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사로는 ‘참사 당일 왜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제도 개선도 할 수 없다. (참사 원인이) 실무자 한두 사람 문젠지 조직문화 문젠지에 따라 개선안이 달라지는데 국정조사와 특수본(특별수사본부) 수사로는 사회적 차원의 조사·기록이 불가하다. 한마디로 참사를 ‘설명’할 수가 없다.”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은 2023년 10월23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과제 보고회’에서 이태원 참사 독립조사 기구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10·29 이태원 참사 1년이 지났지만 참사의 인과관계를 속 시원히 설명해줄 자료와 증언은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진상 조사는 마지막 돌파구다. 근본적 제도 개선을 위해, 나아가 공동체 신뢰 회복을 위해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최 소장은 말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부터 세월호·이태원 참사까지 굵직한 사회적 참사를 다뤄온 최 소장을 2023년 10월24일 서울 광화문 변호사회관 인근에서 만났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핼러윈 대비로 분주하다. 주말 현장에 나가보는 인원이 100명씩 되고 지능형 시시티브이(AI CCTV)도 도입한다고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각 기관이 임기응변으로 바짝 대응하면 다른 기관과 굳이 협업하지 않아도 다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민감한 시기가 지나고 ‘이게 꼭 우리 기관이 해야 하는 일인가’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된다. 지금은 경각심을 갖지만 모두가 느슨해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참사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고 기술적으로만 보완하는 건 편리한 해결책이긴 하지만 본질을 대체할 순 없다.”
—서울 마포구는 바닥에 미끄럼 방지 페인트를 깔고 핼러윈 축제를 금지했다가 논란이 됐다고 한다.
“지금 지자체들 머릿속에 ‘인파 사고’만 꽉 차 있다. 압사 예방에만 몰두하니 미끄럼 방지 같은 단편적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뒤 약 9개월 만에 ‘오송 참사’가 나지 않았나. 그렇게 신경 쓰겠다고 했는데 왜 또 참사가 났을까. 그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두 참사는 각각 인파 밀집과 지하도 침수로 원인이 다르지 않나.
“두 참사의 공통적 속성을 봐야 한다. 오송 참사를 먼저 보면 경찰-소방-흥덕구-청주시-충북도 등 수많은 기관이 있었다. 한 기관이라도 제대로 돌아갔으면 됐는데 아무 조치가 없었다. 이태원 참사도 경찰-용산구-서울시 등 여러 기관이 얽혔는데 어느 기관도 자기 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날 이태원에 사람이 급증할 때 어느 한 기관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다못해 동선 계획이라도 짰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 점에서 두 참사는 겹쳐 보인다.
—기관 간 협업 부재가 두 참사의 핵심 원인이라는 얘긴가.
“단순히 협업 문제가 아니다. ‘각 국가기관이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인지하고 대응하는 체계’가 부재했다. 미호강이 범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좁은 골목에 사람이 늘면 무슨 일이 생길지 각 기관이 미리 위험 요소를 찾아두고 계획을 짜야 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땐 계획이 아예 없었다고 하고, 오송 참사 땐 매뉴얼만 존재할 뿐 각 기관이 실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모든 기관이 위험에 대해 ‘같은 그림’(Same picture)을 봐야 대처가 가능한데 그러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저녁 6시34분부터 11건의 압사 신고가 있었으나 경찰과 지자체 수뇌부에 위험신호로 전달되지 않았다. 오송 참사 때도 금강유역환경청이 보낸 미호강 범람 경고 문자가 위험신호로 인식되지 않았다고 청주시와 충북도가 주장했다.
—정부는 참사 진상규명이 거의 다 됐다고 보는 듯하다. 대한민국 정부대표단은 최근 “ 경찰의 특수본 수사 및 국정조사 등 대대적 조사와 수사를 통해 대부분의 진상을 규명했다”(2023년 10월19일 유엔 자유권규약 심의회 )고 말했다. 어떻게 보나.
“그렇지 않다. 우선 특수본은 수사와 관련된 일부 현상만 보기 때문에 사안을 넓게 보지 못한다. 또 형사처벌 대상에 집중하느라 참사 배경 등 더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 국정조사도 정치 공방으로 흐르며 책임자들이 ‘ 기억이 안 난다’ 등 명확하지 않은 답변을 반복했다. 또한 책임자 위주로 질의응답이 오가니 실무자 의견은 듣기 어려웠다.”
