로 된 수당을 받지도 못하고 (중략) 자신의 사업을 위해 지원금 수령을 위한 사업계획서, PPT 자료 등을 강제로 대신 쓰게 하여(중략)….” 최서현이 남긴 유서의 일부다.

최서현은 ㅈ씨가 회비를 부당하게 유용한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서현의 휴대전화에 남은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ㅈ씨가 2023년 5~7월 ㅍ회가 군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키즈카페 운영 통장을 두고 최서현에게 “형 통장으로 옮겨달라”고 지시한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결정적으로 최서현의 마음에 상처가 된 사건은 2023년 8월에 일어났다. 최서현은 ㅈ씨의 지시로 지역 광고회사인 ㄹ사의 표지판 설치 작업을 했다. 그러다 8월12일 최서현이 탄 작업 차량의 바퀴가 길옆으로 빠져 굴렀다. 최서현은 당시 목뼈가 골절되는 전치 12주의 부상을 당했다. ㅈ씨·ㄹ사와 치료비 보상 문제로 의견 차이가 생겼고, 결국 보상받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최서현은 그간 헌신한 ㅍ회 사무국장직을 내려놓았다.

ㄹ사 대표는 <한겨레21>에 “최서현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한 결과 산재보상법상 산재로 인정되지 않았다”며 보상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ㅈ씨도 “돈을 주지 않고 최서현에게 일을 시킨 적은 없다. 오히려 최서현에게 돈을 빌려줬고 받지 못했다”며 “회비 횡령도 사실이 아니다. 키즈카페 운영 통장은 현금카드가 없어 돈을 개인 통장으로 옮겨 사용했으며, 모두 증빙했다”고 반박했다.

애초 의성군 ㅍ회 회장이던 ㅈ씨는 2023년 말 ㅍ회 경상북도 연합회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ㅍ회 본부는 최서현의 문제 제기를 인지하고, 2024년 3월 초 ㅈ씨를 회장직에서 해임했다. 최서현의 어머니는 2월13일 ㅈ씨를 아들에 대한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의성경찰서 수사 담당자는 “휴대전화 포렌식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할 계획”이라며 “5월 이후에야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 지역 창업 사업 3년차, 15팀 중 3곳 이하 생존

여러 문제가 최서현을 괴롭혔지만, 최서현의 비극에서 귀농·귀촌 청년들이 겪는 보편적 문제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의성에 귀농·귀촌으로 이주했던 다른 청년들도 최서현처럼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의성군청의 자료를 보면, 2024년 1월 기준으로 최근 5년 동안 귀농·귀촌 사업 지원을 받은 의성 청년창업팀(팀당 1~4명)은 143곳(준비 중인 12곳 포함)인데, 이 가운데 23.8%에 이르는 34곳의 폐업이 확인됐다. 이는 폐업을 확정한 청년의 통계여서 실제 의성을 떠난 귀촌 청년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인구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 유입’ 통계만 집계할 뿐 유입했던 청년이 얼마나 떠났는지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

귀촌 청년들은 2022년 경북도 등이 주관한 ‘경북청춘 창업드림 지원사업’으로 의성에서 창업한 15팀의 경우, 사업 3년차임에도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3곳 이하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의성에서 창업했던 ㄱ씨는 “창업하고 의성에 3~5년 이상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촌 청년 ㄴ씨도 “실제 100명이 들어왔으면 10명이 남아 있을까 말까 한 정도”라며 “군청의 통계는 이름만 유지한 곳까지 합친 수치”라고 말했다.

의성군의회도 2023년 군 행정 사무감사에서 ‘폐업 및 이탈자들이 생기지 않고 의성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 및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여주기 바랍니다’라며 청년들의 이탈 문제를 지적했다. 의성군의 귀농·귀촌 청년 유치는 청년인구 감소를 막지는 못했다. 의성군의 20·30대 인구는 2019년 말 6921명에서 2023년 말 5378명으로 줄었다. 의성군청 관계자는 “2023년까지 기존 4년 동안은 신규 창업 청년을 지원하는 것 위주로 인구 유입 정책을 했는데, 이탈하는 사람이 발생했다”며 “2024년부터는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정착하는 후속 지원을 개발하려 한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청년들은 왜 떠나는 걸까. 이는 비단 의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농어촌과 귀농·귀촌 정책 전체의 문제다. 먼저 경제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청년이 귀농하려면 시작부터 많은 빚을 져야 한다. 게다가 청년이 운영하는 1만 평(약 3만3천㎡) 이하 소규모 농업으로는 이익이 나기 쉽지 않다. “귀농인의 경우 경제적 문제가 없을 수 없어요. 땅값이 올라서 1천 평 농사를 하려 해도 2억원이 듭니다. 젊은 귀농인이 부채가 몇억원 있는 상태로 농사를 시작하는데, 부모의 지원이 없는 이상 부채를 갚아나가기 힘들어요.” 이영수 사람사는농원 대표(경북 영천 귀농인)가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2022년 귀농·귀촌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귀농 5년차의 연평균 가구소득은 3206만원에 불과하다. 귀농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5.4%가 소득 증가 등을 위해 농외 경제활동을 수행한다고 답했다.

