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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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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18개월 징역인데 11년 가뒀다…이게 위법이 아냐?

판결문 보면 오늘날 장애인 삶이 보인다… 2023년 장애인 인권 걸림돌 판결 요약
등록 2023-11-04 15:11 수정 2023-11-09 23:01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을 은폐한 경기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 평강타운이란 이름으로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2021년 2월9일 평택=이정우 사진가

장애인 폭행 사망 사건을 은폐한 경기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 사랑의집 전경. 평강타운이란 이름으로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2021년 2월9일 평택=이정우 사진가


현실의 여러 벽 앞에 부딪힌 장애인은 고민 끝에 법을 통한 권리구제에 나서지만, 또다시 좌절을 경험할 때가 많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는 법원 판결들을 모니터링해, 장애인의 실질적 권리구제가 얼마큼 진보하고 후퇴하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과제를 남기는지 파악한다.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는 2023년 장애인 인권 ‘걸림돌 판결’ ‘디딤돌 판결’ ‘주목할 판결’을 선정했다. “한 편의 판결문은 그저 종이 몇 장이지만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삶이 있으며, 흩어져 있는 판결들을 따라가다보면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가 보인다.”(노태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아래는 줄인 내용으로, 자세한 사항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걸림돌 판결
치료 안 되는 발달장애인, 치료 이유로 11년 구금… ‘정당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21913)

지적장애인 ㄱ씨는 2009년 친족 성폭력 범죄로 징역 1년6개월과 치료감호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실제 치료감호소에서 보낸 시간은 11년5개월. 형기의 약 8배에 달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ㄴ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준강도 혐의 등으로 2019년 징역 1년6개월과 치료감호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긴 2년4개월간 치료감호소에 구금됐다.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는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치료’란 이름으로 장애인을 구금하는 것은 그냥 장애인을 가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소송대리인은 ‘치료감호소 수용시설은 수용자 1인당 4.9㎡(약 1.5평)에 불과’한 점, ‘1천여 명이 수용된 시설에 정신과 전문의는 12명’에 불과한 점, ‘치료감호심의위원회는 매월 일정한 날 평균 253건을 기계적·형식적으로 심사해 원고들의 사회 복귀 시점이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 등을 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차별행위 또는 국가배상법의 위법행위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치료 환경이 정신건강복지법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른 의료인력’이 있고, ‘치료감호 종료 심사 건수가 많다는 이유로 형식적 심사가 이뤄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김재왕 변호사는 “법원이 선고한 형량보다 (구금 기간이) 훨씬 긴 상황은 사안의 심각성을 보여주는데도, 이 판결은 국가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평가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청각장애인에게 전화로 병원 예약하라?… ‘차별 아니다’
(서울행정법원 2021구합70165)

ㄷ씨는 선천성 중증 청각장애인이다. 평소 대학병원을 자주 이용한다. 그런데 서울대학교병원, D병원의 특정 교수 진료 예약은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인터넷 예약이 불가능하고 전화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청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공평하게 예약할 권리가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인터넷으로도 진료 예약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진정(2019년)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에는 ‘의료기관으로서 각 진료의 특성과 예약 상황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예약 방식을 선택할 재량이 있다’며 ‘전화예약의 경우 본인이 아닌 대리인에 의한 예약이 가능하고, 수어통역센터 또는 손말이음센터 등을 통하여 예약이 가능하므로’ 병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표경민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수어통역센터를 통한 예약이 가능하더라도, 센터 이용량이 많은 시간대는 장시간 대기해야 하고 수어통역사가 가능한 시간에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급히 진료를 예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료 예약을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ㄷ씨는 창원경상국립대학교병원 장애인근로자 업무보조 분야에 응시했지만 청각장애인이어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합격되는 채용 차별을 겪었다는 진정도 제기했는데, 법원은 ‘해당 면접의 최종합격자 5명 중 1명이 중증 지적장애인이고 불합격자 중 경증 지적장애인 1명이 포함된 점’을 들어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시켰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표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7조 1항에 따라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차별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채용 차별 유무에 대한 증거는 채용권자에게 편중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2020년 10월12일 광주 북구청 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입 모양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마스크를 쓰고 민원 응대에 나섰다. 연합뉴스

