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송 침수 사고 ‘인재’ 증명하는 5가지 장면

청주시, 행안부 선정 ‘재난관리평가 우수기관’이라는데
‘칸막이 관료주의’로 놓친 골든타임 4시간30분
도·시·구청 위험 인식 무디고 소통 창구도 끊겨
등록 2023-07-21 20:40 수정 2023-07-23 17:24
7월15일 오전 한 시민이 물이 차오르는 궁평지하차도를 빠져나오는 모습. ‘손오공’님 유튜브 채널 갈무리

7월15일 오전 한 시민이 물이 차오르는 궁평지하차도를 빠져나오는 모습. ‘손오공’님 유튜브 채널 갈무리

시꺼먼 지하차도 안이 흙탕물로 가득 찼다. 군인들은 쉼 없이 물을 퍼냈고 소방관들은 실종자를 수색하러 물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침수 이틀이 지나도 배수가 다 안 될 만큼 많은 물이 차 있었다.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실 종자 가족들은 까치발을 하고 안쪽을 바라보다 곧 체념하듯 고개를 떨궜다. 한 여성은 버티지 못하겠는 듯 중앙분리대에 몸을 기대고 얼굴을 묻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 “어떡하냐, 어떡해….” 가족들의 마음이 까맣게 타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충북 지역에 사흘에 걸쳐 500㎜ 넘는 폭우가 퍼부었다. 청주 미호강이 범람하던 2023년 7월15일 오전 8시40분, 깊이 4m 지하차도에 차량 16대가 들어갔다가 그대로 잠겨 14명이 숨졌다. 차량 통제 권한을 쥔 광역지방자치단체는 사태의 긴박함을 인지하지 못했고 심각성을 알았던 기초지자체는 권한 밖이라며 방치했다. 조각조각 흩어놓은 지자체의 업무 체계가 재난 예방에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하는지 우리 사회는 또다시 확인해야 했다.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왜 막을 수 없었을까. 참사 전후 다섯 가지 주요 장면을 살펴본다.

폭우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7월16일 소방 관계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폭우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7월16일 소방 관계자들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① 같은 청주 시내인데… 궁평 1차도와 2차도가 가른 차이

청주 시내를 관통하는 미호강이 위험수위까지 차오른 것은 7월15일 새벽 4시10분이다. 강의 실시간 수위를 확인하던 금강홍수통제소는 주민들과 유관기관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팩스를 보냈다.

“금강수계 청주시(미호천교) 지점 홍수경보 변경. 새벽 4시 현재 7.57m 수위 상승 중. 새벽 5시께 수위표기준 8.00m 도달 예상.”

강물은 빠르게 불어났다. 8m를 넘어 9m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침 6시34분, 통제소는 이번엔 흥덕구청 건설과에 전화를 걸었다. 미호강이 지나가는 구역을 관할하는 지자체가 그쪽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저지대 취약구간 관리 잘하고 전면 통제 후에 주민 대피하거나 지자체 매뉴얼대로 조치를 해달라.”(통제소 전달사항)

6시47분, 흥덕구청의 연락을 받은 청주시청 공무원들이 비상소집됐다. 시가 관할하는 주요 도로의 침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오송에 있는 궁평1지하차도와 오송지하차도도 순찰 대상에 포함됐다. 지하차도는 저지대를 파서 만들기 때문에 물이 범람하면 순식간에 침수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지하차도와 멀지 않은 궁평2지하차도는 순찰 대상에서 빠졌다. 이곳은 청주시 관할이 아니라 충북도 관할이라는 이유에서다. 다 같이 청주 시내에 밀집된 도로라도 행정 관할 주체는 도로법에 따라 잘게 쪼개져 있다. 해당 차도의 차량통제 권한도 관할 주체인 충북도가 갖고 있었다. 관할 주체인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는 침수될 때까지 궁평2지하차도를 순찰하거나 차량을 통제하지 않았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국민의 생명 보호 의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진다. 궁평2지하차도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다. 차도 침수가 주민들에게 미칠 위험을 고려하면 관할이 아니라도 시청·구청이 도청에 심각성을 전달하고 도로 통제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지자체는 각 지역 침수 대응에 바빠 충북도 관할 도로까진 챙길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② 연락 수차례 받고도 심각성 인지 못한 충북도청

충북도는 궁평2지하차도를 왜 주시하지 않았을까. 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는 금강홍수통제소가 새벽 4시10분에 보낸 홍수경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도로 통제를 해야 할 만큼 사안이 심각하다고 인지하진 못했다고 한다. “금강홍수통제소가 보낸 문자는 그냥 상황을 알려주는 문자였다. 차도 통제를 하라는 안내나 지시라고 받아들여지진 않았다.”(충북도 관계자) 충북도는 미호강의 범람 위험을 알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실무자의 연락도 세 차례 받았으나 ‘시청에도 알렸다’는 말에 단순 참고만 했다고 한다.

