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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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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읽으며 ‘전사의 노래’ 듣다 [올해의 책]

2023 올해의 책, ‘한겨레21’이 출판인, 서점인, 작가 등 5인에게 물었다
등록 2023-12-15 17:57 수정 2023-12-19 13:52
사진 변준언

사진 변준언

2023년 출판계는 흉흉했다. ‘코로나19 특수’가 사라져 사람들은 손에서 책을 놓고 집 밖으로 떠났다. 6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간여한 의혹이 있는 소설가를 홍보대사에 위촉했다며 항의하러 나섰다가 대통령실 경호처 직원들의 손에 쫓겨났다. 대통령 부인이 축사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7월, 정부는 ‘출판계 이권 카르텔’이 있는 것 같다며 출판인들을 겨냥했다. 8월, 유례없는 불경기에 더해 정부가 예산을 삭감하자 출판인들은 궐기대회를 열고 출판정책을 규탄했다.

책을 쓰는 일, 만드는 일, 파는 일, 사는 일, 읽는 일 모두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됐지만 불황 속에서도 양서는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한겨레21>은 올해의 책을 결산했다. 출판인, 서점인, 작가 5명에게 각자 ‘올해의 책’을 꼽아달라 요청해 싣고 <한겨레21>이 선정한 책들을 소개한다.

돌봄과 죽음을 내 삶에 포개며

박진창아 제주 달리책방 대표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어머니를 돌보다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돌베개 펴냄

제목도 제목이지만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나를 대변해주는 것만 같아 간절하게 부여잡고 읽은 책이다. 병든 부모를 돌보는 자녀들의 사정과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면서도 닮아 있다. 책의 마지막 장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에 진하게 밑줄 긋는 심정이 고요하고 먹먹하다.

팔순의 엄마와 산 지 9년을 꽉 채워간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골다공증·어지럼증 등 여러 기저질환을 가진 노모의 앓는 소리가 애처롭다가도 짜증이 터지고, 알뜰살뜰 챙기다가도 격하게 ‘도망치고’ 싶어진다. 사납고 짠하고 독하고 질긴 사랑을 하고 있다. 기질도 취향도 다른 식구가 티격태격하는 일상이 그대로 ‘살아가는 방편’인 줄 알면서도 생의 고달픔은 다 저만큼의 무게. 우리가 서로를 잘 아는 건지, 잘 알아가는 건지 질문하다 매번 흔들리고 넘어지길 반복한다. 그렇게 나이 듦과 노년, 고통과 고독, 돌봄과 죽음을 내 삶에 조심스럽게 포개며 알아챈다. 이 삶을, 이 관계를 온전히 잘 품어내기 위해 공부하는 자리, 수행하는 장소가 바로 엄마 옆자리임을.

20자평

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죽음’이라는 끝을 노려보며 한 번뿐인 이 삶을 와락 끌어안게 한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지음, 난다 펴냄
사계절 내리는 눈이 그저 고와서 ‘오늘도 정하게 살게 해줘요’ 속삭이지 않을 수 없는.

촉진하는 밤
김소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시인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감사함. 이생(生)의 ‘촉진과 척력’을 기필코 헤아리게 이끌고.

멀리 오래 보기
비비언 고닉 지음, 이주혜 옮김, 에트르 펴냄
읽고 쓰는 사람이면 부디 펼쳐보기를!! 자기의 ‘페르소나’를 찾아보게 됨.

요즘 떠오르는 지역사 연구의 본보기

임윤희 나무연필 대표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혼돈의 지역사회 상·하
박찬승 지음, 한양대학교출판부 펴냄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기까지 전남 목포·나주·영광·강진·능주의 사회사를 연구한 학술서. 목포대에 부임한 역사 연구자가 자신의 터전이 된 지역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그러모았다. 이후 필자는 서울의 대학으로 옮겨왔지만 연구를 계속 이어갔고, 정년을 맞아 이를 책으로 펴냈다.

좌우파 등의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며 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양상을 타 지역과도 견줘볼 수 있게 정리해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필자가 섣불리 상황을 요약하지 않고 자신이 듣고 읽은 내용을 하나하나 펼쳐놓은 뒤 이들의 아귀가 맞지 않는 지점을 요모조모 견주면서 신중하게 자기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짧은 요약이 대세인 시대에 맞지 않는 책일지 모르겠다. 내 무지 탓이겠지만,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 중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필자가 켜켜이 쌓아올린 결들을 섬세하게 따라가다보니 묵직한 무게감이 온몸을 덮쳐왔다. 이후의 전남 지역사 연구에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 분명한 책이다.

