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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모욕’이라고 어떻게 대답하나

‘비문명적 인질극’ ‘탈시설 재고’라는 무례한 말을 만난 봄, 장애인 부모의 굳은 다짐
등록 2022-04-12 01:18 수정 2022-04-12 01:18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2018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광화문 만인소’를 열고, 청와대 방향으로 향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2018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광화문 만인소’를 열고, 청와대 방향으로 향하며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올봄은 더디게 오고 더디게 지나간다. 꽃들이 천천히 피어나서 천천히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생명 가진 것들이 두루 즐거우니 이번 봄은 이만하면 미덕이 상당하다. 봄은 느릿느릿 지날수록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봄, 좀 우울하다. 설마 나이 먹어 청승이 늘어서인지 아니면 입춘 무렵 앓고 지나간 코로나19 후유증인지 또 다른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다른 해보다 조금 더 우울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울에 화가 섞여서 심정이 아주 고약하다.

끊임없이 포기한 숱한 시간

해마다 4월을 앞두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인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다져먹는다. 4월은 장애인의 달, 우리의 봄싸움 ‘춘투’를 준비한다. 이른바 장판(장애인 운동판) 사람들이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는 이유는, 그날이 잔칫날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무심하고 무례한가를 고발하고 장애 없는 세상을 향한 굳은 의지를 보이기 위함이다. 세상은 조화로우며 평등해야 한다는 대전제에서 비롯한 이 투쟁이 올봄에는 이미 뜨겁고도 혼란스럽다. 나는 궁금하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공격하고 나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들이 나를 포함해 참 많은 사람의 봄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걸 알까.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올해 서른이 됐다. 그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그 속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포기하고 살아온 숱한 시간이 있다는 것만큼은 짐작한다. 자기 말을 전달하기를 포기하고, 친구를 포기하고, 선생님을 포기하고, 학교를 포기했을 것이다. 여행을, 취미를 포기했고 웃음과 즐거움 또한 포기한 적이 많았을 게다. 스스로 움켜쥐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매정한 세상에서 어느덧 청년이 된 아들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연민과 미안함 범벅이다. 그가 건강하고 자유로운 노후와 존엄하게 생을 마치는 것마저 포기할까봐 두렵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문득 물었다. “장애가 뭐냐”고. 뭐라 대답하나,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개뿔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찌 답하겠나. 어느 나라에선 아무것도 아닌데 우린 엄청난 거라고, 차별과 배제의 이름이라고, 모욕의 이름이라고 어찌 대답하나. 그때 다짐했다. 그러니 세상을 바꿔야 해. 너와 내가 동지가 되어 세상을 바꾸며 살다 가자.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자주 게으름을 피웠지만 아들 동지는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따지고 보면 잘 버티고 사는 것 자체가 엄연한 투쟁 아닌가.

시설은 ‘장애인 품을 곳 없다’는 고백

아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공자 말씀처럼 우뚝 서는 나이인 이립지년(而立之年)이 됐으니 이제부터는 자립생활을 본격적으로 그려가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아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그런데 이 또한 쉽지 않다. 30년 삶의 투쟁을 했으면 앞길은 좀 수월해야 할 텐데, 그게 예의일 텐데 가속도가 붙기는커녕 곳곳에 암초다. 이동권 투쟁을 ‘비문명적 인질극’이라 말하더니 급기야는 ‘탈시설까지 재고해보자’는 말을 당대표가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더구나 투쟁 단체를 공격하기 위해 탈시설을 반대하는 장애인 부모 쪽을 부추겨 갈라치기를 하니 그 졸렬함에 나의 우울은 더해만 간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다른 부모처럼 나도 같은 소망을 갖고 있다. 그가 하루에 일정한 시간 일하고, 일정한 시간 운동이나 취미 등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거처에서 편히 쉬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삶이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간엔 스스로 하고 그렇지 못한 시간은 지원해주는 이의 도움을 받는다. 시설에서의 삶은 고려하지 않는다. 시설에서라면 이 일상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살지도 못하고 자기 일상의 결정을 스스로 할 수도 없고 함께 살 사람과 살 공간을 선택하지도 못하고 일정한 일과를 여럿이 함께해야 한다면 그런 곳을 누군들 내 삶의 터전이라 반길 수 있겠는가.

자기 일과를 스스로 만들고 더불어 사는 곳은 어디인가. 우리는 그런 곳을 시설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 곳은 마을이라 부른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시설이 아니라 마을에서 살아야 한다. 사실 시설이라는 곳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품을 곳이 없다는 고백이다. 우리나라가 2008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에는 ‘당사국은 장애인의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효과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효과적 지원체계를 마련해 장애인의 탈시설을 진행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행하겠다 약속만 하고 게으름을 피우다 겨우 2021년 8월에야 이른바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고 12월에 가서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 발의했다.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은, 시설만 없앤다고 탈시설이 되고 지역통합이 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의 자립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주거와 지원서비스가 합쳐진 지원주택이 필요하고 자립지원사, 24시간 지원서비스, 일자리, 연금, 건강보장제도 등의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갈 길이 멀고 마음이 바쁘다.

진짜 반문명이 무엇인지 보이기 위해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식들이 효도한다고, 치매도 안 걸리고 병도 안 나고 철갑상어처럼 튼튼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내 새끼의 존엄한 늘그막까지 책임지는 기적 같은 장수할매로 살게 한다고 농담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건 이 사회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는 뜻이며, 누군가 스스로 지은 일이 아닌데도 죽을 때까지 불리하게 사는 건 매우 불공평하다. 내 사전의 공평은 그렇다. 내 세상의 공평을 위해 우리는 언제나 길에 나선다. 우리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고,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의 삶을 보장하라고 4월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뭐든 할 터이다. 대한민국은 발달장애 엄마들이 머리 깎고 사는 나라라는 걸 보여줄 수도 있다. 진짜 부조리한 것이 무엇인지 반문명이 뭔지 보여줄 터이다. 가만있는 게 문명적인 것인지 드러내고 싸우는 게 문명적인 것인지.

이준석 대표에게 한마디 건넨다. 새 정부 앞길에 꽃 뿌려주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마시라. 유난 떠는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다. 혹시라도 이쯤에서 공격을 멈추고 경청할 때를 찾고 있다면 말해주겠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김종옥 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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