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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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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과 수평의 세계

등록 2024-02-27 15:56 수정 2024-03-01 13:33
2024년 2월16일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도중 석사 졸업생 신민기씨가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대통령경호처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2024년 2월16일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도중 석사 졸업생 신민기씨가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대통령경호처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2024년의 세계는 수직과 수평을 가로질러 읽을 수 있다. 수직은 불평등을 보는 시선이다. 아래위로 나뉘는 불평등의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발표한 ‘불평등 주식회사’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3년 사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슈퍼 리치’들의 자산은 두 배 넘게 늘었다. 전세계 약 50억 명의 사람들은 같은 기간 더 가난해졌다.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23년 7월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일부 진전이 있던 성평등 성과는 정체되고 있다. 심지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퇴보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도 지역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난다. 가난한 나라는 기후위기에 따른 홍수와 가뭄, 폭풍으로 인한 사망률이 15배나 높았다. 전세계 기후 피해의 약 75%는 가난한 나라에서 발생하지만, 온실가스의 약 80%는 한국이 포함된 주요 20개국(G20)이 배출한다는 사실도 명징하다.

수평은 동시대적 보편성을 살피는 눈이다. 세계의 민주주의는 어느 곳 하나 특별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함께 나빠지고 있다. 수직적 불평등 구조를 만든 책임은 가진 자와 권력자들에게 있는데, 시민들은 힘을 모아 이들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옆에 서 있는 여성과 이주노동자, 장애인, 빈곤층 같은 동료 시민들을 혐오하는 손쉬운 선택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이 흐름을 타고 법적 권한과 제도를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와 일부 팬덤의 열광적 지지를 매개 삼아 권력을 창출하는 포퓰리즘을 결합해 시민들을 길들이고 있다. 복종하지 않는 시민은 즉각 배제한다.

한국은 이런 수직과 수평의 세계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한국은 2022년 현재 상위 1%가 국민소득의 14.7%,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46.5%를 거머쥐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선 빈곤층이 쓰러지고 있다. 2023년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더욱 문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에서 빈곤과 소수자성을 두고 조롱하는 반응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정치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한쪽의 정치에선 감시받지 않은 검사 2명이 정부와 여당의 권력을 분점하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하고, 다른 한쪽의 정치에선 야당 대표의 ‘사천 논란’에 따른 당내 분쟁에만 골몰하고 있다. 게다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양쪽의 거대한 정치세력 외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길마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하다. 최고권력자는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고 이들을 표현의 장에서 축출하고 있다. 법은 여기에서 말을 틀어막고 몸을 끌어내는 권력이 아니라 말하려는 시민을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이 파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에도 문화비평가 손희정은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처럼 “‘망했다’는 좌절감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아름다운 자세를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독자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한겨레21>이 따뜻한 마중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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