—실무자 의견을 듣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조직이 위험에 무지했던 이유가 개인 탓인지 조직문화적 관행인지에 따라 개선 방안이 다르다. 이태원 골목 압사 위험을 개인이 미리 인지하고 보고했는데 상관이 묵살했다면 그건 조직의 문제일 것이다. 근데 개인도 막연하게 위험을 알았으나 ‘이제까지 큰 문제가 안 됐으니 괜찮을 거다’ 하고 지나갔다면 개인 역량 문제가 상대적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래서 ‘재난 위험을 미리 알았느냐’고 묻는 것은 단순히 ‘예, 아니요’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개인이 혼자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과, 그 위험 인식이 조직 전체에 공유되고 확산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참사 원인을 다층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원인 분석이 피상적이면 대안도 그렇게 나온다. 지금 정부 기조는 ‘기관 간 소통 문제가 있었으니까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로 들린다. 틀린 얘긴 아니다. 하지만 ‘소통이 왜 망가졌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원인과 대책이 동어반복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관계 기관끼리 소통도 미흡했다.
“경찰과 소방, 지자체 등 각 기관이 제각기 따로 놀았고 경찰과 소방끼리도 소통이 잘 안 됐다. 왜 그렇게 됐는지 사실 확인이 좀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방당국이 생존 가능성 있는 응급환자 대신 사망자를 가까운 병원에 많이 보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국정조사에 출석한 소방 실무자들은 ‘중앙응급의료센터 병상 정보에 근거해 응급환자를 이송했다’고 했다. 만약 그랬다면 현장 실무자의 판단 오류만 지적할 순 없고 시스템이 완비됐어야 한다. 부분만 놓고 보지 말고 전체를,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세부적으로 답할 수 있다.”
—유가족들이 그런 내용을 조사할 독립조사 기구를 요구한다(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요구). 그 필요성을 설명한다면.
“피해자들은 (재난의) 핵심 이해관계자니 재난의 이유를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가 재발 방지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도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제도를 개선하려면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한다. 지금 참사 당일 현장에 누가 있었고 뭘 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현장 대응의 문제점을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진상 조사의 목표는 개별 사실이 참사의 발생과 증폭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해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는 것이다.”
—어떤 개별 사실을 모아야 하나.
“‘왜 희생자들을 구하지 못했고 피해가 확대됐는가’라는 큰 질문을 갖고 세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사전에 위험이 어떻게 축적됐는가, 왜 대응 계획이 없었는가, 당일 급증하는 인파를 왜 간과했는가, 응급의료와 구조는 적절했는가 등을 다 봐야 한다. 그에 대해 ‘자기들끼리 놀러 가서 사고가 났다’고 답하는 건 굉장히 이상하다.”
—‘굉장히 이상하다’는 말을 더 설명해달라.
“전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기 간 것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작동하리라는 당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인파에 갇혔음을 알았을 때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사람을 향해 그 자신이 원인이라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국가가 조사를 하긴 했다.
“참사가 나면 나름대로 조사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의 문제의식과 정말 합치했는가 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가령 백서를 만들어도 공무원이 지극히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본인에게 불리한 것은 잘 안 쓴다. 기관들도 자기 책임이 있기에 잘못한 내용을 다 넣지 않는다. 그래서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백서를 쓴) 기관들이 방화자를 굉장히 부각했다. 방화 뒤 각 기관이 어떻게 대응했고 왜 구조가 늦어졌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까지 많은 참사가 비슷하게 흘러왔다. 책임자를 빨리 찾아 처벌하면 일단락된 것처럼 지나갔다.”
—국정조사와 특수본이 못한 것을 독립조사 기구가 해낼 수 있을까.
“독립조사 기구의 경우 조사자가 관점 잡기에 훨씬 자유롭다. 정치 공방(국정조사)이나 기소(특수본 수사)보다 훨씬 더 풍부한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다. 특히 행정부 내부를 지배하는 논리를 조사에 끌고 올 필요가 없다. 그래서 외국도 조사 기구에 강력한 독립성을 부여한다.
—10월24일 학술대회에서 “재난 극복은 공동체 회복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그 의미는.
“재난을 겪으면 물리적 피해만 입는 게 아니라 사회 근저에 흐르는 공동체 신뢰도 박살 난다. 2016년 서울 지하철이 선로 한가운데서 멈춘 일이 있었다. ‘지하철 안에 남아 있어야 안전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다 선로를 걸어 나왔다.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했던) 세월호 이후의 일이다.”
—참사를 폭넓게 조사하는 것도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될까.
“그렇게 될 수 있다. 특히 2차 가해 확산 등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 회복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문제다. 그 문제들을 포함해 참사의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참사를) 예측하냐”(2023년 10월22일 MBC 보도)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발언이 논란이다. 사회적 참사를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인 양 인식하는 태도는 어떻게 봐야 하나.
“자연재해도 예측 가능하다. 지진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상 데이터로 대략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사회적 참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예측을 못했다’는 말이 ‘실제 예측할 수 없었다’는 의미일 순 없다. 100명 넘는 인원이 다 같이 숨지는 건 누구도 예상 못했겠지만 한두 명이라도 그 골목에서 밀리거나 넘어질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았지 않나. 159명이 숨지면 죄가 없고 한두 명이 숨지면 죄가 있나. 그런 질문엔 뭐라고 답하겠나.”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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