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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패거리 저널리즘의 출처

한국에서만 거의 유일하게 운영되는 제도… 정보 독점자의 눈치 보면서 부실 기사 양산해
등록 2023-03-04 09:08 수정 2023-03-13 23:03
2009년 11월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이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2009년 11월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이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아직은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지만 법조기자단 가장 끝자리에나마 이름을 올리고 출입기자단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서울 서초동의 검찰과 법원 기자단에 등록된 ‘출입기자'들은 1년에 수차례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출입기자단에 가입되지 않은 기자들은 기자실에 찾아와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거나, 출입기자에게 밥이나 술을 사기도 한다.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일이 아니다. ‘기자’가 ‘기자'에게다. 이들은 왜 타사 기자에게 허리를 굽히고 밥을 사야 할까.

6개월 기사 있고,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다른 정부 부처 출입처에 비해서도 법조기자단은 가입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먼저 대법원 기자단에 출입기자단 가입 신청을 하고, 기자 3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6개월 동안 법조 관련 기사를 써야 한다. 이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법 3곳의 별도 기자단에서 투표한다. 각 기자단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 과반수 찬성하면 첫 단계 통과다.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 이뤄지면 기자실 출입을 허용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 1진 기자실에서 1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법조기자실 출입 및 기자단 가입 규칙 중)

그다음 각 언론사의 법조팀장들이 모인 대법원 기자단의 심사대에 오른다. 대법원 기자단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탈락이다. 대법원까지 가기에 앞서 기자단 3곳(대검, 중앙지법, 중앙지검)을 모두 통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최근 법조기자단에 가입한 언론사는 2020년 <더팩트>와 <뉴스핌>이다. 이후로는 없다. 2023년 2월 기준 법조기자단에 가입한 언론사는 42곳, 등록 기자 수는 261명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 출입 등록된 언론사는 대통령 일정을 따라다니는 ‘취재단' 49곳과 브리핑에만 들어올 수 있는 언론사 42곳 등 총 91곳에 달했다.

“투표 정족수가 채워진 적이 거의 없어 부결된 적이 많아요. 그런데도 비출입사 기자들은 출입기자에게 밥 사고 읍소하고… 그렇게 안 하려면 <미디어오늘>처럼 소송 내서 싸우든지,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거죠.” 종합일간지 ㄱ기자(경력 5년 이하)의 말이다.

‘을'의 위치에 서는 대신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언론들이 있었다.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 <셜록>이다. 이들 언론은 2021년 2월 서울고법과 서울고검을 상대로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신청 거부’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 <미디어오늘>은 서울고법을 상대로, <뉴스타파> 등은 서울고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은 모두 이들 언론 손을 들어줬다. 기자실 사용과 출입증 발급 대상을 출입기자단으로 한정해 사실상 특혜를 제공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서울고법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서울고법)과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이 기자단 가입 신청을 거부했다고 볼 수 없고, 기자단에 물어보라 안내해준 것이라고 봤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는 “처음 법원에 출입증을 신청했을 때 받은 답은 ‘기자단에 문의하라'였다. 6개월 동안 기사를 써야 하고 투표를 거쳐야 하는 구조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봐서 소송을 낸 건데, 항소심에선 최종 거부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단 외 기자들의 취재원은 ‘기자'
“문의가 많아 알려드립니다. 서울중앙지검 ○○부는 2021년 ○월○일 ○를 ○○ 혐의로 약식기소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이 2021년 특정 사건과 관련해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이같은 알림을 포함해 출입기자가 받는 혜택이 여럿 있다. 검찰 ‘티타임(비공개 현안 브리핑)’에선 기자들이 주요 수사에 관해 질문하고 차장검사가 답한다. 주요 보도의 오보 여부도 이 자리에서 언급된다. 브리핑도 출입기자만 참석할 수 있다. 주요 브리핑은 중계되더라도, 질의응답이나 비보도를 전제로 한 ‘백브리핑'에 비출입 기자가 참여하긴 어렵다.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연락망과 검찰 내부 조직도도 출입기자에게 제공된다.

