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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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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식이 희소식이던, 씩씩 다정한 ‘보석’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⑲박시연
엄마에겐 삶의 전부였고, 오빠의 인생을 바꿨던 여동생이 떠났다
등록 2023-02-03 11:49 수정 2023-04-04 09:46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오빠는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할까?”

박도현(32)씨는 두 살 터울 여동생 시연과의 대화가 좋았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시연의 과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누이는 평소에도 이런 얘기를 즐겼다. 어느 날엔 한참을 떠들다 새벽 해가 뜬 뒤에야 주문한 배달음식이 도착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 각자 집에서 독립해 떨어져 지내던 최근까지도 한번 통화하면 두세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도현씨에게 시연은 “오빠의 인생을 바꾼 똘똘한 동생”이다. 프로그래머인 도현씨는 지금 직업을 갖게 된 것도 동생 덕이라 생각한다.

검정고시 보겠다던 당돌한 초딩

시연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봤다. 걸어다니기 전부터 책이 장난감이었다. 글도 잘 썼다. 중학교 때 한 학교 선생님은 시연이 쓴 글의 팬이라며 시연을 “국어의 보석”으로 추켜세웠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시연은 ‘혼자 알아서 잘하는’ 아이였다. 시연은 초등학교 입학 일주일 만에 엄마 임희숙(53)씨에게 “학교에서 배울 게 없으니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할 만큼 ‘당돌한 초딩’이었다. “집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면 아이가 원하는 걸 해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엄마 임씨)

중학교 때 시연은 자신이 진학할 고등학교를 혼자 정해 엄마에게 ‘통보’했다. 집과 가까운 서울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였는데, 시연은 “무역을 해보고 싶어”라고 했다. 그런데 무역을 공부하려니 회계를 알아야 했다. 수학을 싫어했던 시연은 복잡하고 힘들다며 칭얼댔지만, 줄곧 장학금을 받았다. 고교 3년 내내 아침 7시도 안 돼 집을 나섰다. 왜 그렇게 일찍 가느냐고 하면 덤덤하게 답했다. ”사람 많은 버스가 너무 싫어. 게다가 학교에 1등으로 갈 수 있으니 좋잖아.”

시연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야금, 기타, 드럼을 배웠다. 유가족 제공 

시연은 악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가야금, 기타, 드럼을 배웠다. 유가족 제공 

시연은 늘 그랬다. 대학도 걸어서 가는 곳으로 선택했다. 지원했던 대학 3곳에 모두 붙었는데 하필 그 학교로 가는 이유를 “가까워서, 걸어서 15분 만에 갈 수 있어서”라고 남 얘기 하듯 말했다.

엄마는 시연에게 “아니요” “왜요” 같은 대꾸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시연은 뭔가 새로운 일을 벌여도 가족에겐 나중에 일이 성사되고 나서야 알리곤 했다. 응급실에 갈 만큼 심하게 아파도,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말했다. “늦은 시간이라도 아프면 엄마가 택시 타고 갈 거니까 다음에 꼭 전화해”라고 걱정하면 “엄마, 내가 전화 안 하면 잘 살고 있는 줄 알아”라고 하던 씩씩한 딸이었다. 도현씨가 동생을 걱정할 때면 엄마는 “네 동생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다.

10월29일 밤 9시30분, 마지막 인스타 사진
시연이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머물던 시절. 유가족 제공

시연이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머물던 시절. 유가족 제공

대학을 졸업한 뒤 시연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독립했다. 독학으로 배운 일본어 과외로 돈을 벌었다. 엄마는 일을 쉬는 날마다 딸의 집을 찾았다. 2022년 10월26일, 그렇게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그날은 마침 엄마의 생일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진 뒤 시연은 엄마에게 전화해 자신이 일본에 있을 때 썼던 목욕용품을 엄마 생일선물로 주문해뒀다고 했다. 또 내년엔 대학원에 갈 것이고, 서른다섯 살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 생일선물을 돈으로 주겠다고도 했다. 그날의 통화가 엄마와 시연 사이에 오간 마지막 연락이었다.