충북도는 궁평2지하차도에 물이 얼마나 차는지 ‘수위계’로만 원격 모니터링 중이었다. 저지대로 대량의 물이 갑자기 들이치는 사고는 수위만 봐서는 즉각 대응이 어렵다. 2020년 7월 부산 초량 지하차도에서도 10여 분 만에 물이 차올라 차량 7대가 고립되고 3명이 숨졌다. 충북도 관계자는 “매뉴얼상 터널 중앙에 물이 50㎝ 이상 차야 차량 통제가 가능한데 오송 지하차도의 경우 물이 갑자기 쏟아져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다수 언론 인터뷰)고 했다.

“기관마다 쓰는 언어가 다 달라 도로관리사업소 실무자가 단번에 위험정보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쓰는 언어를 미리 조율해 실전에서 문자를 빠르게 해석하고 심각성을 판단하는 것까지가 사전 재난대응 계획이다. 지금 상황이 얼마만큼 심각한지, 누구에게 무슨 연락과 조처를 해야 하는지 아는 게 사전 계획의 핵심인데, 그런 점이 부족했을 수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한승헌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청주시와 충북도는 각각 7월과 4월에 사전 재난대응 모의훈련을 했다고 한다. 유관기관 사이 공조·협업하는 훈련도 포함됐다. 하지만 실전에선 제 기능을 못했다.

③ 내·외부 소통에 실패한 청주시청과 흥덕구청

아침 8시40분, 물 6만t이 일시에 지하차도로 쏟아져 들어갔다. 차량 16대가 물에 잠겼다. 침수 위험이 큰 지하차도인데도 침수 직전까지 차들이 통행했다. 이유가 있다. 7시30분께 탑연삼거리 등이 침수로 차량 통제되자 거리에 있던 차들이 우회 가능한 도로를 찾아 궁평2지하차도로 간 것이다. 평소 그 노선으로 지나지 않던 747번 버스도 이 차도를 이용했다가 침수됐다.

그런데 청주시 대중교통과는 차도가 침수된 8시49분에도 우회로를 문의하는 버스회사들에 ‘궁평2차도로 가라’고 안내했다. 이미 소방대원들이 침수 현장에 출동했고 청주시청 재난안전상황실로도 상황이 공유된 뒤였다. “궁평2차도가 침수됐다는 정보가 대중교통과까지 전파가 안 됐던 것 같다. 평소에도 모든 과에 다 전파하지는 않고 관련 부서에만 알린다.” 청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위험정보를 청주시청 내부 부서끼리도 공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747번 버스가 어떤 경위로 궁평2지하차도로 우회했는지 파악 중이다. 청주시는 버스회사의 문의를 받은 최초 시점이 아침 8시20분 이후라 747번 버스까지 시청 안내로 우회지는 않은 거라고 본다. 반면 동료 버스 기사들은 기사가 임의로 노선을 변경하는 행위는 불가능하다고 여러 언론에 밝혔다.

흥덕구청도 직원들끼리 위험정보 공유가 안 된 정황이 있다. 사고 첫날인 7월15일 흥덕구청 건설과는 ‘금강홍수통제소의 위험 통보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금강홍수통제소가 아침 6시34분 흥덕구청 건설과로 전화해 위험 상황임을 알렸는데 정작 흥덕구청 쪽은 연락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흥덕구청은 이튿날인 16일 “한 직원이 통보받은 것을 확인했다. 주민 통제·대피 등 매뉴얼대로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애초 금강홍수통제소의 연락 자체를 위험정보로 인식하지 않았거나, 전화받은 직원이 관련 위험정보를 내부에 적극적으로 전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7월 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시신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7월 16일 119 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시신을 수습해 물 밖으로 인양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④ 무너진 공조 체계로 유명무실 ‘재난 컨트롤타워’

법적으로 도로 차량 통제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는 경찰이다. 도로교통법상 경찰은 도로 위험을 방지해야 할 때 차량 통행을 금지할 수 있다. 침수 당일 미호천교 확장 공사를 하던 행복청 감리단장도 아침 7시4분과 7시58분 두 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흥덕구청 등에 알리고 침수된 탑연삼거리 인근을 통제했다. 그러나 사고 현장인 궁평2지하차도에는 오전 9시1분에야 도착했다. 이미 침수된 지 20분이 지난 시점이다.

충북경찰청 쪽은 침수 대응에 바빠 궁평2지하차도까지 확인하긴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윤성철 충북경찰청 지역경찰계장은 “그날 아침 5~9시 흥덕경찰서에 들어온 신고만 106건이라 가용 인력이 거의 없었다. 타 경찰서 인력도 다들 침수 대응을 하고 있었고 출동하기에 먼 지역에 있어 (지원이)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근무 직원 3명인 오송파출소에서 1명은 궁평1교차로로, 2명은 쌍청리교차로로 출동해 주민 대피와 도로 통제를 맡았다.

소방당국도 궁평리 주민의 신고 내용을 청주시청 당직실로 전달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청 쪽은 “그날 아침 신고가 워낙 많아 모두가 대응하기 바빴다”고 설명했다.