2020년 10월12일 광주 북구청 민원실에서 직원들이 청각장애인들에게 입 모양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마스크를 쓰고 민원 응대에 나섰다. 연합뉴스

공무원시험 면접 ‘입 모양’ 봐야 하는데… ‘투명마스크 거절’이 재량?
(수원지방법원 2021구합74076)

청각장애인 ㄹ씨는 경기도 시흥시 공무원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에 응시했다. 2021년 6월 필기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다. 그는 면접이 걱정됐다. 입 모양을 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구화인’인데, 당시는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던 때였기 때문이다. ㄹ씨는 ‘면접관이 마스크 쓰면 소통이 어려운데 배려해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문의했다. 투명마스크를 쓰거나 마스크를 잠깐 벗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모든 응시자 동일 조건 유지를 위해 면접관 마스크는 KF94 착용 예정’이란 응답이 돌아왔다. ㄹ씨는 불합격 처분 취소 등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판결문에는 ‘피고들에게 면접위원의 투명마스크 착용이나 화상면접 등의 편의 제공을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과 함께 ‘편의를 제공하지 않거나 대체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것이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한 것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은 “구화인에게 다른 사람의 얼굴과 입술을 보는 것은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권리”라며 “입술을 읽어야 할 구화인의 장애 특성과 의사소통의 개별적 권한을 부정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를 무시한, 행정적·절차적 정당성만 따져본 기계적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시설 폭행으로 목숨 잃은 장애인… 일실수입 인정 안 돼
(서울고등법원 2022나2007547/서울중앙지방법원 2021가합512414)

2020년 3월8일, 경기도 평택의 미신고 장애인 거주시설에 살던 김성진(38)씨가 사망했다. 뇌성마비·지적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 성진씨 가족에게 거주시설인 ‘사랑의집’ 원장은 머리를 문틀에 부딪혔다고 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성진씨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은 미신고 시설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평택시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평택시의 70% 책임을 인정했다. 통상 장애인 시설에서 폭행과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시설 폐쇄 등으로 끝났던 것과 달리, 시설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선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손해배상책임 범위에 성진씨의 일실수입(생존했다면 벌 수 있는 수입)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는 보통 일실수입이 인정된다. 시대가 빠르게 변해 노래를 부르거나 음식 먹는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것으로도 돈을 버는 시대다. 환경에 따라 노동능력은 충분히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 쿠리치바시의 장애 학생들을 위한 안젤루 안토니우 달레그라비 터미널에서 2013년 4월22일 휠체어에 탄 장애 학생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전용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한겨레 허호준 기자

브라질 쿠리치바시의 장애 학생들을 위한 안젤루 안토니우 달레그라비 터미널에서 2013년 4월22일 휠체어에 탄 장애 학생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전용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한겨레 허호준 기자

시외버스 타게 해달라는 법정 소송 8년 만에… ‘저상버스 제공 의무 없다’
(대법원 2019다217421)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가는 것이 이렇게 힘겨울 일일까. 2014년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들이 시외버스·광역형 시내버스 운송사업자, 교통행정기관(대한민국·서울시장·경기도지사)을 상대로, ‘저상버스’나 ‘휠체어 탑승 설비’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위반했다며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8년 만에 대법원은 ‘버스회사가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개연성이 있는 노선, 버스회사 재정 상태 등을 심리한 다음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의무이행기를 정해야 한다’면서도, 버스회사가 원고들에게 ‘저상버스’까지 제공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임한결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조항을 한정적으로 해석했다”며 “시민의 발과 같은 버스는 국가 세금 지원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공공재다. 세금은 비장애인만 내는 것이 아닌데 대상 판결은 국가의 법적 책임을 면제했다”고 평가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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