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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58분 “밥 먹었엉” 문자, 엄마는 얼굴 보고도 못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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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58분 “밥 먹었엉” 문자, 엄마는 얼굴 보고도 못 믿었다

[미안해, 기억할게]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 ⑦김동규
항상 남 먼저 생각했던 ‘동이’
“죽은 원인을 알고 싶으니 엄마에게 힘을 다오”
등록 2022.12.19 14:25 수정 2022.12.21 08:49
동규(오른쪽)군과 동생.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동규(오른쪽)군과 동생. 일러스트레이션 권민지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했던 열일곱 살 동규는 가족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자마자 가족의 품을 떠나 조그만 손에 링거주사를 꽂아야 했다. 외할머니 정애자(67)씨는 “동규가 기다린다”며 하루 두 번씩 면회를 가서 눈물을 글썽였다. 다행히 잘 커서 동규는 엄마와 친구 같은 모자지간이 됐다. “옛날 노래를 많이 알아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불러주곤 했어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같이 부를 때면, ‘내가 엄마보다 잘 부르지?’ 하면서 놀기도 하고요.” 엄마 안영선(46)씨가 말했다.

3년 전 엄마가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뒤 동규의 ‘일순위’는 엄마가 됐다. 엄마·외할머니·외숙모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을 오가며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했다. “엄마가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색은 안 했지만 암수술이 큰 충격이었던 거예요.”(안영선씨)


엄마 암수술 뒤 마이스터고 진학 결정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동규는 갑자기 “마이스터고등학교에 가서 취업하겠다”고 했다. “자사고를 갈 수 있을 성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가족은 “깜짝 놀랐다”. 엄마는 “무조건 싫다”고 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동규가 꿈을 포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형제를 어렵게 키우는 엄마에게 빨리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런다는 걸 다 알고 있었죠.”(외숙모 이경희(39)씨)

엄마가 단호하자 선생님이 “동규 나름대로 계획이 있는 것 같다”고 설득했다. “‘계획이 뭐냐’고 물어봤죠. 열심히 공부해 삼성이나 공기업에 들어간 뒤 재직자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원하니 수능도 꼭 보겠다”고도 했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규는 책을 놓지 않았다. 수학시험마다 전교 1등을 했다. “한 반에서 두 명” 정도만 딴다는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2022년 취득했다. 학교 국어 수행평가 과제에서 ‘30살의 나의 모습’을 동규는 이렇게 그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모은 돈으로 경기도권에 있는 집을 사서 부모님을 모시며 살 것이다.”

동규가 딴 전기기능사 자격증. 고병찬 한겨레 기자

동규가 딴 전기기능사 자격증. 고병찬 한겨레 기자


가족을 챙기듯 친구들도 아꼈다. 자기 공부가 바쁜데도 일주일에 두세 번 학교에 남아 친구들 수학 공부를 도와줬다. 빈소를 가득 채웠던 친구들이 들려준 따뜻한 말이 엄마에게 보낸 동규의 마지막 선물 같았다. “한 아이가 절 안아주면서 ‘어머니, 동규 정말 멋있고 좋은 아이였어요. 제가 절대 안 잊을게요’ 하더라고요. 하나같이 그렇게 얘기해주는데 우리 아들이 멋있고 근사한 아이였구나 새삼 깨달았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동생은 형을 ‘집돌이’라 불렀다. 행여 엄마가 걱정할까봐 집과 식당 그리고 학교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친구들과 약속했다”며 이태원으로 향했다. “태어나 이태원에 간 것도 처음, 친구들과 멀리 놀러 간 것도 처음”이었다.

10월29일 밤 9시54분 식당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었냐”고 동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9시58분 동규는 “먹었엉”이라고 답했다. 아침에 나갈 때 “12시는 넘지 않게 들어올게”라고 했던 동규는 그러나, 이후 답이 없었다.

동규와 엄마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카톡. 유가족 제공

동규와 엄마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카톡. 유가족 제공


“제발 전화 좀 받아, 엄마 죽겠다”


밤 11시50분께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났다는 뉴스특보가 떴다. 그 밤은 엄마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길고 힘든” 시간이 됐다. 동규는 연락이 닿지 않는데 그 어디서도 사상자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사망자에 우리 아이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고 있을 거라고….”

