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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준석이 말하지 않는 것들

등록 2021-05-26 16:35 수정 2021-05-27 01:55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설마 했는데, 지상파방송에서 집게손가락을 두고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MBC는 지난 5월18일 밤 이준석(전 국민의힘 최고위원)과 신지예(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불러 ‘젠더 갈등, 어디로 가나?’라는 주제로 토론에 부쳤다. 편의점 지에스(GS)25 행사 포스터에 담긴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남성혐오라는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 같았다. 물론 억울한 남성이 주목받는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 공론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 중요한 문제를 조그마한 손가락 문제로 전락시킨 것은 젊은 남성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이준석과 판을 깔아준 언론이다.

나치 역사와 산재 사망

최근 이준석이 인기를 얻은 기반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표출된 20대 남성의 분노다. 이준석의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의 교묘한 결합이다. 지금 남성들은 과거의 남성들처럼 가부장의 지위와 권력을 가지지 않았는데도 가해자처럼 여겨지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군대처럼 남성만이 짊어지는 의무를 다하면 사회적으로 대우도 받고 취업도 유리했던 과거는 옛말이고, 지금처럼 무한경쟁 시대에는 오히려 여성에 비해 손해를 본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많이 하다보니 남성은 여성보다 산업재해를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산시장은 민주당 386(1990년대에 30대인, 80년대 대학에 다니며 학생운동과 민주화투쟁에 앞장선 60년대생) 기득권이 장악해 집 사는 건 상상도 못하고 양성평등 정책으로 남성과 여성은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누리던 이점이 사라졌기에 젠더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건 과하다는 주장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다. 문제는 정치인 이준석이 이 의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젊은 남성들이 직면한 문제의 책임이 여성이란 성별에 있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정치인이라면 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준석이 군복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군복무 기간에 최저임금을 지급하자거나, 군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 경우는 듣지 못했다. 산업현장 사고를 줄이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산재 제도를 개선하려는 정책을 펴는 것도 보지 못했다. 20대 남성인 이선호 노동자의 산재 사망 현장에서도 그의 말과 글은 발견되지 않았다. 자산시장과 불평등을 줄이려는 대안 역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이준석이 이런 문제에 대한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언급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창 주가를 올리는 이준석은 집게손가락 문제에 대해 나치 역사를 언급하며 교양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이준석이다.

이준석이 처음 등장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키드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보수정당에서도 젊은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기대가 있었다.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성장하는 건 이준석의 몫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방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온 말이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이 공론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는 박근혜 키드에서 20대 남성 커뮤니티의 키드, 아니 큰형님이 됐다. 지금 이미지가 고정되면 정치인 이준석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보수정치의 매력

지지하지는 않지만 보수정치의 매력이 분명 있다. 가족을 지키는 힘있고 강한 가부장의 정치다. 국민이 먹고살기 좋게 기업을 키우되, 거기서 소외되는 자식이 있으면 챙기는 게 보수정치다. 나라의 큰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이루려는 과정에서 분열이 있다면 애국심을 자극하든 공동체 가치를 내세우든 국민 통합을 만들어낸다. 포스터 한 장을 보면서 뜨거운 소시지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냐 아니냐를 따지는 보수정치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그가 남성연대의 여의도 버전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 정치를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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