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39·가명)씨는 경기도 용인의 한 사무용품 제조공장에서 2020년 8월부터 생산직 노동자로 일했다. ㄱ부장은 ‘××년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다’ ‘이런 ×같은’ 등 부하 직원들에게 막말했다. 기분이 내킬 때마다 직원들을 집합시켜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래도 선옥씨가 직접적 타깃이 아닐 땐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21년 8월 ㄱ부장이 선옥씨에게 “연차보고서를 늦게 냈으니 무단결근으로 처리하겠다”고 윽박질렀고, 선옥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ㄱ부장의 은근하면서도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선옥씨가 듣는 앞에서 다른 동료에게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김선옥 언제 그만둘 건지 물어보라”고 욕을 섞어가며 말했다. 선옥씨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내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신적인 압박에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선옥씨는 ㄴ공장장에게 이 사실을 신고했다. ㄴ공장장은 선옥씨와 세 차례 면담만 했을 뿐 ㄱ부장에 대한 조사나 징계는 진행하지 않았다. 선옥씨의 퇴사를 은근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선옥씨는 ㄴ공장장과의 대화를 녹음했다. 2022년 3월4일 세 번째 면담 때 ㄴ공장장은 ㄱ부장에 대해 “원래 모난 사람이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직원(피해자)이 그만뒀다”며 “회사에선 해결법이 두 가지다. 선옥씨를 바꾸거나 ㄱ부장을 바꾸는 것. 선옥씨는 서운하겠지만 (중략) ㄱ부장을 해고할 사안은 아니고 징계 정도 아닌가”라고 말했다.
신고 뒤 4개월이 흘렀지만 회사 쪽이 ㄱ부장의 괴롭힘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조사도 보호조치도 하지 않자, 선옥씨는 2022년 4월 퇴사했고 5월 지방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근로기준법(제76조의3)에 따른 △지체 없는 객관적인 조사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피해자 보호 △괴롭힘 확인시 지체 없는 가해자 징계 △비밀누설 금지 등 회사 쪽이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는 내용의 신고였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회사에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선옥씨는 담당인 ㄷ근로감독관으로부터 또 다른 ‘갑질’ 봉변을 당했다. ㄷ감독관은 선옥씨에게 “증거가 있냐”고 다그치는 한편, “과태료를 부과할 사안이 아니다. 신고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 선옥씨는 또 녹음기를 켰다. ㄷ감독관은 선옥씨에게 “그런 식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면 회사는 과태료만 맞다가 끝난다”고 회사를 두둔하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고도 말했다.
직장갑질119가 제공한, 고용노동부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통계’를 보면 노동청에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례 2만2764건(2019년 7월16일~2022년 5월31일) 가운데 선옥씨 사례 같은 폭언이 34.6%로 가장 많았다. 부당 인사가 14.5%, 따돌림·험담이 11.3%로 그 뒤를 이었다. 노동청이 개선 지도(11.5%), 검찰 송치(1.5%) 등 적극적으로 처리한 사례는 10건 중 1건가량에 그쳤다. 대부분은 신고 취하(33.4%) 등으로 처리됐다. 51.7%인 ‘기타’의 상당수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이라서 행정 종결된 사례라고 한다.(아래 표 참조)
특히 신고받고도 조치할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한테 과태료를 부과한 건수는 55건에 불과했다(과태료 부과 조항이 시행된 2021년 10월14일부터 2022년 5월31일까지 집계).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노동청이 법을 엉터리로 해석해 법조항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렸다.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주가 아닌 노동청에 신고하라고 캠페인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사용주나 사용주 친인척에 의한 괴롭힘 사례를 제외하면, 실제 ‘조치 의무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옥씨는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 매뉴얼(‘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지침’)대로 했다는데, 그 매뉴얼을 좀 보여달라고 하니 ‘비공개’라고 해서 더 화난다. 이럴 거면 법은 있으나 마나”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옥씨가 신고한 사건은 아무런 조치 없이 행정종결됐다.
2015년 8월부터 경남의 한 제조업체의 지사에서 관리직으로 일했던 이종필(34·가명)씨는 2020년 8월 새로 부임한 ㄹ팀장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로 인해 두 달가량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며 2021년 10월12일 회사에 신고했다. ㄹ팀장이 근무시간 1시간 전에 출근해 청소하라 시키고, 다른 팀으로 이동할 것을 강요했으며, 팀 내 다른 직원들과 함께 자신을 따돌리며 업무에서 배제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ㄹ팀장이 종필씨에게 “야, 이 ××야” “이거 또라이네”라고 말한 녹취 파일도 함께 제출했다.
신고 다음날인 10월13일 인사팀 관계자는 종필씨가 일하는 팀을 찾아와 ㄹ팀장을 포함한 7명을 2시간가량 면담했다. 인사팀은 ㄹ팀장이 아니라 종필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10월22일 열었다. 팀장의 업무 지시와 근태관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등 23가지 징계 이유를 들었다. 10월28일 종필씨는 해고됐다.