재난 상황이 되면 위험 신고가 동시다발로 빗발쳐 재난대응 인력이 크게 부족해진다. 인원 배치 권한이 있는 중앙기관이 사안을 빠르게 판단해 인원을 증원해야 하지만 사고 당시 그런 조치가 없었다. 직제상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은 재난대응을 총괄하는 지역 재난안전대책본부(재대본)다. 재난 위험정보를 한데 모아 전파하고 기관들의 업무를 지휘·조율한다. 그러나 사고 당일 각 기관은 재대본에 위험정보를 모으지 않고 임의의 대상에게 개별적으로 전파했다. 금강홍수통제소는 흥덕구청 건설과에, 흥덕구청은 청주시청 하천과와 안전정책과에 제각기 따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 결과 금강홍수통제소의 위험경보와 119·112 신고가 흥덕구청과 청주시청 일부 담당과로만 전달되는 데 그쳤다. 재대본의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이 유명무실했던 셈이다.

⑤ 장마 코앞 임시 제방 헐고 쌓아도 관리 안 돼

궁평리 주민들은 침수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미호천교 확장 공사를 지목하기도 한다. 전 궁평1리 이장 장찬교씨는 7월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침수 당일 미호천교 공사현장에 가보니 포클레인 한 대로 둑을 쌓아서 물이 못 내려오게 공사하더라”라고 말했다. 행복청이 다리 확장 공사를 위해 제방을 헐었다가 장마를 앞두고 임시제방을 다시 쌓았는데 기존 제방보다 낮고 부실했다는 주장이다. 임시제방은 미호강이 범람하면서 아침 7시56분께 붕괴됐다. 반면 행복청은 임시제방 공사를 7월7일에 이미 마쳤고 당일엔 비닐 포장 작업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방이 유실된 것도 공사를 충실히 했으나 강물이 예상보다 더 많이 불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임시제방 유실이 침수 피해를 키운 원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경찰 등이 합동감식 중이다. 다만 하천제방 관리·감독이 사실상 방치된 정황은 있다. 공사 주체로서 제방을 짓는 것은 행복청이지만 그 제방이 제대로 구축·유지되는지 점검하는 것은 금강유역환경청과 청주시다. 제방이 하천 범람을 막는 핵심 시설이므로 제대로 유지·관리되는지 두 주체가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청주시는 ‘제방 관리·감독은 지자체 관할이 아니다’라며 책임 자체를 부인했다. 금강유역환경청은 행복청 쪽에 ‘안전성을 확보해 축조하라’는 공문만 보내고 실제 안전성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궁평2지하차도에 매설된 배수펌프 4개는 사고 당시 작동이 안 됐다. 충북도는 다량의 물이 쏟아지며 전기 공급이 끊긴 것이라 설명한다. 경찰은 배수펌프 합동감식도 진행 중이다.

7월 15일 충남 공주시 옥룡동 주택가가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7월 15일 충남 공주시 옥룡동 주택가가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로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 시대 지자체 역할 더 중요해져

7월20일 서울경찰청은 지자체 공무원들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시작했다. 초기엔 충북경찰청이 수사 중이었으나 부실 대응 의혹이 불거져 교체됐다. 국무조정실도 지자체와 경찰·소방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재발을 막으려면 개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구조적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과 관련한 조직 내부의 관행이나 시스템 결함 등이 원인을 파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주는 2017년 7월에도 대규모 침수 사고가 일어났던 지역이다. 통상 태풍이나 홍수 등의 피해가 잦은 지자체는 기관들의 공조 경험이 많아 긴밀한 협업 체계를 갖춰두는데, 청주와 충북도의 경우 기관 간 소통이 끊기고 위험 인지 역량이 떨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재난대응 역량이 미숙했다. 재난 대응 경험이 조직 내에 축적되지 못한 이유가 뭔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또한 청주시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재난관리평가 우수기관’에 5년 연속 선정된 바 있다. 외부적으로 평가한 재난대응 역량과 실제 재난대응 역량에 큰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지자체의 각종 재난대응 훈련이 실효성이 있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자체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짐으로써 공무원들의 재난대응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기초지자체 공무원들은 2년 주기로 순환보직을 해서 재난대응 경험이 축적되지 않고 재난대응 부서도 기피 부서로 알려져 있다.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인수인계라도 잘돼야 하는데 지금은 매뉴얼도 복잡하고 어렵다. 어디서 재난대응에 실패했고 어떻게 자원을 보강해 문제를 해결할지 살펴야 한다.” 한승헌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지자체 공무원의 ‘적극행정’을 연구한 최낙혁 가천대 행정학과 조교수도 “풍수해가 기후위기 시대엔 더 커지기 때문에 그에 맞춰 재난대응 훈련을 해야 하는데 평소 수준으로 하면 비슷한 사고가 또 날 수 있다. 재난대응 훈련을 실전에 맞게 준비하고 재난안전에 대한 공무원 전문성도 더 많이 쌓게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지자체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지자체장이 안전에 많이 신경 쓰면 일선 공무원들도 책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을 때는 혼자서 적극적으로 행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호우경보가 발령된 충북 단양군청은 단양군수가 직접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어 재난 상황을 진두지휘했다. 이 지역도 홍수가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청주=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