20자평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
황의현 지음, 씨아이알 펴냄
이슬람 입문서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권할 책.

애니미즘과 현대 세계
유기쁨 지음, 눌민 펴냄: 동식물에 대한 관점과 시야를 촘촘히 넓혀준다.

화석 자본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위대현 옮김, 두번째테제 펴냄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주의를 되짚어보는 이정표.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본다는 것’의 통념을 과감하게 깨트린다.

‘여자+노숙자’가 가진 가공할 만한 불편함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진희 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이 책의 말과 말 사이는 다른 책들의 그것에 비해 넓다. 뭉텅뭉텅 비어 있는 맥락 없는 이야기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쭉 읽노라면 편집자로서 한두 문장을 덧붙여서라도 손보고 싶어진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에는 수도꼭지에서 음식이 다 나와요. 모르세요? 저기 세면대에 달린 것처럼 물 틀어 쓰는 수도꼭지 있잖아요. 그걸 틀면 배추김치도 나오고, 총각김치도 나오고….” 이쯤에서 책을 덮은 이도 몇 있지 않았을까. 다만 나는 그 이야기들이 가진 힘이 마치 전설처럼 들리기도 해서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고나서 책을 다 읽고는 꽤 오래 이 책에 대해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좋은 책일까/아닐까, 나는 왜 이런 책을 만들지 못했을까/않았을까, 과연 내 이야기의 맥락은 그들의 그것과 비교해 무엇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는가/엉망인가.

20자평

활동가들
보리 등 지음, 빨간소금 펴냄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무색한 생생한 삶들.

이름보다 오래된
문선희 지음, 가망서사 펴냄
이거야말로 자연을 바라보는 급진적 태도.

피투자자의 시간
미셸 페어 지음, 조민서 옮김, 리시올 펴냄
맨날 쥐어박혀 우울한 좌파들에게 권한다.

국가에 관한 질문들
기욤 시베르탱-블랑 지음, 이찬선 옮김, 오월의봄 펴냄
한줄 한줄 까다롭지만, 진정한 철학 교과서.

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논하지 말라, 이 책 없이

김도현 비마이너 대표·<장애학의 도전> 저자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전사들의 노래
홍은전 지음, 훗한나 그림, 오월의봄 펴냄

지금도 매일같이 투쟁 현장에 나서고 있는 장애해방운동가 6명, 박길연·박김영희·박명애·이규식·박경석·노금호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전사’는 싸우는 사람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에 맞서 싸우는가?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 대부분이 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향해 혐오의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이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들의 요구와 싸움을 이해한다고 믿는 이들 역시. 그러니 ‘다 이해한다’ 생각 말고 부디 이 책을 읽어주시길. “모든 방법을 다 쓴 사람이 결국 도착하는 곳”, 그곳에서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토해내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전해져 올 테니.

20자평

돌봄과 인권
김영옥·류은숙 지음, 코난북스 펴냄
돌봄 사회로의 전환을 향한 인권의 재구성.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펴냄
이런 학자가 우리 곁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논리적인데 따뜻한 책.

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펴냄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텍스트.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모하메드 아부엘레일 라셰드 지음, 송승연·유기훈 옮김, 오월의봄 펴냄
야심 차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후 성실하고 섬세하게 답변한다.

‘검찰정권’에 이르기까지 진보정권 분석

조선희 작가·북카페 책읽는고양이 대표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한겨레21 2023년 올해의 책

진보 재구성과 집권 전략
원희복 지음, 썰물과밀물 펴냄

개혁진보의 미래는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저자는 보안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12·12 군사반란과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고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검찰 쿠데타의 양상이 흡사하다고 본다. 2023년 한 해의 가장 중대한 사안은 지난해에 이어 여전히 ‘대통령 쇼크’. 30년 민주화에 대한 백래시(반발) 속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 책이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집권 전략’이 나와 있진 않다. 검찰 정권에 이르는 길에서 진보정권이, 진보진영이 어떠했는지 분석한다. 냉정한 자기성찰, 그것이 진보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지점이다.

20자평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 1·2
장남주 지음, 푸른역사 펴냄
베를린 역사 기행 가이드의 최종판! 

한국영화가 사라진다
이승연 지음, 바틀비 펴냄
글로벌 전성기와 산업적 위기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어디로?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도서출판 강 펴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보내는 팔레스타인 여성작가의 시선.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테크놀로지 변화의 역사, 그 기술진보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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