미성년자인 동규는 신원 확인이 늦었다. 10월30일 새벽 2시께 엄마가 경찰에 실종 신고하고, 오전 9시께야 경찰이 디엔에이(DNA) 검사를 해야 한다고 연락해왔다. 그리고 오후 2시44분 경찰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엄마는 1m 너머에서도 그 사진이 동규임을 알아봤다. “제 아이인 걸 알면서도 우리 동규가 아니라고 했어요. 우리 동규 아닌 걸 확인하겠다고 성남중앙병원으로 갔죠.” 무너져내린 엄마에게 경찰은 대뜸 ‘부검’ 의사를 물었다. “‘부검은 타살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건데 왜 부검 얘기를 꺼내느냐. 다른 의심이 있는 거면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말했더니 경찰은 그냥 ‘아니다’라고만 하더라고요.”

이해되지 않는 일이 계속 생겼다. 왜 분실물로 발견된 가방에 학생증이 들어간 지갑만 없었는지, 왜 그날 새벽에 연고도 없는 ‘성남중앙병원’으로 이송됐는지, 왜 그날 새벽 휴대전화만 덩그러니 용산경찰서로 가 있었는지, 왜 수백 번 전화했는데 아무도 그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심지어 지금까지 동규가 어디서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설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사망 시간도 추정, 사망 장소는 골목 노상, 사망 이유는 질식사. 부모인데 아는 게 그게 다예요. 너무 답답해서 사고 난 골목을 가봤어요. 다리를 대자로 뻗고 누웠는데도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좁고 짧은 골목에서 그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는 게.”

“2차 가해를 막아주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도 엄마는 말했다. “대통령은 ‘뇌진탕’이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정치인은 ‘세월호처럼 되면 안 된다’는 소리를 해요.” 인터뷰도 유가족협의회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가 마음을 바꾼 것은 그 때문이다. “다들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발뺌하더라고요. 사과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게 너무 화났어요. 나도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동규 어머니가 주문해서 만든 미니어처. 동규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만들어 납골당에 넣어줬다. 고병찬 한겨레 기자

동규 어머니가 주문해서 만든 미니어처. 동규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만들어 납골당에 넣어줬다. 고병찬 한겨레 기자


동생이 고른 납골당 “집돌이 형이 계절 느꼈으면…”


엄마는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11월26일 오후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중년 남성 2명이 술을 마시며 “이태원에서 아이들이 죽은 게 ‘운명’”이라는 둥 험한 말을 쏟아냈다. “어떻게 자식 있는 사람들이 남의 자식 함부로 얘기하냐”고 소리치다 엄마는 “뒤로 넘어갔다”. 밤도 무섭다. 해가 지면 사진과 영상으로 봤던 이태원 그 골목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12월9일 인터뷰를 앞두고 엄마는 ‘우리 동이’라고 부르던 아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아들이 왜 엄마에게 돌아올 수 없었는지 엄마는 알아야 하니까 엄마는 용기를 내보려고. 엄마에게 힘을 줘. 인간 같지 않은 어른들과 싸울 힘을.”

어머니가 동규군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주문해서 만든 미니어처를 납골당에 넣어뒀다. 고병찬 한겨레 기자

어머니가 동규군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주문해서 만든 미니어처를 납골당에 넣어뒀다. 고병찬 한겨레 기자


동규가 떠난 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가족은 차로 1시간을 달려 경기도 한 추모공원으로 향한다. 동규의 유골함이 안치된 곳에선 북쪽 산이 훤히 보인다. “동규 동생이 납골당을 전부 돌아보고 이곳으로 택했어요. ‘집돌이’였던 형이 계절이 바뀌는 걸 보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요.”

고병찬 <한겨레> 기자 kick@hani.co.kr


동규 외숙모가 쓴 손편지. 유가족 제공

동규 외숙모가 쓴 손편지. 유가족 제공


<한겨레21>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싣는다. 추상화로 뭉뚱그려졌던 이야기를 세밀화로 다시 그려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지켰어야 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이 사라진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떠한지, 유가족이 알고 싶던 것이 수사 과정에서 어떻게 배제되고 가족을 위한다고 만든 행정 절차가 어떻게 그들을 되레 상처 입히는지 기록할 예정이다. 재난의 최전선에 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하는 묵직한 사료가 될 것이다. 희생자의 아름답던 시절과 참사 이후 못다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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