“네트워크가 없으면 하나로마트 납품도 어려워”

이런 상황에서 소득 증가를 위해 설비투자를 늘려도 결국 빚 부담을 떠안게 된다. 2021년 부산에서 의성으로 귀농한 김도현(40)씨는 스마트팜 설비로 딸기농사를 하는 데 모두 5억원의 초기투자금이 들었다. 정부 보조금 1억5천만원에 더해 자비 1억5천만원을 들였고, 나머지 2억원은 농협 융자로 충당했다. 이렇게 설비투자를 해도 1년 매출은 1억원, 순이익은 5천만원 이하다. 여기에다 2024년 12월이 되면 농협 융자 거치 기간 3년이 끝나서 매달 융자금 2억원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융자금 상환을 시작하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농업을 했던 분들은 땅과 기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설비를 계속 추가해줘야 하니 경제적 부담이 큽니다.” 김도현씨가 말했다.

농업에서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리려면 노동력에 더해 유통망과 노하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 또한 귀농을 위해 이주한 청년들에게 불리한 요소다. 전북 남원으로 귀농했던 이원석씨는 “귀농한 뒤 지역 네트워크가 없으면 동네의 하나로마트에 납품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판로를 만드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귀농 청년뿐 아니라 귀촌 창업 청년도 지역 상권 규모가 작아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군은 인구가 적어서 상권이 활발하지 않아요. 창업하면 3년 이상 점포를 유지해야 하고, 위약금을 물지 않으려면 거주 기간을 채워야 하는데 수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아르바이트해 점포를 유지하는 청년도 생겼어요. 귀촌하면 생활비가 적게 드는 것도 아닙니다. 임대주택 자체가 적어서 도시와 월세가 비슷하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난방비도 많이 들어요.” 의성 귀촌 청년 ㄴ씨의 말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청년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24년 3월2일에도 경북 상주에서 샤인머스켓농사를 짓던 ㅎ(47)씨가 숨졌다. ㅎ씨는 20년 전 귀농해 상주에 정착했으나 최근 기후붕괴와 농가소득 감소로 농업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가 큰 빚을 지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가 생각하는 꿈이 정말 방대하다.” 청년 농부 최서현은 경북 의성군에서 테마파크 등을 만드는 원대한 꿈을 꿨다. 류우종 기자

“제가 생각하는 꿈이 정말 방대하다.” 청년 농부 최서현은 경북 의성군에서 테마파크 등을 만드는 원대한 꿈을 꿨다. 류우종 기자


이주 청년이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텃세를 겪는 일도 적지 않다. 3년 전 귀촌해 문화사업을 하는 ㅂ(31)씨는 “원래부터 그 지역에 살지 않았던 이주 청년 입장에서는, 그 지역의 오래된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해야만 농업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면이 많다. 이런 관계 안에서 갈등을 겪을 경우 농촌에서 외지인이 고립된다. 외지인 입장에서는 엄청난 압박이다”라고 말했다.

고령인구가 많은 농촌마을의 보수적인 문화도 청년들의 적응에 어려움을 안긴다.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 (마을 어른들에게) ‘여자애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봐도 마찬가지 반응이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지역에 오면 30대라고 해도 50·60대 결혼하지 않은 남성을 소개하려는 분도 계셨어요. 저는 여성이고 어리고 연고가 없고 소수잖아요. 그런 일은 웃으면서 넘길 수밖에 없어요.” 의성으로 귀촌한 여성 청년 ㅁ씨의 말이다.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하고 몇 달 동안 영문도 모른 채 손님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청년이 있었어요. 당시 마을 이장님한테 인사를 간 이후에야 손님이 조금씩 왔다고 해요. 이런 상황이니 이장님이나 지인이 오면 싸게 드려야 하고, 주말에 문을 안 열면 열라고 강요해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도 있었어요. 이곳은 인사하고 동네 쓰레기 줍고 다니는 그런 청년, 재능기부와 헌신을 할 수 있는 청년을 원해요.” 의성 귀촌 청년 ㄴ씨의 말이다.

프로젝트 설계는 잘돼도 세심한 정책 없어

근본적으로는 ‘인구 증가’에만 방점이 찍힌 채 정착 이후 삶을 챙기지 않는 귀농·귀촌 청년 정책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프로젝트 설계는 잘됐지만 지역 주민과 교류하거나 주민의 인식을 변하게 할 세심한 정책은 없는 것 같아요. 주소를 이전했으니 됐다는 식입니다.” 의성 귀촌 청년 ㄷ씨가 말했다. ㅂ씨도 “‘너 얼마 줄 테니 올래’ 같은 식으로 사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 증명되고 있고, 대안을 내놓기가 어렵다”며 “그런 상황에서 의성이 지역소멸로 주목받다보니 실적 압박이 있고, 그렇게 정책을 추진하다보니 장기적 비전을 고민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청년들은 최서현의 비극이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머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특히 최서현이 마을에서 인정한 “성실한” 청년이었다는 점이 이들의 아픔을 더욱 크게 했다. “저도 외지에서 온 청년인데 계속 살 수 있을지 암담함을 느꼈어요. 제가 그분(최서현)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드렸거든요. 그 사진 속에 그분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어요. 저렇게 힘든 일이 있는 줄 모르고…. 이렇게 무관심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어요.” 의성 귀촌 청년 박진영(41)씨의 말이다. “최서현이 활동을 많이 할 때는 지자체가 행사에도 많이 부르고 모두가 그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딱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지역에서 최서현을 언급하는 것조차 쉬쉬하는 분위기예요. 좀 무서웠죠.” ㄷ씨가 말했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낸 최서현은 장기 손상이 심해지며 2024년 3월8일 숨을 거뒀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몇몇 가족과 친구가 모여서 연 간단한 추모식으로 장례식을 대신했다. 최서현의 주검은 이틀 뒤인 3월10일 화장했다. 향년 29. 최서현이 대구에서 농업의 꿈을 갖고 귀농한 지 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의성(경북)=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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