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독일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전경. 혜화1117 제공
‘외국어 순례자’로 유명한 언어학자 로버트 파우저를 도시 연구자로 데뷔시키는 책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도시독법>(각 혜화1117 펴냄)은 미국 출신의 다국어 능력자이자 수십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거주한 도시 생활자로서 저자의 경험과 탐구를 쏟아부은 책이다.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래된 도시들이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이유를 살피면서 문명의 명암까지 살폈다.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유지돼온 각국의 도시는 역사의 퇴적물이자 욕망의 집적물이었다.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려는 목적은 각기 달랐다. 저자가 살펴온 ‘도시경관 보존의 법칙’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첫째, 제국의 수도라는 상징성을 극대화한 제국의 전시장이거나 둘째, 그 도시의 좋았던 옛 시절을 남겨두려는 부르주아계급의 경관 보존 실험장이거나 셋째, 국가 주도의 애국심 고취 학습장.

1960년대 로마 관광지도. 혜화1117 제공
로마제국의 도시 로마와 1100여 년 동안 일본 수도였던 교토는 19세기부터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려 노력해온 곳이다. 로마는 가톨릭교회가 중심이 돼 옛 제국의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기독교 문화유산을 후대에 남겼다. 교토의 사찰과 신사는 일왕, 권력자, 귀족,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지원으로 유지·관리·복원됐다. 종교 전통을 계승하고 신앙생활을 돕는 것이 이 두 도시 유지와 보존의 큰 동기였다.
미국 도시들은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과 계층화된 공간의 변모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찰스턴, 뉴올리언스, 샌안토니오의 보존 활동은 1920년대 부유층 백인 여성들이 ‘오래된 집 지키기 모임’을 결성하면서 시작했다.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에는 문화예술인, 사회운동가, 성소수자, 이민자가 모인 새 공동체가 도시에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부여했다. 20세기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모여들던 뉴욕 그리니치빌리지는, 그러나 오늘날 맨해튼에서 집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가 됐다. 서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에 모인 사람들이 벌인 불법거주운동은 진보주의, 반체제적 성격이 강했다. 크로이츠베르크와 쇠네베르크도 서베를린의 펑크와 인디 음악 중심지가 되고 ‘힙한’ 동네로 떠올랐지만 이 움직임은 어김없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왔다.

1961년 무렵 미국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 지도. 뉴욕 공립도서관. 혜화1117 제공
문화예술인과 진보주의자가 해방구 삼아 찾아온 동네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심는 것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역사’를 남기기 위해 경관 보존 운동을 벌인 부유층의 행동주의와 다른 것일 수 있을지 저자는 묻는다. 바로 이런 점이 도시연구자로서 로버트 파우저가 빛나는 지점이다. 세계 곳곳에 손때 묻은 삶터가 사라지고 화석화된 ‘예쁜’ 동네가 출몰하는 이 시대, ‘도시는 누구의 것이며 누구의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 자신, 도시경관 보존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고 한국·미국·일본의 옛 도시가 가진 정취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성찰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이런 저자의 생각에 영향을 준 부모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함께 나온 <도시독법>은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2019, 혜화1117 펴냄) 개정판으로 기획했지만 추가된 내용이 많고 이미지 등도 전면적으로 바꿔 완전히 다른 제목과 표지를 입고 다른 책이 되어 나왔다. 저자의 애정이 담뿍 담겨 읽는 맛이 있고 서울, 대전, 대구, 전주, 부산, 인천 등 한국의 도시 이야기가 반갑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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