사흘 뒤인 10월29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엄마 임씨는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태원에 사고가 났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현씨는 아버지가 사는 전남 목포에 있었다. 그는 시연이가 “홍대라면 몰라도 이태원에는 가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시연은 오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연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밤 9시30분께 올린 마지막 사진의 배경에 ‘이태원’이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도현씨는 사진에 함께 있는 시연의 친구 4명에게 모두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한 친구가 사진만 찍고 먼저 집에 돌아왔는데 ‘나머지 4명과 모두 연락이 안 돼 걱정’이라고 답신해왔다.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다가 시연의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시연의 휴대전화를 경찰이 받았다”고 했다.

엄마와 오빠는 이태원으로 향하며 시연이 있을 만한 병원을 다 확인했지만 시연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남동 주민센터에 실종신고센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등록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울면서 나가는 일이 반복됐다.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없어 근처 길가에 세워둔 차 안에서 밤을 지새웠다. 낮 12시30분께야 시연이 경기도 수원의 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연이 아끼던 강아지 ‘종이’. 10년 동안 키우다 3년 전 숨졌는데, 시연은 종이의 유골함을 자신의 집 책상 위에 보관하고 있었다. 유가족 제공

시연이 아끼던 강아지 ‘종이’. 10년 동안 키우다 3년 전 숨졌는데, 시연은 종이의 유골함을 자신의 집 책상 위에 보관하고 있었다. 유가족 제공

어쩌다 시연이 수원까지 가게 됐는지 가족은 알지 못한다. 참사 두 달이 넘어서야 시연이 네 번째로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그 밖에 그날 시연의 죽음을 둘러싼 더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한다.

동생에게 일 생기면 무조건 달려갔는데

시연의 장례 땐 친구가 많았다. 이모들은 “나이 먹은 우리보다 시연이가 더 잘 살았나보다” 했다. 시연의 친구와 지인들이 소셜미디어에 남긴 메시지를 보며 오빠 도현씨는 이렇게 많은 이가 떠난 동생을 그리워하는구나, 알았다.

시연의 친구들은 어려서부터 시연과 오빠 사이를 부러워했다. 오빠는 하나뿐인 동생에게 일이 생기면 무조건 달려갔다. 예비군훈련을 받으러 가서도, 남의 가게를 대신 맡아보다가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달려갈 수 없다.

사이좋은 오누이였지만 도현씨는 막상 생전 동생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톡 선물함에서 몇 년 전 동생에게 생일선물로 사탕(추파춥스)을 선물했다는 걸 알았다. 전에는 ‘생일이 뭐 대수인가’ 싶었는데, 이젠 아니다. 시연이 그렇게 떠나고나서 도현씨는 친구의 생일마다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렇게 하면 동생에게 아무것도 못해준 미안한 마음이 덜어지는 듯했다. 시연 덕에 도현씨는 또 무언가가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더 누나 같았어요. 동생 덕에 저도 생각을 깊게 하게 됐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도 동생의 조언을 주로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시연인 우리 가족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밤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엄마 임희숙씨가 시연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스러운 우리 딸 시연아, 잘 지내니.

우리 딸이 매주 수요일만 되면 ‘엄마 언제 오세요’라는 카톡을 항상 보냈는데…. 이젠 수요일만 되면 카톡을 확인해보곤 해. 그날 친구들이랑 밥도 맛있게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놀다 사진도 찍고 재밌는 시간 보냈다고 하던데. 9시30분 후에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답답하고 숨도 못 쉬고 무섭고 외로웠을 딸을 생각하면 엄마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우리 딸을 생각하면서 밤을 지새워.

생각나지. 11월1일 단풍이 만개한 그날은 너무 슬픔으로 가득 차 울고 있는 엄마 손을 살포시 잡아주던 너의 손이 너무 따뜻했고 엄마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너를 그렇게 떠나보내고 시간이 어느새 지나 해가 바뀌었어. 그립고 보고 싶은 우리 딸. 엄마에겐 네가 삶의 전부였는데, 이젠 네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어. 엄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우리 딸 생각하면서 열심히 견뎌보도록 노력할게.

시연아, 너는 우리에게 천사이자 별이었어.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그동안 고생 많았어.
엄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가 찾아갈 때까지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사랑하는 우리 딸 보고 싶다.Box Template
<한겨레21>은 참사 한 달째부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었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21>은 기록한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다웠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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