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몇 주 전 피부과에서 ‘과소비’를 했다. 목 부위에 오랫동안 묵힌 편평사마귀들이 점점 눈에 거슬리게 진한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딱히 불편하지 않아 방치했는데, 그대로 두면 점점 번진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는 치료를 결심했다.
내가 찾아간 의원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편평사마귀까지 꼼꼼히 찾아내 없애주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병원 누리집에는 편평사마귀 치료에 특화된 최신 레이저 기기의 소개와 함께, 편평사마귀 재발을 늦추려면 되도록 전부 없애야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나 역시 기왕이면 싹 다 없애고 싶었다.
거사의 날, 진료실에서 의사는 나를 거울 앞에 앉히더니 내 얼굴 한쪽에 스탠드 불빛을 비췄다.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던 좁쌀 모양의 돌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모두 편평사마귀라고 했다. 원래 계획은 목에 있는 갈색 사마귀를 없애는 것이었는데, 졸지에 있는지도 몰랐던 얼굴 사마귀까지 치료하게 됐다. 준비한 금액의 두 배를 내고 온 내게 남편은 “호구 잡혔다”며 놀렸다.
돈만 갑절이 든 것은 아니었다. 레이저 시술은 피부에 레이저를 조사해 병변 부위의 조직을 태우는 것이기에, 인위적으로 생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레이저 기기가 개발되고 의사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상처 나고 약해진 피부를 돌보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시술 부위에 일정 기간 물이 닿지 않게 하거나 선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으면 염증이나 흉터, 색소 침착이 생길 수 있다는 무서운 잔소리를 듣고 나니, 기껏 돈 들여 가꿔놓은 피부에 이전에 없던 흉이 생길까봐 걱정됐다. 이번 치료의 황금률은 시술 부위에 습윤밴드를 잘 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얼굴과 목의 굴곡에 맞춰 습윤밴드 조각을 빼곡하게 붙여주면서 일주일 동안 떼지 말라고 했다. 얼굴까지 습윤밴드를 가득 붙이고 있으니 답답할뿐더러 외출이 어려워 일상에 차질이 생겼다. 닷새 만에 습윤밴드를 떼어냈지만, 한동안 붉은 자국과 가려움증이 없어지지 않아 몸도 마음도 고생스러웠다.
그래서 박멸에 성공했을까? 의사만 볼 수 있는 투명한 사마귀까지 찾아 없애고 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편평사마귀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 있었다. 병원에서는 시술받은 부위에 편평사마귀가 다시 옮지 않도록 시술받지 않은 부위와 수건을 분리해서 쓰고, 얼굴에 쓰는 화장품을 모두 바꾸라고 했다. 집안 곳곳에, 내가 자주 쓰는 물건에, 내 몸 어딘가에 편평사마귀 바이러스가 묻어 있지 않을까 불안했다. 내 몸을 숙주로 삼은 편평사마귀가 가족에게 옮겨갈까 걱정됐다.
“옮을 거면 진작에 옮았겠지.” 다시 남편의 핀잔에 정신이 번쩍 들어, 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몸과 내 물건, 내 집까지 청정 구역으로 만든다 한들, 세상 온 천지에 편평사마귀 바이러스가 남아 있다. 무언가를 ‘완전히’ 퇴치하려는 욕망은 더 많은 불안을 자아내고 더 고된 노동으로 이어진다. 이미 오랜 시간 편평사마귀와 별 탈 없이 함께 살아봤으니,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모른 체해주련다. 박멸의 쾌감을 위해 값비싼 비용을 치른 뒤에야 그 과정에서 쓰이는 몸과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장하원 과학기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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