종필씨는 “징계위에서 ‘입증자료는 있냐’고 물어도 ‘누구 누구가 이렇게 말했다’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지만 밝히라’고 압박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만난 적도 없는 본사 직원들까지 20여 명이 (나를 욕하는) 자필 진술서를 회사에 냈다고 한다. 당사자들에게 ‘내가 언제 그랬냐’고 따져 물었더니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고 말했다. 2022년 6월22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종필씨의 해고가 ‘부당 해고’라고 인정했지만 종필씨는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 쪽은 ‘복직을 포기하면 보상해주겠다’는 태도다. ㄹ팀장도 이후 징계를 받았다고 종필씨는 전해들었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에 대해 부산지방노동청은 ‘회사가 종필씨를 해고한 것을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데 따라 받은 불리한 처우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 종결을 통보했다. 근로기준법(제76조의3 6항)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종필씨는 “회사를 6년 다니면서 징계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16일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제대로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며 “이게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면 대체 불리한 처우는 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노동청 처분에 대한 항고를 준비 중이다.
정숙희 서울시 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이 사건을 보면 왜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주(사장) 자정 노력에만 맡겨선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종필씨가 정말 문제라면 왜 이전에 안 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자마자 징계하느냐”며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근로감독관이 너무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을 사람 간의 갈등이 아닌 헌법이 보장한 노동인권적 측면에서 볼 수 있도록 감독관들에게 철저한 인권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불리한 처우’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유일한 형사처벌 규정을 둔 조항이다. 그런데도 근로기준법은 ‘불리한 처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형법의 명확성 원칙에 맞게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입증 책임을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지우는 것도 사용자로 입증 책임을 전환하거나 사용자·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나눠 지는 등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는 탓에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8년 1월부터 한 대기업 자회사에서 근무한 김동규(39·가명)씨는 2022년 1월 새로 부임한 ㅁ팀장에게 4개월간 괴롭힘을 당했다. 동료들을 붙들고 펑펑 울기도 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던 동규씨는 3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기 위해 ㅁ팀장의 행위를 하나하나 적어뒀다.
“2022년 3월25일 오후 4시00분. 회의하다가 ‘우선 시킨 것부터 하고 니 의견을 말하라고 (웃으며) 몇 번을 말하냐’라고 해 멋쩍게 웃으며 ‘네, 죄송합니다’라고 하니 똑바로 노려보며 ‘야. 내가 웃으면서 말한다고 해서 니가 웃는 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말함.”
“2022년 3월28일 오후 2시43분. 갑자기 자기 자리에 불러 ‘야, 일로 와봐, 앉아. 야, 이렇게 메일을 보내면, 내가 상대방이라면 진짜, ×× 쌍욕을 했을 거야’라고 말함.”
동규씨는 결국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지 않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신고할까 생각했지만 평가권자에게 따졌다가 잘못되면 연봉은 동결되거나 깎이고. 내가 보디캠을 달고 다니면서 일일이 녹음했던 것도 아니고. ㅁ팀장이 항변하면 회사가 ‘업무상 그럴 수 있다’고 나올 수 있을 것 같고. 동료들이 내 편을 들까 걱정됐다.” 그는 2022년 6월 노동청에 신고했다가 며칠 뒤 취하했다. 퇴사하면서 ㅁ팀장이 한 일을 회사에 다 알렸지만, 아직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있다.
박수경 강원대 비교법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현재는 괴롭힘 피해자들이 피해보상을 받으려면 법원으로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시간적 비용이 너무 크다. 그래서 신고를 포기하거나 비자발적 퇴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회사를 나오게 된다”며 “원상회복 관점에서 노동위원회가 행정적으로 피해보상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2년 5월19일 시행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신고자 및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한테 노동위가 적절한 배상(손해액의 3배 이내)을 명령하거나 1억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분쟁 과정의 입증 책임도 사업주가 진다. 최홍기 교수는 “최소한 반복적, 지속적인 괴롭힘에 대해선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향도 검토해봐야 한다. 현장에 시그널을 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계속 고통받으며 (가해자와 함께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괴롭힘이 범죄로 인식되도록김선옥씨는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법률구조 사건을 접수했다. 공단에 낸 진술서에 그는 이렇게 썼다. “진술서를 써내려가는 지금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중략) 괴롭힘의 형태가 진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노골적인 행위는 점점 은근하고 지독해져서 당하는 사람은 피가 마릅니다. 끊임없는 무시와 조롱. 이젠 내가 ‘피해망상’이 아닌지 의심하는 지경입니다. (중략) 같은 고통에 처한 사람들의 사례를 찾아보면서 지난 일을 상기하다보면 속이 메스껍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바닥까지 너덜너덜해진 자존감을 어떤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https://url.kr/7bfp6n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국힘 의원들도 격앙… “추경호, 국회 못가게 당사 오라고 문자”
[속보] 우원식 국회의장 “윤 대통령·국방부에 계엄 해제 요구 통지 보내”
[영상] “계엄 해제”에서 “윤석열 체포”로…국회 앞 시민들 환호
“윤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갔다”…법조계도 계엄 선포에 분노
이성 잃은 비상계엄,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사설]
조국 “윤석열·김용현 체포, 군사반란 준해 처벌해야”
[속보]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뒤 경제수장 긴급 심야 회의
시도때도 없이 오던 긴급재난문자, 계엄령 선포 땐 안 와
[논썰 긴급편성] 윤석열 ‘친위 쿠데타’ 탄핵 앞당겼다
[속보] 이재명 “국민들 국회로 와달라…의원 체포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