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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법파견’ 바로 잡으려 파업...641명에게 ‘손배 폭탄’이 떨어졌다

비정규직 641명 상대로 246억 손해배상소송 낸 현대제철
조합원 문승진씨가 말하는 ‘노란봉투법’이 필요한 이유

제1433호
등록 : 2022-10-09 01:33 수정 : 2022-10-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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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2022년 9월14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손해배상·가압류 금지와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다시 ‘노란봉투법’이다.

2014년 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이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회사한테 47억원을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월급봉투의 상징인 ‘노란봉투’를 본뜬 ‘노란봉투 캠페인’에 나섰다. 각자 4만7천원씩 봉투에 담아, 47억원을 함께 모으자는 취지였다. 시민 4만7천여 명이 3개월간 14억6874만1745원을 모았고 2015년 캠페인의 이름을 딴 ‘노란봉투법’이 처음 발의됐다. 그러나 제19대, 제20대 국회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사이 노조의 쟁의행위에 거대 손해배상청구소송(손배소)으로 재갈을 물리는 일이 계속 늘어났다. 2016년 갑을오토텍 노조, 2018년 씨제이대한통운, 2021년 현대제철 하청 노조…. 2022년 7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기 때 삭감된 임금을 돌려달라며 거제조선소의 한 도크를 점거하는 농성을 벌였다가 470억원 손배소를 당했다. 같은 달 하이트진로 화물기사 노조도 임금 인상과 원청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가 27억원 손배소, 부동산 가압류를 당했다. 두 노조는 당초 요구했던 사안을 모두 접고 손배소 취하 요구에만 매달려야 했다.

생존권을 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액의 손배소로 귀결되는 현실은 옳은가. 손배소로 고통받는 노동자를 직접 만나고 ‘노란봉투법’ 입법 관련 쟁점을 짚어봤다. _편집자주

246억1천만원.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이하 ‘하청 노조’)가 2021년 9월 총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받아든 ‘손해배상 청구서’다.

현대제철이 낸 손배소의 피고는 총 641명.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손배소 역사상 피고 규모로는 가장 많은 수다. 회사 쪽은 파업이 한창이던 9월 초에 노조 외 180명을 상대로 200억원을 청구하는 1차 소송을, 보름 뒤에 다시 461명을 상대로 46억1천만원을 청구하는 2차 소송을 냈다. 두 민사재판 가운데 첫 재판기일이 2022년 9월15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재판을 앞두고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 문승진(45)씨는 그간 까맣게 잊고 있던 소장을 다시 꺼내봤다. 2021년 2월 고용노동부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인 현대제철에 ‘불법파견’ 됐다고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린 뒤 하청 노조의 ‘직접 고용’ 요구가 커지자, 회사 쪽은 그해 7월 사내 하청업체들을 통폐합해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겠다는 안을 꺼내들었다. 이에 항의한 하청 노조는 충남 당진 공장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한 뒤 51일간 농성을 벌였다. 농성 중에 두 차례 손배소를 내며 노조를 압박하던 원청은 결국 하청 노조와 합의했지만, 손배소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기업의 무분별한 파업 손배소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 움직임이 커지는 가운데, 2022년 9월30일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문씨를 만났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 2012년 현대차 하청 노조의 점거농성, 2022년 대우조선 하청 노조의 점거농성 손배소 등에 견줘 현대제철 하청 노조 손배소 문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제철 손배소 사건은 노란봉투법이 꼭 필요한 이유를 응축해 보여준다.

‘불법파견’ 기업이 노조에 책임 물어
입사 초 문씨는 일주일을 마스크 한 장으로 버텼다. 먼지가 흩날리는 제철 공장에서 분진 마스크는 호흡기를 보호하는 필수품이다. 원청 소속인 정규직 직원들은 하루에도 2~3개씩 마스크를 바꿔 썼지만, 문씨는 한 달에 많아야 5개를 받았다. “하청업체 사장이 ‘최대한 쓸 수 있을 때까진 쓰라’고 하더라고요. 장갑도 매일 빨아서 썼어요.”

정규직과 똑같은 공장에서 일했지만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곳곳에 있었다. 하청 노동자가 쓰는 작업복 보관용 라커는 너무 낡아 잘 닫히지 않았다. 회사 내부 주차장은 하청 노동자에게만 출입이 제한됐다. 문씨는 원자재를 운반하고 설비를 유지·관리·보수하는 업무를 맡았다. 임금은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2015년 11월, 입사 3개월 만에 그가 노조에 가입한 이유다.

문씨는 ‘불법파견’ 판단을 받은 현대제철의 하청 노동자다. 현대제철이 사실상 지휘·감독하는 노동자인데도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은 채, 하청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로 일하게 했다는 뜻이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현대제철에 ‘하청 노동자 차별시정’ 권고를 내렸다. 2021년 2월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이 당진 공장과 전남 순천 공장 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 받았다고 판단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순천 공장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제기해 2심까지 승소했다. 당진 공장 노동자들도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소송이 제기되자 회사 쪽은 원청 노동자 임금의 80%를 지급하는 자회사를 만들 테니 소속을 그리로 옮기라고 제안했다.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취하해야 채용에 응시할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향후 근로관계와 관련한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쓰라고도 했다. 노조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다. 노조는 공장 출입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현대제철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수차례 교섭 요구 공문에도 회신은 없었다. 회사 입장은 ‘현대제철은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며 자회사 전환은 (노조와의 교섭 사항이 아닌) 경영진의 결정 사항’이라는 것이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인 문승진씨가 2022년 9월30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공장 앞에서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노조 간부·조합원 상대 두 차례 소송
2021년 8월23일 오후 5시30분, 회사 쪽이 대화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노조는 생산활동 전반을 관제하는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했다. 51일에 걸친 점거농성이 시작됐다. 당진 공장 하청 노동자 4천여 명 가운데 3천여 명이 동참했다. 하청 노조 조합원들은 통제센터 로비와 출입문에 모여 직원 출입을 막았다. 통제에 필요한 인원을 일부 들여보냈지만 상당수 인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회사는 퇴거를 요구하고 하청 노조는 이를 거절하면서 양쪽의 실랑이가 길어졌다.