출입기자에게 이런 편의는 ‘당연한' 것이지만, 비출입사 기자들이 보기엔 ‘특혜'다. 비출입사에서 법조를 취재하는 ㄴ기자(경력 5~10년)는 말했다. “(출입기자끼리 공유하는)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청구 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보니 속보 대응이 어려워요. 결국 친한 (출입)기자에게 물어보거나 귀동냥하는 식으로 취재하는 거예요.”

‘공개재판'이 원칙인 법원의 경우 그나마 형편이 낫다. 그러나 노트북을 법정에 들고 들어가 재판에서 나온 이야기를 받아 치려면 기자단에서 배부한 ‘비표'가 있어야 가능하다. 출입기자단이 아닌 언론사를 위해 따로 배정된 비표마저 ‘법조2기자단’이라는 곳에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판결문 등 자료도 출입기자가 더 빨리 받고 기자단에서 (판결문) 보도 시점을 정하는 문제도 있어요.”(정철운 기자)

출입기자단이 받는 특혜는 기사의 품질로 이어진다. 출입처의 논리와 주장에 설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성이 큰 법조의 경우 출입기자의 취재와 보도는 정보를 쥔 이의 영향을 받을 여지가 크다. “검찰은 정치와 경제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권력기관이며, 기자는 엘리트 취재원이 검사와 극단적인 정보의 비대칭 관계에 놓이게 된다.”(박영흠, ‘법조뉴스 생산 관행 연구’, 2020년)

검찰이 국외에서 밀수입된 마약을 적발했다는 보도자료가 나온 2020년 어느 날 방송사 ㄷ기자(경력 5년 이하)에게 사건 담당 부장검사가 전화해 말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는 영화 <극한직업>을 언급하며 기사 앞부분에 이런 장면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ㄷ기자는 “기사는 제가 알아서 쓰는 것”이라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제지 ㄹ기자(경력 5년 이하)는 “검사들이 원하는 걸 넌지시 말할 때도 있고 직접적으로 말할 때도 있다. 어떤 정부 기관이든 출입처에선 자기들이 말하는 걸 그대로 써주는 기자를 원할 것”이라며 원하는 어조로 기사를 썼을 때 검사와 더 가까워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습니다”

출입기자들은 대체로 특혜와 편의가 주어진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법조’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매체 ㅁ기자(경력 5~10년)는 “서울시의 경우 출입기자단에 가입하려면 PPT 발표를 해야 한다. (이런 폐쇄성은) 어느 출입처 기자단이 가질 수 있는 공통적 문제”라고 말했다. 경제지 ㅂ기자(경력 5년 이하)도 “그 안(법조기자단)에 들어가 실제 편의를 받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유튜버 등에게까지 출입을 개방하면) 오히려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출입처와 기자단 문제를 최근 바꾸려 시도했던 언론사가 있다. 2019년 11월4일, 한국방송(KBS) 통합뉴스룸 국장 후보이던 엄경철은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출입처 제도는 필요한 공적 정보의 획득과 전달, 안정적 기사 생산이라는 기능을 하고 있지만 모든 언론사를 균질화시킨다. 패거리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고, 이 과정에서 과당경쟁이 발생하면서 언론 신뢰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방송 노동조합의 파업이 길어지자, 기자들은 2017년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현업에 복귀한 뒤 ‘출입처에 매몰되지 않는 뉴스’를 만들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엄 전 국장이 ‘출입처 폐지’를 발표한 이후 기자들은 반발했다. 당시 내부 게시판에는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일단 없애고 보는 것이 맞나” “출입처를 잘 취재해야 차별화된 정보가 나온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엄 전 국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조국 보도와 관련해서 검찰발 기사가 너무 많이 나오고 시스템이나 구조의 변화 없이는 기사의 질적 변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는 출입처 폐지를 대신할 구체적인 변화 방안으로 △전문가 협업 시스템 도입 △정치부 의정팀 구성 △주요 이슈별 공동취재망 구성 등을 제안했다. 이후 실제 정치부에서 의정팀을 만드는 등 실행했지만 출입처 관련 개혁 논의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방송 ㅅ기자(경력 20년 이상)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방송체제가 가동됐기 때문에 출입처 폐지 같은 이상을 실현할 여력은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방송 ㅇ기자(경력 10년 이상)는 “출입처발 기사가 꼭 나쁜 것도 아니고, 출입하면서 비판할 수도 있는데 무조건 ‘출입처를 없애라’는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하다가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 공통적으로 ‘제너럴 리포터’에서 ‘스페셜리스트’로

