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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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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꺼내들었나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라?
규제혁신보다는 노동자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 차원으로 접근해야
등록 2022-08-27 03:12 수정 2022-08-27 08:51
2022년 8월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윤석열 정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진보정당 공동대책위원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변경 시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2022년 8월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윤석열 정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진보정당 공동대책위원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변경 시도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정부가 ‘대형마트 정기 의무휴업 폐지’를 졸속 추진하다가 결국 중단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없던 사안인데, 2022년 7월 갑자기 등장했다. 정부는 ‘국민제안’ 누리집을 통해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시행했고 ‘국민제안’에 접수된 1만2천여 건의 민원 가운데 대형마트 정기 의무휴점이 안건으로 선정됐다. 국민제안 형식을 띠긴 했지만 추진 과정이나 배경에 의구심이 든다. 누가 이런 제안을 왜 했는지, 내용 설명도 공청회도 없다. 온라인 투표 과정에서 투표수 조작 같은 ‘어뷰징’ 문제가 확인돼 투표는 취소됐지만, 이후 국무조정실이 주관하는 ‘규제심판회의’ 첫 안건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선정했다. 물론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이나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소상공인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자 8월25일 한발 물러나 현행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왜 이런 사달이 일어났을까.

0~10시 영업시간 제한·월 2차례 휴업 의무

대형마트 의무휴점제는 2012년 도입됐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매장 면적이 3천㎡ 넘는 대규모 점포부터 적용됐다. 초기 법안에는 월 한두 차례 휴점으로 시작했으나, 2013년 법이 개정되면서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과 월 두 차례 의무휴업일이 정착됐다. 다만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의무휴업일을 주말과 평일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서 평일에 휴점하는 매장도 있다. 대규모 점포 중 대형마트만 법률을 적용받고 백화점·쇼핑센터·복합쇼핑몰은 제외됐다. 게다가 연간 총매출액에서 농수산물 비중이 55% 이상인 대규모 점포도 제외되는 한계도 존재한다.

재벌 유통기업들은 이조차도 수용하지 않았다. 두 차례 제기된 법률 취소 소송에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 같은 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골목상권과의 상생 발전’이라는 공익을 증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의미가 더 크다는 취지였다.

사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규모 점포와 준대규모 점포(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진입규제’(특정 산업에 새로 참여하는 것을 규제함으로써 기존 산업과 해당 산업에 참여하려는 잠재적 기업 사이의 경쟁을 제약하는 경제적 규제)와 ‘행위규제’ 수단의 하나다. 행위규제 수단으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제도(제12조의2)를 법률에 녹아들게 했다.

이는 2017년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의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사후 입법적 평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는 영업규제가 전통시장 소상인과 소비자에게 미친 단기·중장기적 효과나 준대규모 점포의 신규 입점 효과성도 있는 것으로 적시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준대규모 점포의 점포별·일별 매출액이 규제 이전 시점인 2011년에 견줘 조사 시점(2014년과 2015년)에 32~36%가량 증가했다.

독일·프랑스 등에서도 상점 영업시간 제한

유통 대기업의 반박 논리가 없지는 않다. 소비자의 선택권이나 온라인 판매 확대에 따른 변화된 환경을 이유로 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호황을 누릴 때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이제는 온라인 시장과의 ‘불평등한 경쟁’을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재벌 유통기업들이 모두 운영하는 준대규모 점포와 온라인 판매는 오히려 늘었다. 기업들이 왜 이 점은 애써 드러내지 않는지 궁금하다. 개별 대형마트 이윤은 다소 줄었을 수 있으나 유통기업이 소유한 기업체들과 총유통자본의 이윤은 증가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민원을 국민투표라는 형식으로 취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 정부는 규제혁신을 명목으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의 의무휴점 축소를 검토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보호 관점에서 대형마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점은 오히려 법률(입법·조례), 정책(개선계획 수립, 이행과 점검·모니터링)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고 사회적 효과성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통산업발전법(제5조, 제7조, 제12조)에 근거해 대형마트 노동자의 일과 삶의 균형과 건강을 위한 조치로, 대규모 점포의 영업일과 영업시간 조정(제5조, 제6조)에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국가상업위원회(CNEC) 사례처럼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의 참여 방식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제한적이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는 아직도 상점 영업시간 제한이 법률 속에서 유지, 운용되고 있다. 이들 국가 모두 유통업 종사자의 건강과 휴식권 보장, 그리고 삶을 보호하기 위해 영업시간을 제한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법률(Legislative Decree)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불균형 해소와 고객 안전 확보 차원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한다.

한편 거대 자본의 대규모 유통시장 진입과 확대 결과는 일부 유럽연합(EU) 국가의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 완화나 폐지로 나타났다. 그 결과 지난 30년 동안 대형마트 24시간 영업,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영업, 평일 연장 영업 등이 가속화된 현상과 조우했다. 이들 국가에서 영업시간 결정은 시장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자본의 핵심적인 경영전략 중 하나였다. 한국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재벌 유통기업의 민원을 받아 진행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의무휴업이 수십 년 유지됐던 것과 달리 한국의 의무휴업은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인력 부족으로 아파도 쉬지 못해

대형마트 ‘24시간 영업’이 일상이었을 때 유통업 노동자의 건강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았다. 쉴 시간조차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어깨와 허리·목 등의 근골격계 질환이나 하지정맥류 증상 같은 업무상 질병을 호소하는 이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파견용역 비정규직이나 입점 협력업체 직원으로, 다수는 중소 영세업체에 근무했으며 여성과 중고령층이 대부분이었다. 청년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이가 다수다. 앞으로 정기휴무까지 사라지면 사실상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라”는 소리다. 대형마트 의무휴점이 처음 시행된 2013년,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정기휴점으로 다 함께 야유회를 갈 수 있어 기뻐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동료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하루였다. 인간의 행복과 노동자의 삶의 질보다 재벌 유통기업의 이윤이 우선할 수는 없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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