파업이 한창이던 9월, 현대제철은 ‘하청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라며 노조 간부와 평조합원을 상대로 손배소를 두 차례 연달아 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법이 정하는 절차, 수단, 목적 등 세세한 요건을 모두 따른 파업에 한해 손해배상 책임을 면책한다. 뒤집어 말하면, 점거농성과 같은 형태의 파업으로 인한 회사 쪽 손해는 노조가 모두 물어내야 한다. 같은 ‘불법’이라도 불법파견 시정명령에 자회사 고용으로 대응한 회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고, 이에 항의하며 점거농성을 벌인 노조에는 수백억원의 손배소 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현대제철과 하청 노조는 재판 과정에서 2021년 파업의 합법 여부를 두고 다투고 있다.

“(소송당했을 때) 당혹감이 들었어요. 현대제철 1년 영업이익(약 2조4천억원)이 얼마인데, 굳이 몇몇 노동자에게 이 돈을 청구했을까 싶어서요. 아마도 소송당한 조합원은 물론, 소송에서 제외된 조합원도 ‘나도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문씨의 설명이다. 실제 시간이 지날수록 파업 동력이 떨어졌다. 임금이 밀리면서 조합원들이 하나둘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거액의 손배소도 압박감을 더했다. 400여 명은 자회사로 넘어갔다. 그해 10월13일, 노조는 회사 쪽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보장에 합의’하고 점거농성을 풀었다.

운송료 인상을 내걸고 2022년 6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8월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본사 사옥 옥상 광고판과 1층 로비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고정비·이익 감소분을 모두 ‘손해액’으로
파업은 끝났지만 노조는 손배소에 대응하느라 계속 분주했다. “처음에는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는 조합원도 있었어요. 우리처럼 법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거대 기업이 소송을 걸어오면 겁먹잖아요. 가족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불안해지기도 하고…. 그래도 다른 기업 사례를 찾아보고 담당 변호사 설명도 들으면서 나름대로 대응 논리를 만들어보려고 애썼습니다.”

문씨는 알면 알수록 “회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회사 쪽이 제출한 소장을 보면, 회사는 파업에 참가한 하청 노동자들의 평소 업무가 노동조합법상 ‘보안작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보안작업이란, 작업시설의 손상 및 원료·제품의 변질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을 뜻한다. 이 업무를 맡은 노동자는 노동조합법에 따라 파업 중에도 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평소 하청 노동자들은 대부분 물건 하역, 크레인 이동 등의 업무를 맡아 ‘보안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회사는 “(하청 노동자들이 맡은 공정이) 파업 등으로 차질을 빚으면 1시간 안에 쇳물이 폐기되는 공정”인데 노조가 법을 어기고 전면파업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씨는 “만약 그렇게 중요한 공정이면 그 자리에 계약직이나 하청 노동자를 투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반면 현대제철 쪽은 “어느 공정이 보안작업인지는 협력사가 도급계약을 통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논리대로라면 일관제철소 업무 대부분이 보안작업에 해당해 쟁의행위에 참가할 수 없다. 이는 현실과도 다르고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 노조 쪽 변호인단이 9월 법원에 제출한 서면 내용이다.

현대제철 쪽이 청구한 총 손해액은 246억1천만원이다. 감가상각비 등 공장 운영에 드는 고정비용과 영업이익의 감소분을 모두 ‘파업 손해액’으로 집계했다. 노조의 점거농성으로 제철소 시스템 관리가 평상시만큼 이뤄지지 않아 계획한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희가 통제센터 정문을 잠갔지만 뒷문을 열어놔서 통제센터 직원들이 출근했어요. 노조원들이 파업에 참여한 공정도 대체인력이 들어와서 일했기 때문에 원료가 부패, 손상될 정도로 방치되는 걸 못 봤어요. 회사가 파업 손해라고 주장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문씨는 회사가 무리하게 모두 ‘파업 탓’으로 몰아간다고 본다. 이에 대해 현대제철 쪽은 “대체근로를 한 것은 맞지만 통제센터 본연의 기능을 상실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21년 현대제철의 생산가동률(생산실적/생산능력)은 83.8%다. 하청 노조의 전면파업이 없었던 2020년(83.1%)보다 오히려 높았다. 매출 역시 22조8천억원으로 2020년(18조233억원)보다 늘었다.

목소리 없는 모든 비정규직의 투쟁
문씨는 지금 벌어지는 법정 싸움이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래도 인원수가 많아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무노조 기업 등 더 불합리한 여건에서도 목소리를 못 내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최근 국회에서 시작된 노란봉투법 입법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마음이다. “어느 제도든 처음 만들어질 때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다 말하는데 노란봉투법도 나쁜 취지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업으로 손해를 봤다는) 현대제철은 정부의 불법파견 시정명령에 (꼼수로) 자회사 설립으로 대응하고 조합원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권리도 포기하도록 하지 않았나.”

당진=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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