출입처와 기자단은 언론의 취재와 보도에서 꼭 필요한 제도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0년 발간한 보고서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박재영·허만섭·안수찬)는 “출입처 제도는 한국에서만 거의 유일하게 운영되는 제도”라며 “한국 언론의 출입처 의존은 언론-취재원 간의 연결을 도왔는지는 몰라도 언론-시민 간 연결에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출입처 중심 취재의 가장 큰 문제는 기사 품질 저하였다. 보도 대부분은 행정기관, 정치권, 기업 출입처의 입장만 전적으로 반영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연구보고서 중)

보고서는 외국엔 한국과 같은 출입처 제도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입사하는 대부분의 기자는 ‘제너럴 리포터’로 모든 주제를 다룬다. 이 중 5~10%만 ‘스페셜 리포터’가 되어 출입처에 해당하는 특정 분야를 담당한다. <뉴욕타임스>도 ‘비트(Beat) 리포터’가 시의회나 시청 등 특정 분야를 담당한다. 공통점은 비트나 스페셜 리포터라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출입처 기자실에 상주하며 보도하는 개념이 아닌, ‘전문기자’에 가깝다는 점이다.

한국과 비슷한 출입처 제도를 운영한다고 알려진 일본 언론 역시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다른 점이 더 많다. “<아사히신문>의 신입 기자는 선발과 동시에 지역으로 발령받는다. 한국으로 치자면 지역 주재 기자에 해당하는데, 지역 기자의 특성상 현지의 모든 사안을 취재하게 된다. 그 기간이 5년에 이른다. (…) 초년 기자들에게 무엇이 기사가 되는지 독립적이고 독창적으로 기획하고 취재하는 경험을 쌓도록 한다.”(연구보고서 중)

한국 언론들이 출입처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의 연구에 참여한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한국은 출입처가) 정보의 (길)목이자 광고 유치의 목, 영향력 행사의 목이기 때문에 언론사에서 포기 못한다”며 “출입처에서 나오는 기사가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 그 반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출입처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 막혀 있으면 정보 움켜쥔 검사 재량권 키워

다만 외국 언론들이 출입처가 없어도 취재에 무리가 없는 것은 한국과 달리 공개되는 정보가 많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미국은 페이서(PACER)라는 시스템을 통해 사법 정보를 대부분 공개한다. 특정 유형의 범죄 피해 등을 제외하고는 소송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 등 대부분 공개가 원칙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는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공소장, 판결문 공개도 잘 안 되고 자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벽으로 막아버리는 식이 돼가고 있어요. 이렇게 정보를 다 막아놓은 상태에선 (출입처를 폐지하고 취재원도 만나지 말라고 하면) 정보를 꽉 움켜쥔 사람(검사들)의 재량권만 더 키우게 됩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대장동 개발업자인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법조팀장과 <한겨레>등 언론사 세 곳의 전 법조팀장들 사이에 돈거래를 한 사실이 두 달 전 보도됐다. <한겨레>의 신뢰는 크게 훼손됐고, 기자들의 언론윤리 의식을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린다. 뼈아픈 내부 성찰이 우선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짚어보려 했다. 김만배씨가 활동해온 ‘토양’은 법조기자단이었다.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으로 있으면서 김씨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물론 모든 언론사 법조팀장이 김씨와 돈거래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의심한다. 도대체 법조기자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 법조 취재 관행 등을 두루 짚어본 이유다. 
이를 위해 지난 한 달여간 전·현직 법조기자 22명에게 법조 취재 관행의 속살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10여년간 문제가 됐던 법조 취재 사례도 검토했다. 김만배씨의 15년간 법조기자 생활을 톺아보고, <한겨레> 진상조사보고서도 요약해 싣는다. 느슨해진 언론윤리와 이해충돌 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언론학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언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법조기자단 문제를 다룬 것을 시작으로, 추락하는 언론 신뢰 문제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과도 머리를 맞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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